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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화음쳄버오케스트라의 전람회의 그림] 프레임 지우기
신예슬 / 2016-01-07 / HIT : 1417

프레임 지우기

 

 

신예슬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친애하는 나의 총사령관, 하르트만은 마치 보리스 고두노프가 그랬던 것처럼 들끓고 있었다. 소리와 생각들이 걸려있었고, 난 꿀꺽꿀꺽 마구 먹어치웠다. 그런 뒤에 간신히 그것들을 종이 위에 옮겨쓸 수 있었다.” - 무소르그스키

 

1873년 무소르그스키의 친구 화가 하르트만(Viktor Hartmann)이 죽었다. 1년 뒤 하르트만의 유작들이 전시되었다. 그림, 스케치, 건축 설계, 생활용품까지 많은 것들이 전시되었지만 무소르그스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열 점의 그림이었다. 난쟁이, 오래된 성, 튈르리 궁전, 비들로, 껍질을 덜 벗은 햇병아리들의 발레, 폴란드의 어느 부유한 유대인과 가난한 유대인(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슈무엘), 리모쥬의 시장, 카타콤, 닭발 위의 오두막, 키예프의 대문. 무소르그스키는 거기에 자신의 시선을 더했다. 전시회장을 거니는 감상자의 시선을 다섯 곡의 프롬나드에 담아냈다. 그렇게 <전람회의 그림>이 탄생했다.

 

미술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음악을 창작한다는 화음의 기획이 여기서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무소르그스키의 작품은 화음의 모토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무소르그스키의 작품이 하르트만의 그림들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다채로운 여러 장면을 보여줄 수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적으로 그 그림들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하르트만의 그림을 보지 않아도 <전람회의 그림>을 잘 느끼는데 문제는 없어 보인다. 화음 프로젝트에서 ‘영감’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이러한 맥락인 것 같다. 미술을 음악으로 표현하거나, 혹은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 그리고 다양한 것들에서 영감을 받아 음악을 만든다는 점. 무소르그스키가 하르트만의 작품들을 먹어치우고 새로운 음악을 만든 것처럼, 미술에서 받은 영감들은 시각의 프레임을 벗은 채 음악이라는 다른 영역으로 옮겨간다.

 

무소르그스키의 작품이 연주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2015년 12월 10일 예술의 전당 IBK홀에서 열린 화음 공연의 제목은 바로 전람회의 그림이었다. 최한별의 화음 프로젝트 Op.143 <십이간지 동화 이야기> 중 9, 10번과 화음 프로젝트 Op.159 <고궁보월: 옛 궁에서 달의 그림자를 밟노라>와 유진선의 화음 프로젝트 Op.158 <전람회의 그림 주제에 의한 변색>이 연주되었다. 최한별의 작품이 작가 사석원의 <고궁보월> 작품들에서 시작되었고, 유진선의 작품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에서 시작되었다. 두 곡 모두 한 점의 그림이 아닌 여러 점의 그림, 즉 작품들에서 시작하는 곡이었다.

 

 

 

최한별의 <고궁보월: 옛 궁에서 달의 그림자를 밟노라>

 

2015년 초에 초연되었던 화음 프로젝트 Op.143 <십이간지 동화이야기> 중 9번 말과 10번 양이 연주되고 난 뒤 화음 프로젝트 Op.159 <고궁보월: 옛 궁에서 달의 그림자를 밟노라>가 연주되었다. 드라마틱하고, 화려한 색채가 넘실거리는 강렬한 작품이었다. 작가 사석원의 <고궁보월> 작품 중 ‘1776년 3월 창덕궁 후원’, ‘경복궁 꽃사슴’, ‘덕수궁 사자’, ‘경복궁 향원정의 십장생’까지 총 네 점을 네 악장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최한별은 사석원의 작품과 최한별의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만났는지를 분명히 밝혔다. 최한별에게 사석원의 작품은 동시대의 음악과 닮아있는 다소 기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동시대의 예술작품들과 달리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로 안내하는 듯한 찬란함과 첫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움을 안겨주었다. 기존에 하던 작업들과 다소 다른 국면을 맞이한 최한별은 사석원의 작품 이면, 혹은 그 너머를 보고 음악으로 실현하려 했다. 정지된 화면에 생동감과 이야기를 부여해서 움직이는 장면으로 실현시키는 것. 최한별은 사석원의 그림들을 한순간으로 보고, 그 한 장면으로 멈춰지기 이전의 현장을 떠올렸다. 그림의 전후, 혹은 프레임 바깥에 있던 장면과 분위기를 상상했다. 첫 번째 곡 ‘1776년 3월 창덕궁 후원’에서는 흩날리는 눈발, 아마도 함께 들렸을 옅은 바람 소리, 반짝이는 별, 그리고 새벽의 긴장감을, ‘경복궁 꽃사슴’에서는 왕가의 여인들 중 뛰어노는 어린 공주들과 공주들을 다그치는 상궁들을, ‘덕수궁 사자’에서는 장엄하고 기품있는 왕을, ‘경복궁 향원정의 십장생’에서는 어디론가 뛰어나가는 십장생들 하나하나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처럼 생동감 있는 움직임을 그려냈다.

