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만들어내는 공간에 관하여
: 안성민의 <별이 빛나는 밤 II>(The Starry Night II, 화음 프로젝트 Op. 166, 2016) 초연에 대한 스케치
2016년 8월 31일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화음 프로젝트 Day9 <프로젝트 대전 2016: 코스모스> 음악회”는 특별했다. 대부분의 ‘미술관 음악회’가 미술 애호가와 현대음악에 익숙한 사람들 앞에서 연주된다면, 이날 자리를 메운 관객 대부분은 ‘매마수’(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체험을 즐기러 온 평범한 시민이었다. 미술관에서는 ‘코스모스’(cosmos)라는 타이틀로 예술과 과학의 융복합 전시가 한창이었다. 초등학생과 유아 그리고 그들의 부모가 인터렉티브 미술 작품을 작동시켜보고 신기한 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저녁 식사 후 집 앞 미술관으로 삼삼오오 나들이를 나온 참이었다. 이날 화음 쳄버오케스트라는 전시에 출품된 몇몇 작품을 토대로 작곡된 창작곡을 초연했다. 연주자는 시민들이 미술작품을 둘러보러 가는 길목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 앞에서 불협화와 미분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창작곡이 연주됐다. 특히 몇몇 곡은 극히 섬세한 음향 안에 다양한 대조와 변이를 작동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전통적인 음악회장이 아니었고 관객 또한 현대음악을 자주 청취하는 이들이 아니었기에, 이 음악을 둘러싼 미세한 소음 역시 만만치 않게 생성됐다. 민감한 청자는 작품 내부의 음향적 대조뿐 아니라 ‘연주되는 곡’과 ‘미술관의 소음’ 사이에서도 대조를 느낄 수 있었다. 전통적인 음고, 리듬, 화성에서 벗어나 소음과 같은 음향까지를 음악의 재료로 사용하게 된 음악이, 다시 ‘일상’에서 ‘평범한 이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경계를 규정해야 할지에 대해 의문이 드는 순간이었다.
네 번째로 연주되었던 안성민의 <별이 빛나는 밤 II>(The Starry Night II, 화음프로젝트 Op. 166, 2016)는 아주 작은 소리로 시작했다. 그 자리에 있던 대다수 사람들이 음악의 시작을 감지하지 못할 정도였다. 몇몇은 두런거리고 있었고 어린이와 커플이 좌우의 통로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들릴 듯 말 듯 반복하던 화음이 느닷없이 액셀을 밟듯 관객의 의식 안에 훅 등장한 순간이 있었다. 갑자기 커진 소리가 미술관의 소음을 차폐했다. 순간 착시가 일어난 듯 코앞에 소리가 어른거렸다. 무엇보다도 이 음악은 반복하는 리듬을 통해 ‘일상의 소리’와 ‘음악적 소리’를 확연히 구분하고 있었다. 음악이 음악 자신의 힘으로 미술관 한쪽에 무대와 객석을 분리해내고 관객이라는 정체성을 이끌어낸 찰나였다.
음악이 전달하는 정보가 간소했기에 몇몇 관객은 이 음악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어렴풋이 짐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음악회는 불규칙한 리듬을 가진 음렬 음악이 한참 유행한 후 그다음 도래한 미니멀리즘 음악에 대중이 많은 관심을 보였던 ‘현대 음악사’를 은유하는 것 같았다. 앞선 곡들과는 좀 다른 짜임새를 갖는 이 음악에 몇몇 관객이 집중하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목소리를 낮추었고 인터렉티브 작품을 작동시키던 초등학생 아이가 조작을 멈추었다.
