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에의 단상(斷想) - For Circulation'
김은하 / 2008-11-20 / HIT : 903
강한 바람과 함께 닥친 갑작스런 추위에 움츠리기 쉬운 날씨임에도 11월 18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는 빈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관객들이 가득하였고, 무대 위 양쪽에 배치된 조형물들은 입장하는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케 하며 이어질 연주회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키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이는 미술 및 조형예술 그리고 영상매체와 연관되는 음악작품들의 연주를 처음 경험하는 관객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미 《화음쳄버오케스트라》의 연주회를 경험한 사람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본다. 특히 무대왼편에 위치한 작품인 이길래 작가의 『나이테 1(2007)』은 누구나 바로 인식할 수 있는 순환의 구조와 더불어 자연적 섭리를 나타내는 원적 구도 안에 응축된 생명력의 밀도를 인지케 하였으며, 세부 구조에 있어 동(銅)이라는 결코 가볍지도, 쉽게 다룰 수도 없는 재질로 이루어진 각기 다른 모습의 고리 모양인 개별 구조 하나하나가 메워지지 않고 뚫려있으면서 서로 붙여져 겹을 이루는 형태를 보여주는 가운데, 이 작품에 대한 음악적 구현에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연주회 프로그램의 시작 곡은 독일 낭만의 영향 아래 영국적 정서를 고취시켜 독특한 음악어법과 표현력을 나타내는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1857-1934)의 1905년 작 『현을 위한 서주와 알레그로(Introduction and Allegro for Strings, op. 47)』로 격정과 서정성의 다채로운 흐름 속에 주제의 순환이 감지되는 형태의 구조적 맥락과 푸가적 악곡구성이 결합된 걸작이다. 낭만시대 다양한 순환기법의 차원에서의 다이나믹과 구조성의 역학관계를 잘 나타내면서 또한 이 작품에서처럼 음향 처치에 있어 현악4중주 그룹과 전체 오케스트라 간의 음향대비, 대위법적 구조에서 솔로 악기들(각 현악 파트의 리더들)과 그룹 그리고 전체 오케스트라 간의 연결이 섬세하고 다양하게 적용되는 것을 연주로 잘 드러내는 데에는, 물론 모든 음악작품에 다 적용되는 것이겠지만, 연주자들 간의 호흡만큼 중요한 요소도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하면서 구축된 협응의 관계, 특히 해석에 있어 파트별 악보가 아닌 총보(score)를 가지고 네 명의 리더를 주축으로 토의와 의견교환으로 이루어지는 연주환경은 《화음쳄버오케스트》라의 생명력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은, 탄탄한 Viola와 Cello 그리고 Double-Bass 저음부에 비해 빠른 유니즌이 고음역으로 치닫는 부분에서 Violin파트 음향의 응집력이 흐트러지는 경향을 제외하고, 엘가 작품의 연주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제까지의 《화음프로젝트》와는 달리 처음으로 'Call for Score'를 통한 작품공모의 당선작으로 선정된 신인 작곡가 강혜리의 『Circulation-O for Strings』는 순환이라는 큰 흐름 속에 반복되는 음향과 그 배음열 구성의 변화, 강한 운동성과 이완, 응집과 부유(浮遊), 현란하리만치 다채로운 음향의 움직임이 팽창되듯 이끌려가다 다시 조각으로 분해 되고 또 다른 성격의 미시적 구조로 연결되는 일련의 과정을 나타내는 작품이다. 강하게 시작하는 저음부 C음의 출현은 물론 자체 변형의 모습을 갖기는 하지만 악곡 전체를 통해 반복되고, 악곡 부분 부분의 다양한 구성과 대비하여 더욱 강하게 각인되어 들려지면서 마치 거부하려할수록,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려할수록 그 존재감이 더욱 강하게 다가오는 듯한 힘을 느끼게 하였다. 강혜리의 악곡은 또한 현을 위한 다양한 연주기법들을 보여주는 가운데, 스타카토와 아르코의 대비, 스타카토와 함께 리듬적 단위가 대위적으로 연결되는 것, 변화되어 나타나는 저음부의 'C음-동기' 음향 위로 스타카토의 물결이 펴져나가는 모습과 강한 트레몰로를 동반한 하모닉스의 색채감이 감지되는가하면, 저음부에서 나타났던 'C음-동기'를 나중 다른 악기들이 받아 연주하면서 이전에 팽배했던 악곡의 긴장이 해소되고, 공유와 평정의 단계로 접어드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길래의 작품『 나이테 1』에 대한 음향적 구상은 이렇게 전체 생명력에 내재하는 순환-반복의 원칙과 세부적 차원의 다원성 및 생동감과의 맞물림을 적극적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조형작품에 대한 훌륭한 음악적 해석을 이끌어 냈다. 