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글로벌메뉴



에세이

[畵/音.zine vol.11] 박현의 연주 에세이 - 모티브의 재발견 No. 7: 브루크너 <현악오중주> 중 '아…
박현 / 2024-09-01 / HIT : 163

박현 연주 에세이-모티브의 재발견 No. 7

브루크너의 <현악오중주 F장조> 중 3악장 '아다지오'

글|박현(바이올리니스트, 화음챔버오케스트라 단원)

 

 

  안톤 브루크너는 1878년 당시 비엔나 콘서바토리 학장이었던 요제프 헬메스베르거(Joseph Hellmesberger)로부터 현악사중주를 위한 새로운 작품을 위촉받는다. 하지만, 그는 현악사중주 대신 비올라 성부를 더해 현악오중주를 작곡한다. 두 대의 비올라로 내성이 두터워진 음색 팔레트는 그가 집중했던 교향곡적 스타일을 드러낸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지난해 제44회 정기연주회에서 안성민의 편곡으로 더블베이스를 더한 오케스트라 버전을 연주했다. 브루크너가 의도한 음색을 극대화 시킬 수 있었던 시도였다.

 

  1879년 완성된 현악오중주 F장조는 교향곡의 구조를 연상시키는 총 네 악장(Moderato-Scherzo-Adagio-Finale)으로 이루어진다. 이 중 세 번째 악장인 아다지오(Adagio)는 독일 낭만주의의 서정성이 깊게 녹아든 악장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긴 호흡의 선율이 두드러진다. 브루크너는 어떤 모티브를 통해 서정적 아다지오를 만들었을까?

 

  3악장은 1바이올린이 이끄는 G장조의 주제 선율로 시작된다. 6음(시-미-라-레-솔-도)을 내림음으로 짚어야하기에 현악기에겐 음정과 음색이 까다로운 조성이다. 개방현이 없는 불투명한 음색의 선율은 13마디까지 이어지다가 반종지로 숨을 고른다. 첫 주제 영역에서 선율은 4+2마디 프레이즈 구조로 펼쳐진다. 악보1.의 첫 네 마디를 보면 각 성부의 시작에 ‘풍부한 감정으로’(ausdruckvoll) 그리고 ‘뒤로 당겨서’(gezogen)이란 뜻의 지시어가 적혀있다. 여기서 ‘gezogen’은 쉽게 흐르지 않고, 묵직하게 움직이라는 뜻으로, 연주자에게 감정의 무게와 아다지오의 속도를 섬세하게 제시한다.

 

c19df4e7af6b40bf66fe718846c5d508_1725083
악보1. 첫 주제 모티브, 1-5마디

 

  나머지 성부들은 1바이올린이 이끄는 선율을 뒷받침하는데, 비올라는 1바이올린에 화답하며 중요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2마디에서 2비올라가 1바이올린의 선율을 그림자같이 모방하면 1비올라가 다른 성부보다 목소리를 내어(hervortreten) 1바이올린의 상승하는 선율을 빈틈없이 채운다. 1주제 선율은 붓점 리듬을 타고 하행하며 끝맺는데, 이 모티브는 다시 19마디에서 시작되는 경과구의 모티브가 되어 1바이올린에서 2비올라로 넘겨진다. 하행하는 붓점 모티브는 가라앉았던 ‘gezogen’의 속도에서 벗어나는 유연한 매개체가 된다.

 

c19df4e7af6b40bf66fe718846c5d508_1725083
악보2. 경과구 모티브, 23-26마디

 

  조금 빨라진 속도(Bewegter)로 흐르는 2비올라의 붓점 모티브에 1바이올린은 강세를 더한 이분음으로 화답한다. C♭ 음을 페달톤으로 지속하는 첼로를 제외하고 1바이올린과 2비올라의 대화에 모든 성부가 반응한다. 경과구는 2주제로 가는 브릿지 역할을 하는데, C♭ 페달톤 위로 바이올린이 28마디에서 36마디까지 F-E-D-D 로 반음씩 하행하며 B 단조로 스며들 듯 조성을 옮긴다. 

 

c19df4e7af6b40bf66fe718846c5d508_1725083
악보3. 2주제 모티브, 37-38마디

 

  B단조의 2주제 선율은 1비올라에 의해 시작된다. [악보 3]에 표시된 2주제 모티브는 1주제 모티브 선형을 뒤집은 상행하는 모양이다. 선율을 제외한 나머지 성부들은 지속음을 연주하며 여린 다이나믹으로 시작되는 2주제를 지지한다. 각 음마다 무게를 더해 연주하는 포르타토(portato) 주법은 다시 돌아온 ‘gezogen’의 묵직한 움직임을 적절히 만든다. 

 

  1바이올린 중심으로 선율을 이어가던 1주제 영역과 달리, 2주제는 비올라에서 첼로 그리고 2바이올린으로 성부를 옮겨가며 발전한다. 프레이즈 구조도 2마디로 좁혀져 성부의 관계는 더욱 가깝게 짜여진다. 잠시 G장조로 1주제를 재현하지만, 2주제와 2주제 종결 모티브를 발전시키며 다이나믹을 fff까지 끌어올린다. 선율에 화답하던 십육분음표 프레이즈도 서서히 가라앉고, [악보4]에서와 같이 1바이올린이 D장조/단조 안에서 2주제 모티브를 재현한다. 

  

c19df4e7af6b40bf66fe718846c5d508_1725083

악보4. 2주제의 재현, 114-116 마디

 

  악장을 통틀어 세 번의 페르마타(fermata)가 등장하는데, 2주제의 재현 직전과 종결부 직전에 나오는 느린 네 마디(Langsamer)의 앞뒤로 쓰이며, 먼 조성으로의 이동과 급격한 분위기 전환을 돕는다. 이러한 인위적인 환기는 악장의 시작부터 마지막 직전까지 화성적으로 완전한 종지를 이루지 않기에 더욱 드라마틱한 느낌을 준다. 

 

  종결부는 2바이올린의 1주제 선율로 시작하고 곧 1주제의 종결 모티브였던 붓점 모티브를 모든 성부가 짝을 이루어 연주한다. 마지막으로 2비올라가 홀로 붓점 리듬을 이어가는 부분은 느려지지 않도록(Nicht Schleppend) 지시되어있다. 152마디부터 첼로의 리듬은 온음으로 변하고, 붓점도 점사분음과 팔분음표로 길어져 이미 속도가 느려진 듯한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1바이올린이 마지막으로 반복하는 1주제 모티브에 2바이올린과 2비올라가 차례로 화답하고, 다이나믹은 마지막 17 마디에 걸쳐 pp에서 ppp로 가라앉는다. 그렇게 악장 전체를 돌고 돌아 이어져 온 선율의 긴 여정은 온전한 마침표를 찍는다. [畵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