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해설
근래에 들어 기법을 중심으로 작곡하는 곡들에 작가의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는 본인이 다양한 장르의 음악(국악과 서양 관현악, 오페라, 뮤지컬, 게임 음악, 방송 음악, 실내악 등)을 하면서, 작품 내에서 특정한 양식을 구분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는 듯하다. 청중의 관심이 일반적 감성과 기량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경우, 그게 꼭 상업적인 취향이 아니라 하더라도, 작곡가가 정해놓아야 할 감정 표현의 기준점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반면, 실내악 작품 중, 뭔가 색다른 뉘앙스의 이야기를 경험하기 위해 오는 청중을 위한 음악회라면, 그러한 경계선을 허물어뜨리는 것이 중요하다.
미니멀리즘이라 하면, 대체로 오밀조밀한 작은 음형들로 시작해서 대체로 순차적으로 확장되는 것이 나름 전통적인 스타일이었지만, 근래에는 이러한 경계마저도 사라지고, ‘포스트 미니멀’이라는 이름으로, 영화나 대중 음악 분야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그라모폰 등을 통해 클래식 앨범이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내고 있기도 하다. (eg. Johann Johanson, Max Richter 등) 그럼에도 이들의 작품이 클래식 작품으로서의 포스트 미니멀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구조적인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워낙, 더이상 현대음악에 대한 수요를 맞추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에 기인한, 음반사들이 찾은 하나의 방편인지도 모르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본인은 작곡가의 감성에 대한 작품 내에서의 표현을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더이상 기법의 새로움이 새로운 것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도 있겠지만, 어떠한 소재를 사용하든지 간에 청중이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는 것은 모든 예술가에게 있어 중요한 과제임을 돌려 말할 수는 없다. 이러한 생각에서, <KAFKA: Volume I>은 미니멀 작품의 모티브라기보다는 좀 더 클래시컬한 느낌의 단순한 음형과 표현의 모티브로 곡의 시작을 구성해 보았다. 이 음형이 반복하는 동안, 시작 부분에 첼로가 얹혀지면서, 일반적인 제스츄 어의 시작음이 다소 표현적이고 국악적인 흐름으로 옮겨가고 다시 원래의 뉘앙스로 돌아와 첫 번째 선율을 맺는다. 이러한 형태의 멜로디들이 나타남으로써: ‘한마디 짜리의 음형이 반복되는 미니멀의 진행’에, 멜로디가 드러나는 부분마다 섹션구조가 형성되어, 일종의 서주부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였다.
두 번째 부분인 26마디 즈음부터 추가되는 spiccato 음형들은, 첫마디부터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느리고 안정적인 느낌의 모티브에 ‘리듬적 긴장감을 추가함’으로써, 새로운 섹션으로의 자연스러운 이동을 디자인하였으며, 앞서 나타난 선율적인 제스츄어도 보다 확장된 형태로 사용하여, 제시된 형태에 대한 지속성을 유도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리듬과 선율은 더욱 자유롭게 확장되고 변화된다.
제목에 관한 언급: 작품을 진행하면서 오래전 읽은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작품을 떠올려보았는데, 나름 19세기적인 느낌의 모티브로 출발하여 원초적이고 표현주의적인 뉘앙스를 오가는 곡의 흐름을 구성하는 아이디어의 기초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변신’이라는 작품을 생각한 것은 아니어서 ‘Volume I’ 정도의 제목을 붙여보았다. 카프카의 ‘변신’에 대해서는 일종의 ‘실존적 불안'을 이야기한다는 설명도 찾아볼 수 있는데, 현대 사회, 특히, 지금의 이 시대 우리 모습을 읽는 느낌도 있다. 이 작품에서 획일적으로 사용되는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의 모티브에 부여되는, 각종 불안의 요소들이 그런 것을 대변하는 거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으나. 적어도 작품 속에서처럼, 그 불안의 요소가 지속적인 방식으로 사람의 삶과 사고를 변화시키는 것에는 동의하는 마음이다.
글|장석진(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