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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레퍼토리 프로젝트 Inspiration with Paintings Ⅲ: Ricercare] 나는 생각한다, 고로 연대한다.
서주원 / 2025-01-06 / HIT : 43

화음챔버오케스트라 레퍼토리 프로젝트 

<Inspiration with Paintings Ⅲ: Ricercare> 공연비평

 

 

나는 생각한다, 고로 연대한다.

 

 

역사적 서울의 겨울밤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현실이 훨씬 울퉁불퉁하기 때문이다. 평면 지도에 길은 있지만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막은 장애물은 없다. 서울역에서 역사박물관까지 가는 지도에는 가슴께까지 막은 장애물 사이에 줄이 매끄럽게 그어져 있었다. 따를 수 없는 길 앞에서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상과 현실 역시 다르다. 화음챔버의 뜻 깊은 연주가 있던 2024년 12월 14일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기록될 날이기도 했다. 난데없이 비상계엄령이 선포·해제된지 10여일 만에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날이다. 어렵게 이루어온 민주주의가 하룻밤 새 속절없이 막히는 것을 우리는 충격속에서 목도했다.  

 

이날 대규모 시위가 서울 곳곳에서 행해졌다. 떠들썩한 시내에서 벗어나 연주 장소로 향하는 으슥한 길에 음악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많은 이들에게 목소리로 영웅대우를 받는 한 대중가수는 긴박한 정세 속에서 반려견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후 비판받자 자신이 정치인도 아닌데 목소리를 왜 내냐고 반문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마땅하고,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낼 필요도 없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조차 위협받는 상황에서 회피와 침묵은 최선의 선택이 아니다. 그렇다면 화음의 연주회는 이 시국에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인가.

 

지하 3층 연주장

 

흔히 클래식 음악회의 문턱이 높다고 하는데 이곳은 낮은 정도가 아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연주장으로 쓰인 콘솔레이션 홀은 지하 3층에 있다. 서울의 대표적 연주회장인 위용도 당당한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과 달리 평평한 지상은 시민들의 공원으로 이용되고 박물관은 벙커처럼 땅 아래에 자리 잡았다. 그렇다고 진입장벽이 낮은 것도 아니다. 장소는 물론이거니와 이곳에서 연주회를 한다는 것 자체가 대부분의 이들에는 생소할 것이다. 여기에서 내는 소리는 묻히기 쉽다. 부러 찾아보고 불편하게 찾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화음챔버는 이곳에서 지난 3년간 한 해의 마지막 연주를 해왔다. 이번 연주는 3년간 진행한 레퍼토리 프로젝트의 마지막 연주이기도 했다. 이 여정은 무슨 의미를 남긴 것일까.

 

점, 선, 면의 탐구

 

음악회는 탐구를 주제로 1부는 “점, 선, 면의 탐구”, 2부는 “음악의 탐구”로 진행됐다. 1부는 J.S.바흐의 <음악의 헌정, BWV1079> 중 ‘3성 리체르카르’와 ‘6성 리체르카르’를 각각 처음과 끝에, 한대섭과 김성기의 작품을 중간에 배치했다. 바흐의 작품은 주제를 엄격한 규칙에 맞춰 여러 성부에서 모방하는 푸가 작법으로 작곡됐는데, 바흐는 이 작품에 푸가를 뜻하는 ‘리체르카르’(‘탐색하다’의 의미를 가진다)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1747년, 프리드리히 2세의 초청으로 간 궁에서 바흐는 왕이 제시한 주제로 3성 푸가를 즉흥으로 연주했는데, 감탄했던 왕은 성부를 늘려 6성 푸가로 연주할 것을 요청했다. 바흐는 왕의 까다로운 주제가 6성 푸가로 즉흥 연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로부터 2개월 후, 바흐는 왕의 주제를 기반으로 3성 푸가, 6성 푸가에 더해 소나타와 여러 카논을 작곡한 후 왕에게 헌정했다.  

 

1부는 ‘3성 리체르카르’로 예사롭지 않은 주제를 선보이며 시작했다. 1부 마지막으로 ‘6성 리체르카르’가 연주될 때는 몬드리안의 추상화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이 무대를 둘러싼 커다란 벽 세 면에 비춰졌다. 완성된 미술작품이 한 번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음악에 맞춰 점에서 시작해 선을 만들고, 선들이 면을 만드는 과정을 재현한 형태였다. 리체르카르는 참여하는 성부들이 대등한 중요성을 가진다. 각 성부는 독립적으로 진행하는 것 같지만 서로의 선율을 주의 깊게 듣고 반응하면서 점차 복잡하게 얽힌다. 함께 제시된 그림은 수평선과 수직선과 색채 등 회화의 본질적인 것만 남기고 모든 것을 제했다. 몬드리안 회화의 극적 단순성과 바흐 음악의 고도의 치밀함이 만드는 추상의 세계는 오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곰곰이 생각한다