종반부로 가면서 갑작스럽게 출현한 조성적 부분이 그 화성의 단순한 구조로 오히려 이전의 악곡전개에 대한 '이질적인 새로움'으로 여겨지는 효과가 있었지만, 그 음향구조가 시간적으로 조금 오래 지속되면서 그때까지의 새로운 이질감이라는 느낌은 급격히 감소되었다. 연주에 있어서 조금 더 기대하고 싶었던 바는 긴장과 이완의 연결이 지속되는 음향전개에서 그 긴장과 이완 사이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 호흡이 좀 더 확보되었으면 하는 점이었고, 작품연주 이전 작곡가가 무대에서 자신의 음악에 대한 소개를 간략히 함으로 인해 청중으로 하여금 미리 연주될 곡에 대해 마음을 열고 준비하게 한 점은 상당히 주요한 부분이었다. 연주 중에 빔-프로젝터로 이길래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천천히 보여 졌는데, 사실 개별 《화음프로젝트》 연주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번 연주회에서는 음악의 현안인 조형예술품 『 나이테 1』과의 관계에 집중하기에도 사실 벅찬데 무대 위의 스크린 영상을 쫓아가면서 음악을 듣는 데는 주의를 분산시킨다는 점에서 무리가 있었다. 해석의 난해함으로 점철된 베토벤 후기 현악4중주 작품들 중 한 곡인 《op. 131, c#-minor》에서 악곡 구조의 비대함과 일곱이라는 악장 수에 놀라기보다는 그들 악장들 간의 연결과 경계가 분명치 않다는 사실과 더불어, 일반적인 형식적 틀을 벗어난 상황에서도 악곡 시작에 푸가를 통해 강하게 각인되어지는 '네 음-동기'가 작품의 후반부에서 예고되어지다가 첫 악장과 같은 조성(c#-minor)인 마지막 악장에서 다시 들려지는 가운데, 비록 프로그램 설정에 있어 사실상 예견되거나 전제된 주제적 연관성이 없었다 하더라도 '순환'이라는 측면에서 11월 18일 밤에 연주된 세 작품의 특이성을 찾는 것이 불가능해보이지는 않는다. 네 명의 리더에 의해 차례로 넘겨받는 '네 음-동기'의 성격은, 특히 네 번째 음(sfz)에 안착하는 모습에서 비통하면서도 인정하는 모습, 일방적인 체념도 수용도 아닌 어떤 사색(思索)의 무게감이 연주자 마다 조금씩 서로 다른 숨결로 -Cello의 경우 단호하기까지 한 - 이어져 개체적 해석의 다채로움이 돋보였다. 절묘한 화음과 연주자들 간의 호흡은 독특한 성부간의 연결과 함께 이루어지는 변주와 기교적 솔로부분, 악장으로 연계되는 연결부의 성격까지 훌륭하게 소화해낸 반면, 두 번째 변주부분의 넓은 음역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주제의 연결에서 악기 간 밸런스가 약간 불균형을 이루었던 것, 간혹 고음부의 Violin 소리가 모여지지 않고 흩어지는 것, 마지막에 점점 느려지다 원래 템포로 마무리되는 부분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점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화음(畵音)'이라는 이름 하에 갤러리 음악회를 열기 시작하면서 활동한 실내악단이 1996년 《화음쳄버오케스트라》로 거듭나면서 31번의 정기연주회를 열고, 그와는 따로 또는 함께 운영되는 《화음프로젝트》를 통하여 지금까지 미술관이나 전시회 현장에서 71개의 미술 작품에 관한 창작곡을 연주하였다는 사실은 국내에서도 유일한 현상이지만 국외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1993년의 창단의 이념이 16년째 이어지고 있고 그 활동과 역량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데에는 여러 요인들이 작용하겠지만, 우선 창단 취지에의 확고한 의지를 지속시키려는 발기인의 노력과 열정, 그 의지에 동참하는 연주단원들 간의 결속과 진지함 그리고 그들의 탁월한 음악성 및 연주력, 거기에 문화예술에 관련된 재단의 협응이 음악계에서 '창작을 이끌어내는 연주단체'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음악을 또는 미술작품을 다르게 경험하는 데에 대한 가능성들을 청중들에게 제시함은 결국 우리 시대에 발견되는 예술적 교감의 복합적인 현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의미한다. 바로크, 고전, 낭만음악의 재발견과 더불어 위와 같은 연주단체의 의식이 꾸준히 이어진다는 것은 현대음악에 대한 이해 이전에 설정된 선입관, 고전이나 낭만과 같은 음악을 쓸 수 있는 실력, 내면, 영혼이 없어 아무도 들어 알아먹지 못하는 컨템퍼러리 음악만 쓴다는 식의 비전문가에 의한 몰이해성 진단이 유력일간지에 여전히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음악 및 창작계에 소중한 불씨 역할을 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