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해설
‘’그때 그녀가 바라본 것...’’
풍성하게 주름잡힌 옥색치마, 맵시있게 비껴딛은 버선발, 자줏빛 노리개를 수줍게 움켜쥔 하얀 손, 고아한 미소와 몽롱한 눈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는 담채의 단아한 아름다움과 감각적인 색채의 대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칠흙같이 검은 트레머리와 진한 자줏빛 삼회장의 과감한 대비, 살짝 드리워진 선홍빛 속고름과 연파랑 소매끝동은 담채 위주의 복색에 절묘한 액센트의 대비효과를 주며 여인의 청순미와 관능미라는 이중성에서 오는 독특한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매 번 그림을 감상할 때면, 풍성한 옥색치마와 섬세한 트레머리에 먼저 눈길이 가면서도, 결국에는 꿈을 꾸듯 몽롱하게 바라보는 그녀의 애절한 눈빛에 빠져들게 된다. 그 순간 그녀는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떠올리고 있었을까? 그녀를 향한 나의 감정이입은 어느새 그녀의 눈이 되어, 그녀의 시선과 감정의 순간을 함께 공감하게 된다.
나는, 무(無)배경과 강조된 인물 사이의 대비에서 오는 기이한 조형미에서 시작되어, 모든 요소 하나하나에 섬세하게 드러나는 ‘대비와 조화’의 매력에서 음악적 재료를 찾았는데, 담채와 색채의 대비에서 오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음색’에 담아냈고, 시선을 따라 변화하는 감정의 흐름을 음형의 수직, 수평적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그로인해 이 작품의 형식은 마치 시선과 감정의 흐름처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하모닉스로 시작되는 음형의 조각들은 ‘미인도’의 비어있는 배경을 연상하게 하는데, 소리가 차츰 추가되면서 그림의 농담(濃淡)을 표현하는 음색 재료로 발전한다. 또한 이 음형은 인물의 내적 변화-다양한 감정의 흐름-를 표현하는 수직적 화음들과 강한 대비를 이루는데, 이것은 ‘미인도’의 인물과 배경의 대비에 의한 독특한 조형미를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요소는 곡 전체를 구성하는 핵심 재료로써 사용되며, 음색과 악기 조합의 변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붓끝이 ‘음’이 되어 펼쳐지는 시간의 그림 안에서, 그때 그녀가 바라본 것을 감상자 역시 보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