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해설
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다.
- 한데 사람은 어떤 경우에 기분이 좋은지 아나?
(...)
- 밤에 잠을 잘 자고, 좋은 꿈을 많이 꾸었을 때야. 그러나 무슨 꿈인지 기억해서는 안 되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야. 매우 화려하고 상쾌한 꿈을 꾸었는데, 모두 잊어버렸어. 그저 멋지게 아름다웠다는 것만
기억날 뿐이라네.
크눌프는 방랑자의 삶을 사는 인물이며, 앞과 같은 크눌프의 말에서 느낀 어떤 상쾌한 꿈, 방랑자의 고독함
등을 표현해보고자 했다. 또, 무의식에서 의식으로의 전환, 그리고 그 의식 속에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무의식의 잔재들을 표현해보고자 했다. 무의식을 밤, 의식을 낮에 비유하여 하루를
살아가는 방랑자의 삶 자체를 투영하였고, 곡 전체는 하나의 밤과 3부분으로 나누어진 낮으로 구성하였다.
낮의 주제는 각각
1. 꿈의 느낌만이 가장 큰 모호한 시기
2. 불현듯 꿈의 조각이 떠오르는 시기
3. 꿈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 강조되지만 의식 자체는 가장 잘게 분해되어가는 시기
로 설정했다.
낮의 기분이 밤에 꾼 꿈의 느낌으로 결정된다는 크눌프의 말에서 착안해 '밤’의 음들과 음정 구조는 같지만
기준음이 다른 '낮'의 음들을 진행할 방법을 구상했고, 그 방법으로 음렬을 선택했다. 첫 기준 음렬, 즉
'밤'의 음렬은 꿈꾸는 방랑자의 무의식의 흐름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작곡가 본인에게 가장 공허하고,
고독하다고 느껴지는 완전4도와 (완전4도를 두 번 이어붙인) 단7도의 음정을 만드는 음들을 첫 기준음을
공유한 채로 음렬의 중간과 끝에 각각 배치했고, '화려하고 멋진 꿈'이라는 스토리텔링적인 요소를
반영하여 음렬 내에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음정 구조를 만들었다. 그 후 음렬의 가장 끝 음으로부터
다시 완전4도 상행한 음을 새로운 기준음으로 하는 음렬을 더 그려보고, 순환하는 듯한 3개의 '낮' 음렬을
새로 설정했다. 각 음렬들은 각기 다른 분위기와 배경음이 선택된 채로 진행된다. 여러 개의 음렬을 고정한
후, 음렬 안에 존재하는 각 음정마다 리듬의 규칙(예: 1:3, 2:1)을 설정해 음을 등장시켰다.
(장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