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글로벌메뉴



비평

[2018 화음프로젝트 페스티벌 리뷰] 결핍을 희망으로 보는 예술가의 눈
서주원 / 2018-10-12 / HIT : 886

2018 화음 프로젝트 페스티벌 박수근과 김진열

915일 토요일 오후3시 박수근 미술관

 

 

<결핍을 희망으로 보는 예술가의 눈>

 

 

 

일상을 조명하는 예술가의 시선

 

예술가의 결핍은 자주 낭만적 환상으로 포장된다. 사후에 재평가되는 가난한 예술가의 초상은 소설만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다.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은 생전에 그림 그릴 재료조차 사기 힘들었고, 평생 개인전 한 번 제대로 열지 못했으며, 말년에는 수술비가 없어 한쪽 눈의 시력까지 잃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가난이 그의 전부가 아니었다. 젊은 시절 그의 재산은 오직 붓과 파레트밖에없었지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그의 작품의 생생한 소재가 됐다. 전쟁 직후 약 10여 년간 살았던 창신동 그의 집 마루에서 찍은 사진에는 그가 그린 작품들로 가득하다. 그가 그린 우리네의 옛 모습과 풍경들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힘이 나고 위로를 받는다. 보잘 것 없이 초라해 보이는 일상도 그의 따뜻한 시선 속에서 은은한 빛을 발한다. 예술은 가난하지 않다.

 

이제는 정신의 빈곤이 물질의 빈곤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가 되는 시대이다. 많은 이들이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났지만 정신적 위기에 처해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과대 포장된 다른 이들의 삶을 보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카페인 우울증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행복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경쟁하는 분위기에서 진정한 자기 성찰과 성숙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시선을 돌려보면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이들이 여전히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기에 쉽게 드러나지도 않는 이들에게 주목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이 예술가들의 시선은 소박하고 진실한 삶의 가치들을 다시 일깨워준다.

 

 

<고목과 여인><당신의 눈빛이 나를 뛰놀게 한다>

 

오랜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박수근의 고향 양구는 정겨운 농촌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현대화된 세련된 도시의 시각에서 보면 그곳은 시대의 변화에 뒤떨어진 변방 도시로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박수근에 대한 큰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양구는 도시 전체가 마치 박수근 미술관 같이 곳곳에 그의 작품들로 꾸며져 있는 예술의 도시다. 2018915일 양구 박수근 미술관에서는 조선희의 화음 프로젝트 Op.194 <바이올린, 비올라와 첼로를 위한 고목과 여인’>과 이재구의 화음 프로젝트 Op.195 <플루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3중주 당신의 눈빛이 나를 뛰놀게 한다’> 등 두 작품이 선보였다. 이 작품들은 박수근과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인 김진열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된 곡들이다. 이날 박수근 미술관에서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려 미술관 안팎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연주회의 오프닝은 모차르트의 <플루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위한 사중주 KV 285, 1악장>으로 활기차게 시작했다. 조선희의 화음 프로젝트 Op.194 <바이올린, 비올라와 첼로를 위한 고목과 여인’>은 박수근의 <고목과 여인>(1962)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작품이다. 작곡가는 <고목과 여인>이 창작된 시대적 배경에 주목했다. 이 작품의 고목은 일제시대의 서러움과 고달픔, 6.25전쟁의 불안감과 위기, 그리고 팍팍한 생활의 아픔 같은 것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것이다. 그래서 작곡가는 잎도 무성히 달려있지 않고 쓸쓸한 모습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고목에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 것으로 보았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흔들리듯 아주 여린 피치카토로 시작한 이 작품은 동음 반복 동기와 단2도 동기로 쓸쓸하면서도 메마른 울림을 만들었다. 이 간헐적 한숨은 곧 지속적인 탄식과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로 이어졌으며, 특징적으로 등장하는 반음계 진행은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갇혀있는 느낌은 작품 중간부에서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6연음부의 진행으로 더 강조됐다. 긴장감 넘치는 배경음 속에서 각 악기의 카덴차가 등장했는데,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급격한 도약 음정과 불안정한 리듬을 가진 날카로운 절규가 되고 첼로는 낮은 음의 계속적인 비브라토가 있는 흐느낌이 됐다.

 

암울한 시대의 각박한 삶 속에서 겪는 갈등과 슬픔이 표현된 이 작품에서 현의 거친 터치는 그림의 투박한 터치와 맞닿은 듯 했다. 이 작품은 고목이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듯 고단한 삶의 한숨, 절규, 신음으로 시대의 거친 속살을 표현했다. 이러한 삶의 생생한 감각은 살아있음을 드러낸다. 슬픔에 잠식되지 않고, 고통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는 이들은 결코 무기력하지 않다. 자신의 짐을 머리에 이고 굳건히 겨울을 버티고 있는 나무 곁을 지나가는 여인들처럼.

