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음악을 향한 두 남자의 38년 의기투합
동아일보 / 2011-10-13 / HIT : 1307
[지음지교를 꿈꾸며]박상연 예술감독-김성기 교수
창작음악을 향한 두 남자의 38년 의기투합
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박상연 화음쳄버오케스트라 예술감독(왼쪽)과 김성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두 사람은 “오늘은 세 시간이 넘도록 창작음악 얘기만 할 수 있어서 신난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동갑내기 친구 사이지만 일상 대화는 간결했다. 남자들은 원래 이렇단다. 하지만 음악 이야기가 시작되면 끝이 없다. 다른 소재가 끼어들 틈도 없다. 박상연 화음쳄버오케스트라 대표 겸 예술감독(57)이 주로 얘기하고 김성기 한국예술종합학교 작곡과 교수(57)는 듣는 편이다.
“어유, 지겹지 뭐. 매번 똑같은 얘기를 해서 이제 외울 지경이야.”(김 교수)
“허허허. 지금처럼만 계속 들어주라.”(박 감독)
박 감독이 이끄는 화음쳄버오케스트라는 2002년부터 ‘화음(畵音)프로젝트’를 펼쳐오고 있다. 갤러리나 미술관에 전시되는 미술작품 등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실내악곡을 연주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달 29일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9년 만에 작품번호 100번 ‘뜻밖의 기쁨’을 선보였다. 그동안 한국 작곡가 45명을 포함해 미술작가, 연주자 등 총 200여 명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거둔 결실이다.
박 감독은 “성기가 없었더라면 이 프로젝트는 시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고 김 교수는 “상연이 덕분에 작곡 활동의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작곡가인 김 교수는 이 프로젝트의 구상 단계부터 참여했다. 100곡 가운데 작품번호 3번 ‘심상(心象)의 경(景)’부터 99번 ‘그림이야기’까지 13곡을 작곡했다. 김 교수가 보는 박 감독은 힘들지만 분명한 예술철학을 가지고 실행에 옮기는 활동가다. 박 감독이 보는 김 교수는 국악기를 접목시키는 등 한국적 색채를 지닌, 버팀목 같은 작곡가다.
두 사람은 서울대 음대 73학번 동기. 박 감독은 비올라를, 김 교수는 작곡을 전공했다. 당시 박 감독은 같은 기악과 학생들보다는 ‘잘 노는’ 성악과나 ‘똑똑한’ 작곡과 친구들과 더 잘 어울렸다. 김 교수의 기억 속 박 감독은 ‘여학생들에게 꽤나 인기 많았던, 훤칠한 친구’다. 박 감독이 학창시절 워낙 ‘마당발’이라 김 교수에게 피아노 레슨 아르바이트를 소개해준 적도 있다.
대학시절 김 교수는 작곡활동에 큰 회의를 느꼈다. “‘나는 작곡하지 말자’고 단단히 결심했었죠. 현대음악 작법이 틀에 박혀 있었고 그 음악을 펼칠 장도 마땅치 않았을 때였어요. 작곡하는 나도 괴롭고 연주자도 즐겁지 않고 비용만 쓰고…. 관객과 전혀 소통할 수 없는 음악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자각이었습니다.”
박 감독은 그런 김 교수에게 창작음악의 중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했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졸업 후 김 교수는 프랑스 파리로, 박 감독은 독일 만하임으로 유학을 갔다가 1980년대 말 각각 귀국했다. 박 감독은 KBS교향악단 비올리스트로, 김 교수는 대학 강사로 숨 가쁘게 지냈다.
두 사람이 다시 자주 만나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부터. 1996년 화음쳄버오케스트라를 결성한 박 감독은 시대와 호흡하는 음악, 현장이 있는 음악을 관객과 나누고 싶었다. 그는 김 교수를 떠올리고 연락했다. 창작음악에 대한 갈망에 둘은 의기투합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의견을 나눴다.
김 교수는 동료 작곡가들을 일일이 만나 화음프로젝트의 취지를 직접 설명했다. 작곡가들도 흔치 않은 프로젝트에 반색했다. 신작이 작곡가 동인 모임에서 한 번 연주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소통하면서 재연도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음악 애호가라 해도 현대음악이라고 하면 외면하는 이들이 많다. 현대음악에 대한 환상과 부담을 버려야 한다. 고전음악도 오랜 시간 지나면서 재생산, 재해석되면서 권위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급하게 위촉받은 곡을 쓰는 일은 김 교수의 몫이다. 그는 “나는 화음프로젝트의 ‘땜빵’ 전문”이라면서 “그래도 그 덕분에 레퍼토리가 차곡차곡 모여 뿌듯한 측면도 있다”고 빙긋이 웃었다.
두 사람은 다음 달 제1회 화음프로젝트 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있다. 9년간 화음프로젝트에서 선보인 작품 가운데 엄선한 곡으로 마련한 무대가 다섯 차례 펼쳐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창문 가운데 하나를 잘 만들고 싶다’는 것이 이들의 꿈이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대학시절 김 교수는 작곡활동에 큰 회의를 느꼈다. “‘나는 작곡하지 말자’고 단단히 결심했었죠. 현대음악 작법이 틀에 박혀 있었고 그 음악을 펼칠 장도 마땅치 않았을 때였어요. 작곡하는 나도 괴롭고 연주자도 즐겁지 않고 비용만 쓰고…. 관객과 전혀 소통할 수 없는 음악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자각이었습니다.”
박 감독은 그런 김 교수에게 창작음악의 중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했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졸업 후 김 교수는 프랑스 파리로, 박 감독은 독일 만하임으로 유학을 갔다가 1980년대 말 각각 귀국했다. 박 감독은 KBS교향악단 비올리스트로, 김 교수는 대학 강사로 숨 가쁘게 지냈다.
두 사람이 다시 자주 만나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부터. 1996년 화음쳄버오케스트라를 결성한 박 감독은 시대와 호흡하는 음악, 현장이 있는 음악을 관객과 나누고 싶었다. 그는 김 교수를 떠올리고 연락했다. 창작음악에 대한 갈망에 둘은 의기투합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의견을 나눴다.
김 교수는 동료 작곡가들을 일일이 만나 화음프로젝트의 취지를 직접 설명했다. 작곡가들도 흔치 않은 프로젝트에 반색했다. 신작이 작곡가 동인 모임에서 한 번 연주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소통하면서 재연도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음악 애호가라 해도 현대음악이라고 하면 외면하는 이들이 많다. 현대음악에 대한 환상과 부담을 버려야 한다. 고전음악도 오랜 시간 지나면서 재생산, 재해석되면서 권위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급하게 위촉받은 곡을 쓰는 일은 김 교수의 몫이다. 그는 “나는 화음프로젝트의 ‘땜빵’ 전문”이라면서 “그래도 그 덕분에 레퍼토리가 차곡차곡 모여 뿌듯한 측면도 있다”고 빙긋이 웃었다.
두 사람은 다음 달 제1회 화음프로젝트 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있다. 9년간 화음프로젝트에서 선보인 작품 가운데 엄선한 곡으로 마련한 무대가 다섯 차례 펼쳐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창문 가운데 하나를 잘 만들고 싶다’는 것이 이들의 꿈이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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