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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여전한 그 빗속에서..
김연 / 2006-07-15 / HIT : 1042
연주회가 끝난지 두 밤이 지났는데도 징헌 비는 여전합니다.
그로하여 늦게라도 이렇게 글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모질게도 질긴 이 비에 감사의 인사라도 먼저 올려야 하는건지...원!

마지막 곡이었던 베에토벤의 피아노, 클라리넷, 첼로를 위한 3중주곡은 위로였습니다. 
후두둑 강물로 낙하하는 창 밖의 빗물을 배경으로 한 2악장 아다지오.
첼로 곡을 듣다 몇 번 문을 열고 뛰어 나가 두리번 거렸던 경험이 있는 나로선, 
누군가 울고 있는 듯 하여, 비오는 날의 첼로 연주는 대신 울어주는 만가였습니다.
클라리넷 연주는 마치 모짜르트의 그것처럼 섬세한 울림이 있었지요.
안 그래도 요즘 베토벤만을 찾아 듣고 있는데 아무래도 더욱 그에게 빠져 들 듯 합니다.
사무치도록 외로움을 아는 자만이 외로운 인간들을 위무해 줄 수 있는 길을 알겠지요.

그리고 앵콜곡!
문리버라니!!!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에서 오드리 헵번이 창가에 걸터앉아
(그러다 떨어지면 어쩌려고 ㅋㅋ)기타를 치며 부르던 그 명장면보다 
우리나라 영화였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란 영화에서 
이 노래가 흐르던 장면을 열 번도 더 되돌려 봤던 저에겐 감동 그 자체였지요.
그래서 애석하게도 이 음악이 어떻게 연주되었던지 기억이 전혀 나질 않습니다. 
블랙홀로 빠져 들어가 우주에서 유영하고 있었으니깐요. 

다음 곡, 
곡목을 소개도 않고 '짠 기대하시라!'류의 피아니스트 설명과 함께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무의식으로 터져 나오던 외마디 비명! 
(소리치고 나서 민망해서 혼났더랬습니다)
피아졸라의 탱고!
피아졸라가 그랬다지요. 파리의 그 유명한 선생님이었던 나디아 블랑제 여사에게 
찾아가 자신이 작곡한 곡을 들려주자 이 위대한 스승님왈, 
"그래, 잘 썼다. 여기는 모짜르트고 여기는 쇼팽이고 여기는 베에토벤인데 
근데 피아졸라는 어디 있는 거야?" (이 대사, 방송에서 들은 것을 기초로 하여 
제 맘대로 각색한 것임을 밝혀 둡니다.) 아르헨티나의 뒷골목 허름한 술집을 전전하며 
술꾼들의 술맛을 돋구기 위해서나 쓰던 자신의 음악이 챙피스러워 고명한 선생님 앞에서
'클래시칼'한 음악을 만들어 선보였던 거지요. 하지만 우리의 블랑제 선생님은 바로 
그 점을 날카롭게 지적해 주셨고.... 한 깨달음을 얻은 그는 그 이후론 아시는 바, 살아있는 탱고음악의 전설이 되었지요. 

탱고 음악에 꽂혔다며 '소리바다'에서 딸애가 피아졸라의 탱고를 검색하길래 
훌륭한 '여자'선생님이었던 나디아 블랑제며 남미의 아르헨티나에 대해 
이야길 했었는데...비가 와서 구질구질하다고 애는 이 날 따라 연주회에 
오지도 않았었고..;;;

후덥지근한 날씨에 연주를 하느라 악장이 끝날 때마다 
제 몸보다 더 피아노며, 클라리넷 위의 땀을 닦으며 혼신의 힘으로 
연주를 하던 연주자님들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특히 더스틴 호프만을 닮은 클라리넷 연주자가 
얼굴이 빨깨져 소리를 만들어 낼 때마다 어떤 관악기 연주자의 인터뷰가 
생생해졌지요. 요약하면 이런 겁니다.
'피아노는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현악기는 활로 연주해서 음을 만들어 내지만 관악기는 
연주자 스스로가 몸을 써서, 입으로 불어서 직접 음을 만들어 내는 데 매료되었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몇 번 여기 올린 연주회 감상문 비슷한 것을 쓸 때마다 
앵콜곡으로 팝이나 재즈, 스윙같은 곡들을 들어볼 수 없을까요, 하는 
건의를 올리려다 너무 불경스러운 요구 사항같아 차마 쓰질 못했습니다.
아마 문리버가 흐를 때 제가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은 이런 제 마음을 
들켜버린 연유도 있었겠지요.

앞으로도 연주회에서 마음이 들켜 버려 내 마음 갈 곳을 잃게 되더라도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반전드라마처럼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 순간까지 
두근두근 거리는 연주회를 상상하며 장황한 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