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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사

박상연 대표/음악감독 샤갈전 관람기
한국일보 / 2004-08-19 / HIT : 1089
'화음체임버' 대표 박상연씨 '샤갈'展 관람기

저마다의 꿈이 전시장에 '둥둥'
솔직한 그림 마음으로 읽혀
새삼 삶에 대한 애정 느껴

실내악단 ‘화음’(畵音)과 화음체임버오케스트라의 대표 겸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비올라 연주자 박상연(50)씨가
 17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샤갈전을 찾았다.
음악가에게 화가의 그림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그의 감상기를 싣는다. 

2004_0818_Park.jpg

실내악단 ‘화음’이 매달 미술관에서 음악회도 열고 간혹 관심있는 전시회를 다녀 생활의 부분이기도 한 미술과의 인연은
나의 아주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 가기 전 이미 그림을 무척 많이 그렸고,
그 후엔 화가이셨던 어머니를 따라 수많은 전시회를 다녔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일까, 아니면 어린 시절의 회상일까.

어쨌든 샤갈전의 첫 방에 들어서자마자 오래 동안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들이 몰려온다.
테마가 있는 추억인 셈이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기면서 그의 명성은 이미 사라지고 그의 환상이 나의 환상과 함께 둥둥 떠다닌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억이 생생한 이상하고도 신기한 꿈들, 숨기고 싶었던 나의 어떤 과거들,
 아직도 마음에 담긴 나의 환상들이 살아나 전시실을 가득 메운다.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림마다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가 너무 솔직해 아무런 생각도 거치지 않고 그냥 마음으로 읽힌다.
한데 재미있는 건 사람마다 다 다르게 읽는다는 것이다. 해몽이라도 하듯이. 

문자 이전에 그림이 있었고 미술이 글의 다른 형태의 역할도 함을 생각하면 가장 쉽고 솔직한 표현방법임에 틀림이 없다.
음악도 그 이전에 소리가 있어 예술로 발전해 오늘의 음악이 있지만 음악에선 영혼의 흐름이 느껴진다면 미술에선 체온을 더 느끼는 듯 하다.
샤갈이 발레 음악의 무대 디자인에 훌륭한 역할을 했던 것은 유명한 일이다. 

몸으로 말하는 발레와 원시적이고 몽환적인 스트라빈스키, 드뷔시 등의 음악과는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일체감의 종합예술을 보여줬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미술과 음악의 만남은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표현방식이 서로 다른 독립된 예술이 인간의 심성을 어떤 각도에서 조명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겐 전 생애를 통하여 변하지 않는 것이 있고 항상 변하는 것이 있다.
한 70년 정도 시간의 단면도들을 보는 듯한 그의 작품들의 방을 거닐며 천수를 누린다면
지금 중간쯤 와있는 나의 모습이 그를 통해 투영되며 삶에 진한 애정을 새삼 느낀다.
마지막 방을 들어서는 순간 스쳐 지나가는 한 매력적인 여인에 한참 정신이 팔렸다. 

나오면서 나도 샤갈과 다를 바가 없구나 하는 생각에 유쾌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과거엔 정보가 없어 과장되었고 현대엔 불필요한 많은 정보가 환상을 만들어낸다.
샤갈이라는 유명세가 예술이라는 옷을 입고 고상하게 액자에 걸려있지만 지금이라도
그를 만나면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술 한 잔 하고 싶은 화가일 뿐이다. 

며칠 전 화음체임버오케스트라의 서울과 중국 베이징, 심양에서의 연주와
오늘의 샤갈 전시회가 한여름밤의 꿈이 되어버렸다.
 다른 전시회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과거로의 회상 또한 샤갈이 준 특별 선물인 셈이다. 

여름다웠던 여름, 화끈하게 더웠던 올여름은 연주여행과
샤갈의 기억으로 오래 동안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