 

한 점에서 시작한 음이 허공을 가로지른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다른 파트에서 같은 음형을 반복한다. 한대섭의 <점, 저엄, 저어엄...>에서 청자들은 직관적으로 음의 움직임을 그려보게 되며, 다층적 울림으로 청각적 공간이 확장되는 것을 느낀다. 여러 파트에서 음형을 따라하는 패턴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점차 서로 다른 음형들도 겹쳐지며 다채로운 소리의 질감을 만든다. 이러한 작품 구성 원리는 같은 음형을 다른 성부에서 모방하는 대위법과도 유사해 보이지만, 이 작품의 차별성은 음의 미묘한 파동과 음들의 섬세한 흐름 자체에 주목한 것에 있다. 즉 개별 요소의 질서정연한 상호 작용으로 응집력을 이루기보다 음과 음형의 유연한 배치로 율동감을 만든다. 한 “점”은 점점 “저엄, 저어엄...”으로 진동하는데 그 자체로도 충만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한 음에서 파생된 움직임이 음형과 음악을 생성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음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한 작품이자 한편으로는 음악의 본질을 추적하는 명상으로도 보였다. 연주와 함께 비춰진 칸딘스키의 <구성8>은 다양한 선과 도형, 색채가 시각적 공간에 역동적으로 표현돼 기하학적이면서 유기적인 음악의 구성과 훌륭하게 병치됐다. 그림에 자리한 음표, 혹은 핵 같은 씨앗을 연상시키는 진동하는 큰 검은 점은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김성기의 작품은 작은 검은 점들이 찍힌 김환기의 그림과 조합을 이루었다. <화음프로젝트 Op.120 김환기의 작품 속에>는 처음부터 미술작품과 관련된 작품이다. 무수한 검은 점이 찍힌 김환기의 <27-I-70 #142>는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복합적이다. 둥근 점들은 사각형 안에 있지만 점의 곡선과 사각형의 직선 형태 모두 불분명하고, 다 비슷해 보이지만 어떤 것도 같은 것은 없다. 경계도 명확하지 않다. 이는 유화물감을 코튼에 사용해 마치 수묵화처럼 색이 퍼져나가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괄적으로 깎아서 다듬은 것이 아닌, 각각의 고유한 요소가 살아있는 작품이 지닌 멋을 김성기는 우리의 정서를 살린 짧은 7개 악장에 담아냈다. 부드럽게 넘실거리는 현악합주에 플루트와 오보에를 더해 생동하는 기운을 불어넣었다. 이 작품의 독특한 점은 작곡가가 화가의 내면을 상상해 창작했다는 것이다. 전 악장은 보이는 이미지를 단순히 구현한 것이 아니라 작품의 구상부터 탄생까지의 과정을 연속적으로 다룬다. 이로써 청자가 내재된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며 작가의 창작 공간으로 들어가도록 초대한다. 개별성이 살아있는 촘촘한 점들이 큰 화폭 안에서 통일감을 보이듯, 다양한 감정을 담은 악장들은 일관되게 한국적 정서를 통해 연결됐다.

 

저항적 서정성

 

2부는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다장조, 작품번호48>이었다. 차이콥스키는 이 작품을 1880년에 작곡했는데, 같은 시기에 <1812년 서곡, 작품번호49>도 연달아 완성했다. <1812년 서곡>은 나폴레옹 군대에 대한 러시아의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를 위해 의뢰된 작품이다. 내키지 않았지만 차이콥스키는 대포소리가 불꽃놀이처럼 여기저기서 펑펑 터지는 거창한 작품을 썼다. 화려하게 축하한들 실상 대포는 대량 살상 무기다. 차이콥스키는 매우 소란스럽기만 한 음악이라고 이 작품에 대해 혹평했다. 그러나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와 쓴 <현을 위한 세레나데>는 달랐다. 이 우아한 세레나데에 차이콥스키는 각별한 애정과 자부심을 느꼈다. 세레나데는 본래 밤에 부르는 감미로운 사랑 노래와 연관된 음악이다. 이날 연주에서는 매 악장, 음악과 어울리는 러시아 인상주의 그림들을 보여줬다. 네 악장에 걸쳐 더할 수 없이 다감한 차이콥스키의 선율이 들려오는 가운데 눈 오는 거리와 근사한 카페, 드레스가 소용돌이치는 무도회장, 서로를 포근히 감싸는 포옹, 신나게 달리는 눈썰매가 있는 행복한 풍경들이 펼쳐지며 얼어붙었던 마음을 다정하게 어루만졌다. 근래의 참담한 현실과 가장 동떨어져있는 것 같은 낭만적 음악과 그림이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가장 필요한 종류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가슴에 총구를 들이댄다고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대포소리 같은 큰 소리만 귀를 사로잡는 것도 아니다. 이날 밤의 세레나데는 야만적 상황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인간성과 감성을 확인하는 노래가 됐다. 시대가 어둡고 악할 때는 순정한 서정성을 지키려는 것 자체가 가장 강력한 저항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생각의 승리