 

음악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미술을 잘 그려낸 작품이었다. 그림은 정지해있고, 음악은 시간 속에 흐른다. 그림은 이야기의 한 면을 보여주지만 음악은 조금 더 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음악은 움직인다. 겹겹이 쌓인다. 1776년 3월 창덕궁 후원의 어느 새벽녘의 고요함을, 경복궁 꽃사슴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움직임을, 덕수궁 사자의 위용 있는 존재감을, 경복궁 향원정의 십장생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최한별의 작업은 고궁보월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사석원의 작품은 최한별의 작품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지만 풀어내는 방식은 음악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미술에서 포착할 수 없었던 프레임 이면의 움직임에 생명을 부여한다. 음악가의 눈으로 미술작품의 사방을 넓힌다. 그림의 프레임 바깥으로 확장되는 <고궁보월>.

 

 

 

유진선의 <전람회의 그림 주제에 의한 변색>

 

변주가 아니라 변색이다. ‘주제에 의한 변주’라는 말은 자연스럽지만, 곧 그 변주들이 결국 주제라는 원형에 귀속되어 있음을 뜻하는 듯하다. 반면 변색은, 원래의 것을 일부 지워버린다. 유진선의 <전람회의 그림 주제에 의한 변색>에서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의 주제는 남아있긴 하지만 부분부분 지워지고, 부서져 있다. 유진선은 이 곡에서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의 주제를 일부 차용했고 각 곡의 선율과 화성, 음형이나 리듬패턴 등은 부분적으로 사용했다. 전람회의 그림이라는 큰 주제 자체가 곡의 중심이 되는 것은 맞지만, 곡 전체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그 주제가 아니라 그 주제를 다루는 유진선의 음악이다.

 

유진선의 작품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과 같은 구성으로 다섯 개의 프롬나드와 열 개의 곡들로 이루어져있고, 같은 소제목들로 쓰였다. 그 중 특별히 여섯 번째 곡이었던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슈무엘’에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라는 부제가, 여덟 번째 곡이었던 ‘카타콤’에는 ‘순교자들을 기억하며’와, ‘죽은 자와의 대화’(Con Mortuis In Lingua Mortua)에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혼들’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각 곡의 앞부분에서는 마치 힌트처럼 무소르그스키의 곡의 테마들이 등장했다. 손에 잡히는 출발점을 쥐여주고 그게 어떻게 서서히 사라지며 변해가는지 따라오게 했다. 중간중간 다시 무소르그스키의 테마들이 들리는 듯도 했다. 유진선만의 부분을 듣다가도 문득 무소르그스키의 음형들이 튀어나오고, 이 음형이 어디서 쓰였던 건지 떠올릴 때쯤 그 음형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숨은 무소르그스키 찾기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흔적은 분명 남아있는데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유진선은 <전람회의 그림>을 작곡가의 고유한 어법으로 재창조했다고 말했다. 유진선이 한 작품을 다시 창조하는 방식인 ‘변색’은 썩 근사하게 무소르그스키의 작품을 무너뜨렸다. 유진선이 새롭게 추가한 재료들이나 무소르그스키의 곡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부분들도 많았다. 쉽게 찾을 수 있는 무소르그스키의 테마들과 달리 유진선의 것들은 보다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무소르그스키의 것에서 유진선의 것으로, 또다시 반대로 옮겨가는 듯한 진행이 감상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무소로그스키의 테마가 나왔다가도 곧 조성이 희미해지고 겹겹이 엉켜있는 선율들이 등장해 선율과 화성을 찾기 어렵다가도, E장조 화음으로 종지해버린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회화에 비유하자면 ‘구상회화다’ 혹은 ‘추상회화다’ 라고 딱 잘라서 얘기할 수 없지만, 구상의 요소도, 추상의 요소도 모두 찾을 수 있는 그런 곡이었다. 한 가지 태도를 유지하며 감상할 수 없어서 계속해서 다른 집중을 요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작품의 안과 밖에 적용되는 여러 선입견과 개념들을, 무소르그스키를, 전람회의 그림들을 만들게 했던 그림들을 지우고, 밀어내며 유진선만의 새로운 것으로 채워나간다.

 

 

작품 잇기

 

화음 프로젝트의 곡들은 늘 다른 작품들과 연결되어있다. 처음에는 그림 하나에 곡 하나가 대부분이었지만, 점점 더 다양한 작품들과 연결된다. 이번 공연에서는 최한별과 사석원의 <고궁보월>의 그림들이, 유진선과 <전람회의 그림>의 주제들이 연결되었다. 화음 프로젝트에서는 음악과 미술 각각의 작은 두 점을 이어나가는 과정이 지속되어 왔다. 프로젝트 자체가 점과 점을 잇는 과정이라면 이번 공연처럼 화음 프로젝트의 창작곡만으로 이루어진 공연은 그 선들을 이어서 작은 도형을 만드는 과정 같다. 작은 도형들이 어떤 형태를 갖추고, 한 그림으로 완성되는 순간을 기대해본다. 음악과 미술이 더욱 내밀하고 풍성하게 만나서 음을 그리고 미술을 듣는 일이 더욱 흥미진진한 일이 되는 날을.

 

신예슬 arp273@naver.com

2014년 화음프로젝트 평론상, 2013년 제 15회 객석예술평론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