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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제43회 정기연주회 비평] 음악에 새겨진 이름: 음악과 사회
이경분 / 2022-06-01 / HIT : 638

화음 쳄버오케스트라 제43회 정기 연주회 감상문 <음악과 사회>

이경분(음악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된 후, 화음 쳄버 오케스트라의 첫 정기 연주회가 2022년 5월 6일 예술의 전당 IBK홀에서 개최되었다. 한 좌석씩 옆자리를 비워두었던 거리두기가 필요 없게 되어 객석은 이전의 차분하고 서늘했던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사람들의 열기로 들뜬 느낌까지 느껴졌다. 새삼 객석 안을 돌아보니 백발의 중장년층에 비해 어린 학생들과 젊은 남녀들의 존재가 훨씬 두드러져 보였다. 서구의 연주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다. 한국의 음악문화의 미래가 밝은 것은 젊은 청중이 주를 이룬다는 점인데, 처음 듣는 창작음악과 현대음악을 자주 레퍼토리로 삼는 화음 챔버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도 앞으로 지속되기만 한다면,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혼자 미소지었다. 

 

이번 정기 연주회의 암묵적 주제는 <음악과 사회>. 연주홀에서의 <음악과 사회>는 과연 어떤 것일까. 우선 떠오르는 것은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와 같이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학살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추상적인 기악음악이 언어적 도움 없이 특정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기악곡인 <광주여 영원히>도 제목과 작곡가의 창작 동기, 작품 탄생 배경이 메시지의 정치·사회적 방향을 제시한다. 너무나 유명한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이 탄생한 것도 기악곡만으로는 작곡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연주회에서는 음악외적인 방식이나, 언어적 도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특정한 음 모티브 자체를 작품 속에 숨겨 놓으면서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추상적인 기악음악은 구체적인 메시지로 묶어지기 힘들지만, 음 모티브에 작곡가의 이름을 새겨 넣는 방식은 적어도 작품에 작곡가의 싸인을 넣는 구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

 

바흐의 미완성 작품 <푸가의 예술>(현악 앙상블 버전: 미치노리 분야 편곡), 유진선의 화음프로젝트 <미인도>, 알반 베르크의 <서정적 모음곡>, 쇼스타코비치의 <현악4중주 5번> (실내 교향곡버전: 안성민 편곡)을 레퍼토리로 묶었다. 이 곡들은 언어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점, 작품 속에 작곡가의 싸인이 들어있거나 특정 선율을 인용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물론 유진선의 <미인도>는 신윤복의 그림 <미인도>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작곡가의 싸인이 아니라, 작품명 ‘미-in-도’를 중심 모티브로 삼았으니 결이 다르긴 하다. 

 

바흐의 <푸가의 예술>에서처럼 작곡가의 이름 이니셜을 싸인처럼 작품에 새기는 전통은 후대의 독일음악가들 뿐만 아니라, 쇼스타코비치와 같은 러시아 음악가에 의해서도 모방될 정도로 기발하고도 은밀한 자기표현 방식이다. 작곡가 이름의 알파벳이 독일식 음명과 잘 맞는 Bach는 시♭-라-도-시(독일식 음명 B-A-C-H), 알반 베르크Alban Berg는 A-B(라-시♭), 한스 아이슬러Hanns Eisler는 H-E(시-미) 등 가능하지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경우는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들다. 그런데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영어표기 D. Shostakovich가 아니라) 독일식 표기명 (D. Schostakowisch)에서 D-eS-C-H(레-미♭-도-시: 우리에게 낯선 음명은 E♭, 독일식으로 ‘Es’로 읽고, 알파벳으로 ‘S’이다.) 모티브를 작품 속에 자주 새겨 넣었는데, 러시아 작곡가이지만 독일음악의 전통에서 자신을 바라보고자 하는 제스처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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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1950)

 

쇼스타코비치가 현악사중주 5번을 작곡한 때는 1952년 가을. 한반도에서는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였다. 북한은 전쟁 중에도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소련 유학을 추진했다. 덕분에 김순남, 김원균, 정추 등 엘리트 음악가들이 1952년 모스크바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53년 3월 5일 스탈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은 급물살을 타고, 쇼스타코비치, 김순남 등 음악가들의 작품과 생애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이 죽고 난 후, 자신의 음악적 목소리를 크고 분명하게 드러내었는데, 바로 D-eS-C-H를 드러내는 강도에서 변화가 나타난다. 현악4중주 5번에서는 숨기는 듯,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았던 D-eS-C-H를 스탈린 죽은 해 여름에 작곡한 심포니 10번(1953년 12월 초연)에서는 여러 번 다양하게 반복해서 드러내며 강조한다. 그동안 ‘형식주의자’로서 정권의 의심을 받아왔던 불안하고 불편했던 쇼스타코비치는 이제 아주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음악적 차원으로 끝나지 않고, 스탈린의 죽음으로 야기된 소련 사회의 변화와 작곡가를 둘러싼 정치·사회적 환경의 변화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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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H

 

같은 시기, 모스크바의 북한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모스크바의 자유로워진 분위기에서 고무되어 김일성 독재를 비판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김일성을 비판했던 정추는 망명을 신청하였지만, 김순남은 유학생들을 소환하는 평양의 부름에 응했다. 스탈린의 죽음으로 한국전쟁도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체결되자 김일성의 남로당 숙청이 시작된 것이다. 김순남은 오히려 스탈린의 죽음과 휴전으로 인해 세계적 음악가로서 대성할 기회를 상실했다고 할 수 있다. 

 

<음악과 사회>라는 주제로 쇼스타코비치를 조명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미인도>를 포함하여 한국 작곡가들의 창작품을 200곡 이상 탄생시킨 화음프로젝트는 화음 챔버오케스트라의 다양한 면모와 가치를 대변한다. 한국 창작음악에 대한 사회적 외면을 생각하면, 화음 프로젝트는 한국 현대음악사의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23년이면 화음 챔버오케스트라 창단 30년의 역사가 된다니 현대음악에 척박한 한국 사회의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이어온 화음 챔버오케스트라에 큰 박수를 보낸다. (2020.5.27.) [畵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