음악은 길게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듯 점진적으로 커지고 또 작아지는 제스처를 반복했다. 고정된 화음 안에 네 명의 주자에서 세 명으로, 또 두 명으로 성부가 비어가고 다시금 하나씩 성부가 추가됐다. 음량이 주기적으로 정점에 올랐고, 정점에 오른 소리는 다시 사그라지고 차오르기를 반복했다. 일정한 프로세스로 흐르던 소리는 간간이 등장하는 ‘점점 세게’(crescendo) 효과에 의해 본래의 흐름에서 벗어난 속도감을 갖기도 했다. 음악은 일종의 박동 같은 모습으로 특정 지점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귀에 들리던 화음 구성음 몇 개가 변화해 그다음에 등장하는 화음이 되었고 이런 변화가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불협화와 음량이 가장 커지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음형의 반복 횟수가 현저히 줄어 마치 호흡이 가빠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이 음악은 이날 미술관에 두 가지 종류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나는 무대 없는 장소에 소리의 힘으로만 구현한 ‘음악회장’이라는 공간이다. 미술관의 로비에는 견고한 무대나 울림판 혹은 잘 정리된 객석이 부재했다. 하지만 관객이 이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 소리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전통적인 음악회장과는 다른 형태의 보이지 않는 ‘소리로 규정한 음악회장’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소리 공간’ 안에 이 음악이 만든 두 번째 공간이 있었다. 작품의 제목과 프로그램 노트에 작곡가가 직접 언급한 ‘밤하늘’ 혹은 ‘우주’라는 공간이다.
안성민은 “어린 시절 밤하늘 별을 보며 꿈과 미래를 그렸으며”(작곡가의 프로그램 노트 中) 작곡가의 이런 경험은 이날 미술관에 전시됐던 <오스모>(Osmo, Loop.ph, 2014)라는 미술 작품과 함께 음악의 창작 모티브가 됐다. 안성민에게 영감을 준 <오스모>는 설치미술 작품으로 커다란 은색 비닐 돔 안에 별자리와 행성을 그려 놓은 것이다. <오스모>의 작가는 관객이 비닐 돔 안에 들어가 한참을 눕거나 앉아 ‘밤하늘과 우주’를 상상하길 바랐다.
하지만 실제 미술관에서 마주친 <오스모>는 그저 커다란 비닐 풍선처럼 보였고 그 안에 들어가 무언가를 상상할 겨를은 없었다. 수초의 간격을 두고 열댓 명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드나들었다. 관객은 비닐 안에 서서 작가가 기획했던 우주에 대한 ‘아이디어’ 만을 재확인할 뿐이었다. 반면 안성민의 음악은 <오스모> 작가가 의도했던 ‘우주 상상하기’를 좀 더 손쉽게 구현하고 있었다.
<별이 빛나는 밤 II>는 점진적인 진행을 통해 크기가 부풀어 오르는 ‘소리의 돔’을 계속해서 만들어냈다. 그리고 ‘소리의 돔’은 마치 우주나 밤하늘처럼 얼마든지 더 팽창할 수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반복되는 리듬으로 연주되는 하모닉스는 고른 짜임새를 만들었고 이것은 가는 필체로 그려낸 촘촘한 망을 연상시켰다. 마치 밤하늘을 측량하고 그 좌표를 표시한 이미지처럼 말이다. 이 음악이 선율 없는 화음 덩어리이며, 지극히 추상적이고 건조한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도 밤하늘을 상상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관객은 이 음악을 매개로 삼아 잠시 명상하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은 관객의 감각을 빨아들이듯 맹렬히 작동하는 인터렉티브-멀티미디어 전시회 안에서, 음악이 오직 소리만을 가지고 거둔 승리처럼 보였다.
음악은 들판에서 불릴 때도 혹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들릴 때도 소리의 가청 범위를 하나의 공간으로 분리해내고 그 공간에 특성을 부여한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별이 빛나는 밤 II>는 아주 짧은 ‘찰나’ 청자의 의식에 들어와 이 곡이 연주된 공간을 규정하고 그 안에 ‘무한’의 우주를 그렸다. 이런 광경은 화음 쳄버오케스트라가 전통적인 음악회장이 아닌 새로운 장소에서 다양한 청중 · 다양한 매체와 함께 연주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기에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지점에 이르러 다시 한 번 화음 쳄버오케스트라의 ‘미술관’ 연주가 일반적인 현대음악이 거하는 ‘공간’과 기존의 ‘관객’을 뛰어넘어 새로운 영역을 탐색하는 시도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특히 이날 음악이 소환했던 두 개의 공간은 전통적인 음악회장이 아닌 곳에서 어린이와 평범한 시민과 함께했기에 더 특별한 것으로 다가왔다. 앞으로도 화음의 시도가 음악 본연의 힘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보여주기를, 그리고 이 힘을 다양한 이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이민희 Minhee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