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 프로젝트’ 2023년 첫 음악회가 4월 6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렸다. 이 프로젝트는 고전의 걸작에서 음악적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에 더하여, 그간 화음챔버에서 초연했던 한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다시 연주함으로써 현대음악 작품을 연주 레퍼토리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의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번 음악회의 주제는 ‘신화’로,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이며 현대 인간 사회를 이해하는 원형이기도 한 신화를 음악적으로 형상화한 흥미로운 작품들이 무대에 올랐다. 라우타바라(E. Rautavara)의 <핀란드 신화>(A Finnish Myth), 카겔(M. Kagel)의 <목신>(Pan), 스트라빈스키의 <Apollon musagète>와 한국 작곡가 전다빈의 <보레아스>(BOREAS), 박윤경의 <므네모시네 요정나라>가 연주되었으며, 이 중 전다빈의 작품은 2021년에, 박윤경의 작품은 2016년에 화음챔버가 초연한 작품이다. 핀란드의 신화와 함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목신의 신 ‘판’과 아폴로, 북풍의 신 보레아스, 기억의 신 므네모시네 이야기가 독특한 사운드와 연결되어 현대음악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현악기로 그리는 신화의 세계
評 박진주
신화와 음악의 만남은 익숙하고 흔한 소재다. 어떤 신화에서든 음악과 관련된 대목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반대로 음악도 신화를 즐겨 품어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이번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신화’가 특별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현대의 작품만으로 범위를 맞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눈에 띄었던 작품은 전다빈의 <보레아스>였다. 현악 오케스트라를 마치 하나의 악기처럼 다루면서 거칠고 불규칙적인 음향을 만들어내고, 이를 생황과 대립시키거나 화해시켰다. 현악 오케스트라와 생황의 조화 혹은 부조화 속에서 청자는 북풍의 신 보레아스의 거친 성정을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박윤경의 <므네모시네 요정나라>도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을 작곡의 단초로 삼고 있었는데, 흥미롭게도 전혀 다른 어법을 보여주었다. <보레아스>에서는 현악 오케스트라가 변덕스럽고 거친 음향적 효과를 만들며 독주악기와 대비를 이루었다면, <므네모시네 요정나라>에서는 무거운 현악기의 사운드로 음향을 안정적으로 채우고 그 위에서 음악적 사건들을 펼쳐나갔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현대음악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서 상이한 표현법과 음색, 음향을 요구하는 작품들을 소화해냈고 여기서 박상연 지휘자와 단원들의 노력과 고민이 잘 드러났다. 반면 앙코르에서는 그 고민이 조금 부족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앙코르 곡을 반드시 프로그램과 연관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화와 현대음악으로 가득 채운 100여 분 끝에 등장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는 너무도 이질적이어서 의아하게 들렸다. 흔하지 않은 프로그램으로 정성스럽게 준비한 연주에 다소 아쉬운 마침표였다.
별점: ★★★★☆
현대음악으로 재해석한 신화의 이면: 신에 대한 두려움
評 김소정
1부는 북쪽의 신을 형상화한 음악으로 채워졌다. <핀란드 신화>에서는 강한 선율로 신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묵직한 선율로 압도하는 신의 힘을 천둥소리처럼 표현했다. 더불어 바이올린의 불안한 소리와 더블베이스가 현을 뜯어내서 내는 괴기한 소리가 불협화음을 이뤘다. <보레아스>에서는 귀가 찢어질 듯한 생황 연주를 중심으로 현악기의 선율이 얹어지면서 마치 들판에 거친 폭풍우가 빠르게 다가오면 모든 것을 파괴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연주 내내 소음과 소리의 경계에 서 있었으며, 바이올린의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바람 소리를 내는 독특한 연주를 구사했다. 두 곡 모두 신화의 아름다움이 아닌, 신에 대한 두려움을 부각했다.
2부는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구성됐다. <목신>에서는 장난기 많은 목신을 표현한 피콜로의 밝고 명랑한 소리와 대비되는 바이올린, 첼로의 진중하고 다소 무거운 사운드는 대비되며 평행 관계를 유지했다. 마지막은 시링크스가 목신에게 추격당할 때의 감정을 표현하듯 피콜로의 찢어질 듯한 소리가 주를 이루었으며, 절규하는 듯한 느낌으로 끝이 났다. 박윤경은 므네모시네를 모티프로 하여 첼로의 안정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소리로 시작하여 왈츠 느낌을 물씬 내며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현을 뜯어서 표현하며 다채로운 소리로 채웠다. 전반적으로 웅장하면서 감미로웠으나 모든 것을 포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며 이에 회의를 느끼며 힘들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그래도 잘 견뎠다는 위로를 하다가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감정으로 끝이 난다. 이것이 불협화음, 풍부하면서도 안아주고 싶은 멜로디로 전개되어 들으면서 위로가 되어 이번 연주에서 가장 인상 깊었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연주였으나 매끄럽지 않은 해설, 마지막 곡에서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자료가 잘 보이지 않았던 점, 현대음악을 중심으로 하고 있음에도 앙코르곡으로 바흐를 선택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별점: ★★★★☆
전문성과 매너리즘 사이에서
評 음악학자 오희숙
‘신화’라는 흥미로운 주제로 현대음악계에서는 무게감을 가지고 있는 스트라빈스키와 카겔, 한국 현대 작곡가 전다빈과 박윤경, 핀란드의 현대 작곡가 라우터바라를 엮은 것은 탁월한 기획이었다. 이 곡들은 전반적으로 날카로운 불협화음이 주를 이루는 모더니즘적 경향보다는 조성과 무조성, 익숙한 사운드와 낯선 새로움, 서정적 선율과 거친 음향이 균형감 있게 배합된 레퍼토리였기에 청중들은 현대음악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새로운 음향에 대한 호기심을 비교적 여유 있게 소화할 수 있었다. 박상연의 절도 있고 절제된 지휘는 화음 단원들이 곡 하나하나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이끌어 프로페셔널한 사운드를 구현하였다.
현대음악에 진심인 화음챔버의 기획력과 연주력이 이상적으로 결합된 공연이었다. 철저한 연습을 바탕으로 현대음악을 제대로 연주하기 위해 쇤베르크가 1918년 설립한 ‘사적인 음악연주협회’를 연상시켰다. 현대음악 공연의 이상적인 모델이 된 쇤베르크의 시도는 화음챔버의 2023년의 첫 레퍼토리 프로젝트의 기획과 공연과 많은 공통점을 보였다. 그런데 뭔가 아쉬웠다. 공연 후 그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도르노의 토스카니니 비판이 떠올랐다. 토스카니니는 완벽한 정확성을 보이는 최고의 지휘자였지만, 그의 웅장한 연주는 “첫 음표의 시작과 함께 음악이 시작되는 대신에 그라모폰 음반처럼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된 듯한 인상을 준다고 아도르노는 말했다. 음악의 그 어떤 알맹이, 아도르노는 그것을 ‘고통’이라고 말했다. 토스카니니의 연주에는 그 고통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화음챔버의 이날 공연도 균형 있고 매끄러웠지만, 팽팽한 긴장감이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은 찾기 어려웠던 것 같다. 전문성을 확보하는 순간 매너리즘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