 

바흐는 왕이 던진 도전에 예술적 해결로 대응했다. 왕의 주제로 리체르카르를 만들면서 바흐는 다음의 문장을 적었다. “Regis Iussu Cantio Et Reliqua Canonica Arte Resoluta.” 왕이 제시한 주제를 카논예술에 따라 풀었다는 의미다. 각 단어의 첫 알파벳은 리체르카르(Ricercar)가 된다. 사실 왕이 제시한 주제는 푸가의 주제로 삼기에는 지나치게 울퉁불퉁했다. 불규칙하고 반음계가 연달아 나오는 선율은 대위법의 대가 바흐에게도 즉시 해결할 수 없는, 숙고의 시간이 필요했던 주제였다. 그렇지만 바흐는 이리저리 방황하는 주제가 대화로 연결되며 놀라운 질서로 통합되는 작품으로 완성했다. 점(음), 선(선율), 면(화성 구조)의 상호작용이 훌륭하게 구현된 것이다. 바흐의 작품에서 모든 성부가 대등하게 대화하는 대위법은 왕의 독재가 아닌 민주적 상호 작용의 은유로도 볼 수 있다. 하나의 음으로부터 시작하는 한대섭의 작품에서는 음악을 이루는 가장 작은 한 음이 가진 힘을 재발견하게 되며, 무수히 흩뿌려진 점들에서 연결된 이야기를 이끌어낸 김성기의 작품에서는 같은 정서가 이질적인 것 사이에 공명을 만드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들 세 작품의 스타일과 의도는 다르지만 소리로 표현된 생각의 승리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집단적 확언

 

예술은 지배자의 도발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이날 연주회에 온 이들은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참여하거나 사회에서 예술의 역할에 대한 답을 찾으러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칼날 위에 서있던 날, 이 연주회는 단순히 음악가와 감상자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성향을 가진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훼손할 수 없는 인간정신과 음악의 아름다움을 나누었다. 누구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인간다움을 지키고자 하는 집단적 확언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위기의 시대에 예술은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방관하지도 않는다. 더더욱 음악은 침묵으로 도피하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지켜야 하는 가치이자 실천인 것과 마찬가지로 음악 역시 살아 숨 쉬는 실천이다. 바흐로 시작해 한대섭과 김성기, 그리고 차이콥스키까지 이날 화음챔버의 연주는 생각의 힘과 회복의 의지를 선언했다.  

 

연대의 찬가

 

길에 놓인 장애물은 길을 재고할 것을 요구한다. 현실에서 이상을 실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길을 건널 방법을 궁리하며 가는 여정 자체가 새로운 역사가 된다. 오랫동안 한국 클래식 음악계는 실내악과 현대음악의 불모지이자 한국 작곡가의 작품이 변방에 있다는 특수성이 있었다. 화음의 30년, 그리고 특별히 지난 3년간의 레퍼토리 프로젝트는 다양한 시각으로 바로크 시대부터 현대까지, 특별히 한국 창작곡을 조합해 선보이며 고립된 점들을 이어 많은 이들이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왔다. 실험적인 것과 대중적인 것의 균형을 맞추는 한편 연주 전 해설을 통한 교육을 병행했다. 여전히 고전과 낭만, 교향곡과 독주곡에 치우친 한국 음악계의 판도 자체가 획기적으로 바뀌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변화의 결과가 어느 정도 눈에 보이는 지점에 왔다. 주요 연주회장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실내악과 현대음악, 한국 작곡가의 작품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그사이 소위 스타 연주자들이 유명세에 힘입어 실내악단을 결성해 반짝 활동하다 흩어지기를 반복했지만, 화음챔버는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실내악단의 선두로 무대를 지켜왔다. 잘 갖춰진 무대 뿐 아니라 음악이 없던 수많은 공간을 무대로 만들면서. 

 

장애물 가득한, 순탄치 않은 길을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오래 함께 지나왔을까. 단절된 한 점에서 다른 소리들이 모여 시작했지만 비전을 공유하며 끊임없이 연결을 시도해왔기 때문 아닐까. 정신의 무력함과 침묵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성찰을 촉구하며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음악은 이때 연대의 찬가가 된다. 유독 어두웠던 겨울밤, 여러 곳에서 쉽지 않았을 발걸음으로 지하 깊은 곳을 채운 음악가와 청중은 몸소 이를 보여주었다. 음악을 둘러싼 이들을 거듭 둘러보며 가졌던 미더운 마음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서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