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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畵/音.zine vol.9] 박현의 연주 에세이 - 모티브의 재발견 No. 5: 말러 심포니 5번, 4악장(Adagietto…
박현 / 2024-03-01 / HIT : 107

박현의 연주에세이 - 모티브의 재발견 No. 5

 

말러 심포니 5, 4악장(Adagietto)

 

레너드 번스타인​1)은 하버드대학교에서 가진 그의 렉처 시리즈 <The Unanswered Question Six Talks at Harvard>​2)에서 모호함(Ambiguity)의 본질과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Ambiguity는 사전적으로 모호함”, “불명료함” 외에도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이라는 뜻을 가진다단어의 어원은 두 가지”(bothness)와 주위둘레”(aroundness)라는 뜻으로 양면성과도 연관이 있다번스타인은 모호함이 주는 아름다움의 대표적 예로 말러 심포니 5번 4악장을 언급한다그는 아다지에토가 주는 황홀한 감정은 모호함과 그것이 해결되는 순간에서 온다고 설명한다. 누군가를 향한 알 수 없던 감정이 확신이 되어가는 과정일까이 악장의 음악적 영감이 당시 말러가 사랑에 빠졌던 알마 쉰들러(Alma Schindler)​3)임을 모르더라도 아다지에토는 그의 깊은 내면으로부터의 고백임을 느낄 수 있다.

 

모호함은 비올라의 C지속음 위로 매우 느리게’(Sehr langsam) 발걸음을 내딛는 하프의 아르페지오에서 시작된다엇박 팔분음표와 쉼표로 불규칙해진 삼연음 리듬으로 머뭇거리듯 펼치는 하프의 아르페지오는 C-A음을 반복하고비올라와 첼로도 각각 C와 A음을 보여줄 뿐 화성은 근음을 숨기고 있다두 음만 가지고 조성은 a단조가 될지 F장조가 될지 예측할 수 없다이어 [악보1.]의 1바이올린이 감정을 눌러 담아 올리는 C-D-E음으로 불분명했던 조성이 F장조로 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긴장은 바로 해결되지 않고 전타음(Appoggiatura) E음에 한 번 더 머물렀다 F음으로 해결된다섬세하게 놓아진 불협화음은 다음 화성을 예고하고안개 속에서 갈피를 잡은 듯 나른한 안도감을 준다번스타인이 설명하는 모호함의 아름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베이스가 유일하게 첫 박에 F를 연주하지만 피치카토의 섬세한 울림으로 바이올린이 두 번째 박에서 F를 드러내도록 양보한다단 첫 세 마디 안에서 템포는 Sehr langsam-Molto ritardando-Molto Adagio로 매 마디마다 변화하고, pp의 여린 음색에서 급격한 셈여림의 변화를 이룬다우리는 이렇게 말러가 만든 감정의 소용돌이에 이끌려한 걸음씩 바이올린이 이끄는 1주제 선율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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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1. 도입부 1주제 모티브마디1-3

 

 

제 1 바이올린에 의한 1주제 선율은 첫 모티브를 변형시키며 여덟 마디 프레이즈를 이어간다하프는 Molto adagio로 바이올린의 선율은 Sehr langsam으로 두 성부는 다른 박동으로 움직인다얕은 숨을 쉬어가며 느리게 노래하는 바이올린의 선율을 하프의 아르페지오가 유연하게 인도한다선율을 제외한 다른 성부들은 지속음으로 화성을 채우고 첼로와 베이스는 피치카토로 하프에 화답한다바이올린 성부에는 감정을 가득 담아’(seelenvoll)라는 지시어가 적혀있다바이올린의 1주제는 반종지로 숨을 고른 뒤 첼로로 이어져 감정이 더욱 깊어진다첼로 선율부터 템포는 처음보다 유연하게, ‘느려지지 않게’(Nicht Schleppen) 흐른다.

