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해설
백남준 작가의 작품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 입으로 듣는 음악(1963)은 내게 신선한 영감을 주었다. 조그마한 음향판에 입으로 물 수 있는 도구를 설치했다는 행위 자체는 여느 행위예술 및 설치예술 작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는 일반적인 음악의 청취 방식과는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혁신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작품을 통하여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표면적인 주제는 ‘음악의 청취’이지만, 이는 외부로 확장되어나가는 소리를 귀를 통하여 청취하는 ‘일반적인
청취’의 형태가 아니다. 청각에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신체 기관인 ‘입’에 도구를 물음으로써 몸 안으로 소리를
듣는, 매우 내적이고 개인적이며 특수성을 띄고 있는 청취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해석의 범위를 조금 더 넓혀보면, 이 작품은 심지어 음악의
외적인 전달을 방해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음향판의 음량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확성기를 떼어내버린 점과, 우리 신체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의도적인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관인 ‘입’에 소리를 만들어내는 역할이 아닌 소리를 듣는 역할을 부여한
점, 이 두 가지를 예시로 들 수 있다.
관람객은 이 작품을 보면서 크게 두 가지 소리를 상상할 수 있다고 본다. 한
가지 소리는 ‘당시 백남준의 머릿속에서 들린 소리’이다. 백남준 작가가 저 도구를 물고 있었을 때 그의 머릿속에서는 - 혹은
그의 입 속에서는 무슨 소리가 들렸을지 상상해 볼 수 있으며, 관객들이 상상할 수 있는 다른 한 가지
소리는 바로 ‘작품을 진행하던 도중 외적으로 들린 소리’이다. 작가가 도구를 입에 무는 순간에도 미세하게나마 소리가 났을 것이고, 도구를
물고 숨을 쉬었을 때에도 도구와 입 사이에서 바람의 마찰음이 생겼을 수도 있다. 이러한 소리들을 관객들이
직접 들어볼 방법은 없지만, 이 작품을 보았을 때 이러한 소리들을 상상해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백남준의 작품에 대한 오마주적인 곡 <Mouth Music: Extraordinary Phenomenon> for ensemble(2017)을 통하여 이 두 가지 소리를 음악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는데, 우선 “입으로 듣는 음악”이라는 제목에 더욱 잘 어울리는 작품을 작곡하기 위하여 현악기를 전부 제외시키고 관악기만 채택한 편성으로 작곡하였다. 외부적으로 들리는 소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하여 관악기의 현대적 주법 - 바람소리만 나게끔 연주하는 주법이나 바람을 불지 않고 운지법으로만 연주하는 주법 등을 음향적으로 사용하였고, 반면 머릿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묘사하는데에 있어서는 각 악기가 낼 수 있는 보편적인 음향을 가지고 묘사를 하였다. 또한, 청중들로 하여금 악기들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들려오는 음향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음향 너머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할 수 있도록 작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