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글로벌메뉴



비평

화음프로젝트 Op.80
고원석 / 2009-06-2 / HIT : 1012

2009년 5월 30일 화음프로젝트 - 공간화랑 정승운전 ‘공제선’ 원고

유범석 작곡 - <기타와 타악기를 위한 ‘공제선(空際線)’>

Guitar. 서정실, Percussion. 김미연

 

 

 

 

 

정형과 비정형의 접점

 

 

고원석 (공간화랑 큐레이터)

 

 

건축적 부재들을 활용하여 명료하면서도 선 굵은 작업을 주로 선보인 작가 정승운은 소위 <집, 꿈, 숲> 시리즈로 불리는 일련의 연작들로 익히 알려져 있다. 정승운이라는 이름에 맞물려 쉽게 기억되는 그 작품들은 언어가 가진 의미보다 그 형식적 속성의 변형가능성에 주목, 물리적인 공간에서 그것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것들이었다. 독특한 형식미를 가지고 눈앞에 현현된 그 덩어리들은 언어가 연상시키는 일반적인 기의(記意)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장시켰는데, 그 시각적인 유쾌함과 중의적인 속성들은 현대미술의 건조한 속성과 대비되며 감정 이입을 이끌어 내는 것들이었다.

작가로서 자신을 대표했던 어떤 형식적 특징을 과감하게 폐기하고 새로운 형식의 작품들을 선보일 때, 작가는 막대한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익숙한 것들이 제공하는 그 안락함을 버리고 낮선 영역으로 몸을 움직일 때의 두려움은 편안함의 정도와 비례할 것이다. 시대정신과 실험정신을 퇴화시키지 않고 스스로를 계속 날선 창작의 험로로 이끌어가는 작가들의 작품을 조명하는 것은 공간화랑이 십수년만에 재개관한 이유이기도 했다.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내어 놓고자, 한 동안 고민에 빠졌던 정승운이 결국 새로운 갈피를 찾게 된 것은 자신이 처음 그림을 그렸을 때의 그 아득한 과거를 상기하면서 접근한 어떤 묵직한 정서에서였다. 그는 지금 자신이 속해서 살아가고 있는 도시에서 과시적으로 올라가고 있는 건축물들이 그려내는 직각의 스카이라인을 공간화랑의 벽돌 벽면을 바라보며 찾아내었다. 또한 그가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던 어릴 적, 자신의 첫 정물이 되어 주었던 고향 마을의 비정형의 산 능선들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상반된 선들을 오브제와 벽면의 결합이라는 방법으로 이어 놓았다. 그의 작품은 포지티브와 네가티브를 완전히 역전시켜 놓음으로써, 그 한계의 이면에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유범석 작곡의 <기타와 타악기를 위한 ‘공제선(空際線)’>은 정승운의 신작에서 보여진 양립 구조의 기묘한 혼재를 반영하듯, 기타와 퍼쿠션으로만 구성되었다. 작품의 정서가 그러하듯, 악기의 구성이나 화성적인 측면에서 장식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였다. 시작은 마치 유년기의 아름다운 추억이 가진 분위기를 기억하듯, 가볍고 따뜻한 느낌의 프롤로그로 주위를 환기시켰다. 초반부인 ‘공 - 지나간 것들의 기억’에서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건조한 심상을 아주 조금씩 움직이는 느낌이 표현되고 있다. 기타는 부드럽게 연주되고, 퍼쿠션은 조심스럽게 소리를 내고 있다. 연주는 고향의 풍경을 편안하게 바라보는 따뜻함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내면 속에서 상상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이미지들을 꺼내오기 시작한다.

보다 깊은 단계의 세계로 들어가면 혼재되는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이제 풍경은 이미지의 차원이 아니라 내면의 심상으로 전이된다. 형상은 비정형적으로 변화하고, 내면의 심상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뒤섞이는 상황을 기타의 주선율이 잘 표현하고 있다. ‘선 - 반복, 그리고 차이’에서 느껴지는 정서이다.

마지막 부분인 ‘공제선 - Reich, Metheny and Me'에서는 과거에 존재하는 어떤 원형적 형상과 오늘 내가 존재하는 이 도시의 풍경들이 혼합되며 조우하는 느낌들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과거는 현재와 맞닿아 있고, 그 모든 것들이 함께 존재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결국 오늘을 살아내는 존재의 본질인 것이다.

공간화랑에 설치된 정승운의 작품은 결국 두 가지의 공제선이 맞닿아 존재하게 되었다. 이 두 가지 풍경을 병치시켰을 때 나올 수 있는 많은 생각의 단초들을 그는 열어보고자 했던 것이다. 단정적 형식의 메시지보다 생각의 계기를 제공하는 여지를 남기는 형식을 시도했던 것은, 그가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의 소통에서 ‘변화’라는 것을 어떤 본질적 가치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와 과거가 혼재되면서 늘 다른 모습으로 있는 것이야말로 바로 존재한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은 유범석의 곡이 가진 시간적 선율과 전시장에 존재하는 정승운의 작품이 가진 물리적 형식이 결합됨으로써 어떤 인식의 범주를 탈피하게 만든 그 경험을 통해 그 시간과 장소를 공유한 모든 사람들에게 체험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