 

이재구의 작품 <플루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3중주 당신의 눈빛이 나를 뛰놀게 한다’>는 김진열 작가의 <눈맞춤>(2015)에서 출발했다. 김진열은 8남매 중 한 명으로 존재감 없이 보낸 유년 시절을 깊은 상처로 기억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자녀를 업고 다정하게 눈맞춤 하는 순간을 작품에 담아냈다. 여기에서 이재구는 김진열 작가 내면의 뜨거운 모성애적 감수성행복감으로 충만한 아이의 맑디맑은 표정에 주목한다. 연주에 앞선 해설에서 작곡가는 미술이 순간을 포착해서 표현한 반면, 음악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전개되는 시간예술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당신의 눈빛이 나를 뛰놀게 한다>는 행복한 눈맞춤 후에 아빠의 등에서 잠든 아이가 꿈속을 여행하는 장면을 음악적으로 추가했다고 말했다.

 

이 작품에서 작곡가는 플루트와 바이올린, 첼로에 특정한 역할을 설정했다. 첼로는 아빠를, 바이올린을 아이를, 그리고 플루트는 꿈속에서 뛰노는 아이를 상징한다. 이러한 설정은 음악을 감상할 때 적극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이끌었다. 첼로와 바이올린의 긴 지속음은 아빠와 아이의 눈맞춤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작품 전반에 반복되면서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형성했다. 꿈속에서 아이의 분신으로 나오는 플루트는 셔플리듬으로 아이가 경쾌하게 뛰어 노는 모습을 특징적으로 묘사했다.

 

흥미로운 것은 아빠(첼로)와 아이(바이올린), 그리고 아이의 분신(플루트)이 계속 함께 등장한다는 것이다. 아이와 아이의 분신이 분리될 수 없듯, 아빠와 아이도 시종일간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다. 이들은 자유롭고 대담한 움직임 속에서도 대립과 갈등 없이 서로의 움직임에 기민하게 호응하며 균형과 조화를 이루었다. 아이가 업힌 아버지의 등은 때로는 일렁이는 시냇물이, 때로는 너른 들판이, 때로는 높은 산이 됐다. 이 모험의 과정에서 다양한 주법이 나타나고 선율과 리듬의 변화가 잦았지만 친숙한 화성진행이 쓰여 작품은 친밀하게 다가왔다. 이러한 대중적인 화성진행은 작곡가가 밝혔듯 김진열 작가 전반에 나타나는 소재와 재료의 서민성과 친밀성을 반영한 것이다. 일상적인 소재에 독특한 환상을 더한 이 작품은 눈맞춤의 안정감과 모험의 활기가 어우러져 큰 호소력이 있었다.

 

 

결핍을 희망으로 보는 예술가의 눈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박수근은 한때 미8PX에서 미군병사들을 위해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당시 그곳에서 초상화 주문을 받으며 박수근의 모습을 지켜본 소설가 박완서는 이렇게 묘사했다. “그가 그린 나목을 볼 때마다 내 눈엔 마냥 춥고 헐벗어만 보이던 겨울나무가 그의 눈엔 어찌 그리 늠름하고도 숨 쉬듯이 정겹게 비춰졌을까 가슴 저리게 신기해지곤 한다.” “그 옆을 지나는 춥디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박완서는 훗날 박수근과 그의 그림이 그녀를 소설가의 길로 이끌었다고 고백했다. 같은 것을 다른 시각으로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예술가의 눈은 사람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해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존재들의 의미와 가치를 따뜻하고 투박한 손길로 표현한 박수근의 정신은 올해 박수근미술상을 수상한 작가 김진열에게서도 볼 수 있다. 김진열은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결을 독특한 질감으로 표현해왔다. 그의 전시실에는 든든한 무게감과 촌스러움의 투박함을 즐긴다.”소소한 것, 개인적인 것, 작고 보잘 것 없는 생명과 사물의 가치에 주목하고 관심을 삶을 위한 예술로 집중한다.”와 같이 그의 작품 철학을 볼 수 있는 문구들이 적혀 있다. 삶의 진실이 담긴 삶을 위한 예술은 소소하고 소박한 것들에 있는지도 모른다. 별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을 제거해야 할 방해물로 대할 때 삶은 끝없는 전쟁터로 변한다. 생존의 위협과 물질적 빈곤이 떠난 곳에 깊숙이 자리 잡은 정신적 황폐함과 우울은 수많은 이들의 좋아요가 아니라, 아버지의 따뜻한 눈맞춤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비록 우리에게 그런 아버지가 없어도 치유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고통과 고독을 의연하게 응시하고 담담하게 드러내는 예술, 결핍을 부재로 보지 않고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예술이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이다. 박수근의 작품이 그러하고, 조선희의 작품이 그러하다. 김진열의 작품이 그러하고 이재구의 작품이 그러하다. 이 예술이 우리가 기댈 등이 되며 우리를 지켜주는 눈빛이 된다. 사람을 향하는 이 따뜻한 시선들을 마주할 때 문득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렇다. “당신의 눈빛이 나를 뛰놀게 한다.”

 

 

서주원 (bwv1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