 

선율이 a단조로 끝난 뒤 분위기는 사라질 듯 가라앉는다첫 도입부에서 하프가 그러했듯첼로비올라와 2바이올린이 A-C음을 반복하며 다시 조성에 모호한 물음표를 던진다. [악보2.]의 2바이올린이 선율을 맡을 듯 상행하는 주제 모티브(C-D-E-F)를 연주하지만그 위로 1바이올린이 C-Bb-A로 하행하며 선율을 이어나간다이 변형된 모티브는 도입부 하프의 불완전한 아르페지오(C-A)를 떠올리게 한다반 진행으로 거리를 좁힌 두 바이올린의 선율은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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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2. 첫 주제의 두 번째 재현마디 20-24

 

 

첫 주제의 두 번째 재현은 템포와 감정을 크게 변화시키며 종지를 향해 치닫는다처음으로 포르티시모(ff)까지 고조되는 도미넌트 화음에서 말러는 활의 움직임을 최대한 바꾸어 소리가 작아질 틈이 없도록 지시한다. 1바이올린 선율이 절제된 속도로 완전한 종지를 이루면 2바이올린은 지판가까이 활을 옮겨 음색을 바꾸고 서서히 작아지며 짧은 종결구를 덧붙인다.

 

1바이올린은 열정적인 톤으로 속도를 내어 2주제를 노래한다. C단조 선율은 서글픔보다는 따뜻한 감정으로’(mit Warme) 온기를 더해 흐른다바이올린이 G현에서 두터운 톤으로 시작하는 2주제는 상승하는 3도 모티브가 두드러진다. 1바이올린에 비올라가 북받친 감정으로 화답하고바이올린의 선율은 말러의 전형적인 큰 도약 음정으로 Gb단조를 향해 점점 고조된다. Gb단조 선율은 작은 유선형의 셈여림 안에서 마디마다 커졌다 작아지며 서서히 상승한다감정은 고조되지만 셈여림은 작은 크레센도 외엔 애틋한 pp음색을 유지한다여기서 도입부 1주제에서 쓰인 상승하는 세 음 모티브가 선율의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이 모티브는 50마디부터 72마디까지 등장하며 마치 숨길 수 없는 마음을 고백하듯 프레이즈를 늘려간다온음 간격이었던 모티브는 반음계로 좁혀져 조성을 다시 제 자리로 돌려놓을 준비를 한다. 1바이올린의 마지막 세 음은 A현 높은 포지션에서 조심스러운 톤으로 연주된다이어 D현에서 길고 가벼운 글리산도로 두 옥타브 아래의 C음으로 미끄러져 내려온다더 깊어질 수 없는 마음에 숨이 멎을 듯한 순간이다.

 

F장조로 돌아온 1주제 선율을 이번엔 2바이올린이 이끈다모티브가 변화했던 도입 선율과 다르게, [악보3.]에서와 같이 세 음 모티브는 모두 한 음씩 상승한다모티브 변화 없이 이어지는 선율은 보다 정적인 느낌이다선율의 뒷자락은 첼로가 이어받아 끝맺고첼로가 남긴 C음은 비올라하프에 의해 옥타브 위의 파장을 만든다이어 1바이올린이 C음을 이어받아 1주제를 마지막으로 재현한다말러는 머뭇거리듯’(Zögernd) 온음으로 지속하는 1바이올린의 C음과 선율의 시작 [악보4.]에 가장 진심 어린 마음’(mit innigster empfindung)을 담는다이 울림은 어디로 향할지 몰랐던 모호함보다 가장 소중한 마음을 내보이는 떨림에 가깝다두 바이올린의 모티브는 처음보다 느려진 시간 속에 조심스럽게 선율을 펼치며 긴 고백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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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3. 주제의 마지막 재현마디 7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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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4. 마디 8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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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Leonard Bernstein (1918-1990), 미국의 지휘자작곡가피아니스트

2)Bernstein, Leonard. The Unanswered Question Six Talks at Harvard. Harvard University Press, 1976

3) Alma Mahler-Werfel (1879-1964), 작곡가 겸 작가, 1901년 말러를 만나 1902년 결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