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 작곡가 강혜리-중견 조각가 이길래의 만남 선생님 작품에서 음악 영감
국민일보 / 2009-11-10 / HIT : 1085
"신예 작곡가 강혜리-중견 조각가 이길래의 만남 선생님 작품에서 음악 영감"
박유리 기자, 국민일보
신예 작곡가 강혜리―중견 조각가 이길래의 만남 “선생님 작품에서 음악 영감”
"동파이프를 반복적으로 집적해 소나무 형상에 이르기. 차가운 금속과 나무 표피의 만남은 기계적인 현대 사회에 생명의 물을 전하는 표현이다." (조각가 이길래의 작업 노트)
"수평적이고 수직적인 화음이 반복과 변형을 통해 울림이 되는 음악. 순환되는 화성은 삶과 죽음, 자연과 인간 등 우리를 둘러싼 생명과 같다." (작곡가 강혜리의 악보)
묘하게 닮아 있는 두 사람의 작업 흔적이다. 동파이프의 미세한 구멍들이 거대한 형상을 이루는 이길래(47)의 2007년 작품 '소나무 7'을 우연히 전시회에서 보고 영감을 받은 강혜리(29)는 그것을 악보에 담아 '순환'이란 현대음악을 완성했다. 서로 작품만을 듣고 본 두 사람이 최근 서울 여의도 카페에서 직접 만났다.
"선생님의 작품은 세포 분열을 하듯 생명력이 넘쳤습니다. 저의 곡도 처음에 화음 하나가 제시되고 그것이 변화해서 마지막에 제대로 된 모습을 드러내죠. 음을 인위적으로 휘게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잘 흘러가도록 음악에 에너지를 표현했어요."(강)
신인 작곡가가 인터뷰의 주인공이라며 말을 아끼겠다던 중견 조각가 이씨는 "제 작품도 점에서 시작해 선을 만들고, 그 선이 면을, 면이 공간을 형성합니다. 이런 것은 모든 물질이 지닌 생명과 같죠."라고 운을 뗐다. 충북 괴산군에 사는 이씨는 밭에 심어 놓은 호박을 보면서 '세포와 생명'이란 모티브를 착상했다. 척박한 땅에서 생명력을 자랑하는 나무를 형상화하는 작가로 알려진 그는 1995년 제1회 중앙비엔날레 특선 등을 수상했다.
"선생님의 작품은 수묵화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날카로운 금속을 가지고도 부드러운 작품을 만들듯 시끄럽고 불편할 수 있는 현대음악에 울림을 입히자고 생각했지요."(강)
"저도 작업할 때 음악적 요소를 씁니다. 리듬감이죠. 음의 높낮이가 있듯이 조형물에서도 선을 쭉 펼쳐 놓다가 꺾고, 다시 펼치곤 합니다. 직선적이기만 하면 재미가 없어요."(이)
산의 이쪽과 저쪽을 올라가다 보면 만나는 지점이 있듯 예술에서도 마지막 지점, 소통할 수 있는 고지가 있다. 서먹하게 앉아 있던 두 사람은 연주회날 다시 만나 미술과 음악에 관해 논하기로 약속했다. 이씨의 조각품 '나이테 1'과 음악을 동시에 접할 수 있는 연주회는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CJ문화재단에서 지난 4월 모집한 '제1회 신인 작곡가 발굴 프로젝트'에 당선된 강씨의 곡은 첼리스트 조영창, 비올리스트 마티아스 북홀츠, 바이올리니스트 배익환 등이 리더로 참여한 화음쳄버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된다. 화음쳄버오케스트라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2005년 올해의 예술상 음악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