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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속적 소리가 만드는 공간 (백남준아트센터)
송주호 / 2026-06-01 / HIT : 1

공연 리뷰

연속적 소리가 만드는 공간

 

송주호

(음악칼럼니스트, 문화웹진 『통로』 편집장)

 

불연속의 접점들

2026년 3월 19일 오후 3시

백남준아트센터



  예술의 무의식 속에 백남준이 깃들어있다

 

  1963년 독일 부퍼탈의 갤러리 ‘파르나스’에서는 세계 예술의 흐름을 바꿔놓은 전시가 열렸다. 바로 백남준(1932-2006)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이었다. 이미 플럭서스의 일원으로서 음악 퍼포먼스를 통해 ‘문화 테러리스트’라고 불렸던 그였지만, 이 전시회에서 보여준 그의 영상은 대단히 리듬감이 있었고, 여러 대의 TV가 놓이면서 대위법적 역동성까지 더해졌다. 즉, 눈을 위한 음악이었다! TV를 활용하여 청각적 음악을 시각적 영상으로 치환하는 개념이었고, 그는 미디어 아티스트라는 생소한 타이틀을 부여받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기획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백남준의 전공이 음악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고, 도쿄대학에서 미학을 공부하면서 쇤베르크를 주제로 학위논문을 썼으며, 뮌헨대학에서 음악사를 전공했다. 1959년에 15살 연상인 윤이상과 다름슈타트에서 찍은 사진이 바로 독일 유학 시절이었다. 그러다 1960년대에 소니에서 출시된 휴대용 비디오 레코더를 알게 되면서 그의 예술적 캔버스는 영상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오랜 기간 훈련받은 음악가로서 그의 영상 작업은 시각 작품임에도 본능적으로 음악적 이디엄으로 구성되었고, 그 결과 그의 첫 전시의 제목에 ‘음악’이라는 말이 포함되었다.

 

  그의 이 전시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두 장르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데에 있다. 시각적 대상에 청각적 음악이 함께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있었지만, 그의 작품은 그러한 공존의 개념이 아니었다. 시각적 구성은 음악적으로 이해될 수 있고, 그가 만든 소리는 시각적 인상 안에 포섭되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시각과 청각으로 구성된 ‘멀티미디어’가 아닌, 시각과 청각 사이에 존재하는 ‘인터미디어’로 이해된다. 그의 이러한 작업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의 생전에 동료나 선후배 할 것 없이 충격과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된 현재도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그의 시대적 당위성과 작품의 의미를 넘어, 그의 작업이 오늘날에 주는 인사이트는 여전히 미래지향적이다.

 

  하지만 백남준은 그가 태어난 땅 한국에 거의 발을 붙이지 못했다. 큰 이슈가 되었던 1984년 서울 방문 이후 작품 전시나 올림픽, 광주 비엔날레 등 작지 않은 행보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지만, 한국은 그의 활동 중심지가 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많이 늦었지만, 백남준 사후 2년 후에 백남준아트센터가 설립된 것은 그나마 고무적인 일이었다. 이후 백남준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감을 놓지 않으며 지금까지 꾸준히 독특한 기획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여는 기획도 심상하지 않았다. ‘불연속의 접점들’이라는 제목의 전시는 “백남준의 예술과 불연속적으로 접점을 만들고 공명”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불연속적이라는 것은 백남준의 예술적 방향을 따른다기보다는, 작업 과정에 “예기치 않은 접점”이 발생했음을 나타낸다. 이는 백남준과의 접점에 작가의 의도가 없었다는 말인데, 그런 만큼 백남준의 영향력은 예술이라는 존재의 무의식에 깊이 자리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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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그레브에서 전해온 현대 예술

 

  그런데 이 전시에서 또 한 가지 눈길이 가는 것은 “자그레브 현대미술관의 오랜 협력”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크로아티아의 작가들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크로아티아! 우리에게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지역은 아니지만,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향권에 있으면서 서유럽 문화와 적잖은 접점을 갖고 있었던 지역.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화되면서 서방세계와 분리되었고, 이후 접점을 만들 기회는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다행히 1990년대에 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이 개방되면서 천연의 아름다운 자연이 소개되고 관광지로 각광받기도 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이렇게 “오랜 협력”이라고 말할 정도로 끈끈한 문화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게 된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리고 여기에 화음챔버오케스트라가 전시의 개막식 연주를 하게 되었다는 것은 흥미를 더한다. 2017년 12월에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공연을 했던 적이 있어 실로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이 공연에서는 화음프로젝트 작품으로서 백남준의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곡인 전현석(*1977)의 〈분산된 점들〉(Diffused Dots, 화음프로젝트 Op. 184: 2017)와 함께, 크로아티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밀코 켈레멘(Milko Keleman: 1924-2018)의 〈협주적 즉흥곡〉(Improvvisazioni Concertanti: 1955)과 〈놀람〉(Surprise: 1967)이 함께 연주되었다는 것은 놀라웠다. 유럽에서 주요 현대음악 작곡가로서 활동했던, 그러나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켈레멘의 곡이 연주되는 기회가 있다는 것은 몹시 반가운 일이다.

 

  켈레멘은 자그레브와 파리, 프라이부르크에서 공부하고 독일과 미국에서 거주하면서 주요 현대음악 작곡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번 공연에서 화음챔버오케스트라가 연주한 그의 두 곡은 모두 현악 앙상블을 위한 곡으로, 먼저 연주된 〈놀람〉은 43세 때의 작품으로서 현악기가 낼 수 있는 다양한 소리들로 구성되어있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백남준아트센터의 오픈된 공간에서도 소리의 질감이 잘 들리도록 명료한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이를 통해 현대음악의 감각적 아름다움을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협주적 즉흥곡〉은 동유럽의 민속적 특징이 돋보이는 31세 때의 비교적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합심하여 만든 풍부한 음향과 역동적 리듬으로 강렬한 에너지를 전달하여 좌중을 집중시켰다.

 

 

  백남준답게

 

  하지만 왜 켈레멘인가를 설득하기에는 부족했다는 점은 아쉬웠다. 크로아티아라는 접점 이외에 백남준이나 이 전시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다지 함의하지 못했다. 사실 켈레멘은 지금도 열리고 있는 자그레브 음악 비엔날레를 1961년에 설립한 인물로, 그는 이곳에서 플럭서스 예술가를 초청할 정도로 새로운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백남준도 플럭서스 일원이었지만 이 음악제에 참석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켈레멘 자신도 이러한 관심을 음악의 멀티미디어적 시각화로 구현했다. 1963년에 작업을 시작하여 1979년에 완성한 멀티미디어 오페라-발레 〈아포칼립티카 - 짐승 같은 오페라〉(Apocalyptica - opéra bestial)는 그 기념비적 업적이다. 오늘날 오페라를 비롯한 음악 작품들이 멀티미디어를 고려하여 작곡되는 것을 생각하면, 이 곡은 매우 선구적이면서도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다. 인터넷에 콘텐츠가 범람하는 요즘 시대에도 이 작품의 영상이 검색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의 작품을 연주할 때 이러한 그의 관심과 활동을 기억하며 멀티미디어적 효과로 무대를 구성하는 경우는 볼 수 있다. 그러한 영상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백남준아트센터라면 이러한 효과를 만들어 켈레멘과의 접점을 조명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백남준’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감에 비해서는 일반적인 형태의 음악회였다는 점은 못내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현재 크로아티아를 이끄는 작곡가를 소개하지 못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현석의 현악사중주곡 〈분산된 점들〉은 백남준의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1958-59)를 기록한 네 개의 테이프 릴을 액자에 넣은 전시를 보고 작곡한 작품이다. 네 명의 연주자가 공간적으로 배치되어 연주하는 이 작품은 음악을 전시한다는 백남준의 의미처럼 전시되는 소리를 경험하게 된다. 2017년 12월 2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이루어졌던 초연은 당시 백남준의 전시물 사이에서 연주되어 특별한 시간이었음을 기억한다. 본래 정지된 관객 주변으로 소리가 움직이는 공간적 음향을 의도한 작품이지만, 서 있었던 관객들은 연주되는 악기 사이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서 전시된 음악으로서 더욱 백남준의 예술적 의도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로비에서 움직이지 않는 관객에게 연주되어 작품 의도에 가까웠지만 백남준의 무게감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이것은 내가 초연을 경험했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고, 또한 ‘백남준’이라는 이름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미술관에서도 전시물로서의 소리를 듣는 것은 매우 흔해졌으며, 관객의 움직임이 더해진 소리 경험 또한 드물지 않아 이번 연주에 대한 아쉬움의 깊이를 더욱 깊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극소수의 초연 감상 경험을 차치하고, 음악 작품으로서의 〈분산된 점들〉의 연주는 매우 정교했으며, 불연속한 점들이 소리로 연결되어 소리 공간에 포위되는 황홀경으로 이끌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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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준은 음악가였다. 아니, 그는 한 번도 음악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백남준아트센터는 소리로 가득해야 한다. 그리고 소리가 이끌어야 한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이를 알고 현장에서 실천한 선도적 아티스트 그룹이다. 지금까지 2017년 첫 연주와 8년 반이 지난 이번 공연까지 두 번의 경험을 발판으로, 백남준아트센터와의 협업을 정례화하고 백남준다운 현장음악, 즉 소리 전시가 될 수 있도록 화음챔버오케스트라가 기획을 이끌 시점이 되었다. 이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부름이다. [畵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