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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레퍼토리 프로젝트 Inspiration with Paintings Ⅱ: Sound Play] 나는 자려 하는데 너는 춤추라 …
서주원 / 2023-12-11 / HIT : 340

나는 자려 하는데 너는 춤추라 하네

 서주원 (음악평론가·음악학박사)

 

2023 레퍼토리 프로젝트 - Inspiration with Paintings Ⅱ: Sound Play

2023년 12월 1일(금) 오후 7시 30분

서소문성지역사박문관 콘솔레이션홀

 

 

  “나는 자려 하는데 너는 춤추라 하네.”

 

  이번 공연 내내 머리에 맴돌던 말이다. 원래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나는 잠을 자고 싶은데 너는 춤을 춰야만 하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첫 산문집 책머리에 인용한 테오도르 슈토름의 히아신스의 구절로, 어찌된 일인지 매번 다르게 변형돼서 기억된다. ‘의 의지의 충돌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어떤 음악은 잠을 자려는데 경종처럼 깨우고 어떤 음악은 잠을 재촉하는 풍경 소리 같다. 어떤 음악은 우리를 낚아채듯 고양시키고 어떤 음악은 우리를 잠잠하게 가라앉힌다. 음악에도 의지가 있을까?


  “느낌은 희미하지만 근본적인 것이고 근본적인 만큼 공유하기 어렵다. 잠을 자려고 하는 시인과 소설가들 앞에서 내가 춤을 추기도 했을 것이고, 내가 춤을 출 때 독자들이 잠을 자기도 했을 것이다. 때로 우리는 한 배를 타게 되지만 그 배가 하늘로 날아오를지 벼랑으로 떨어질지 대부분 알지 못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줄을 알면서도 그 어떤 공동체를 향해 노를 젓는 일이다.”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이 글은 음악·연주·감상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인데, 특별히 이번 공연의 경우가 그러하다.

 

  비록 희미하지만

 

  4개의 곡이 연주된 이번 공연 역시 작품에서 얻은 영감을 주제로 했는데, 2개의 창작곡은 보다 더 모호하고 추상적이었다. 프로그램 노트에 있는 작곡가들과 작가들의 해설은 그 의미가 선뜻 다가오지는 않았다.

 

  세계초연한 첫 곡, 백영은의 <타악기와 현악합주를 위한 기억”, 화음프로젝트 Op.225>는 잠, , 기억에 관한 작품이다. 마키노 다카시의 영상 <그래픽 스코어 #1 수면>에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 사실 영감이라는 말은 흔히 쓰지만 그 상관관계를 입증하기 상당히 힘들다.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며 창작자 자신조차 어디에서 영감을 받아 어떻게 표현됐는지 구체적으로 인식하거나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영감이라는 말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다카시는 잠자는 동안 보는 꿈기억의 콜라주라고 생각하는데서 출발해서 형태가 없고 불분명하게영상들을 겹쳤다. 그에 따르면 이 작품의 목적이 음악가들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상상의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상 작품에 대한 다카시의 설명은 이해의 난이도를 높였지만, 작곡가 백영은은 이를 친근하고 따뜻한 울림으로 풀어냈다. “좀 더 수월하게, 좀 더 깊게, 누군가의 마음에 이르러 잔잔한 파문을 일으킬 수 있기를바라면서. 현악합주에 타악기를 더해 리듬감을 살린 백영은의 작업은 영상과 어우러져 즐거운 동화 속 장면들처럼 밝고 재미있는 소리의 세계를 만들었다. 끝없이 명멸하는 영상의 불빛들은 포근한 울림을 입어 거리를 활기차게 밝히는 크리스마스의 조명처럼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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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첫 곡인 배동진의 <Sound Play-Homo Faber, 화음 프로젝트 Op.170>은 한층 더 강렬한 영상을 토대로 만든 작품이다. 이행준 작가는 <Nebula Rising>에서 작품을 우주의 성운에 빗대어 표현하며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먼지의 과학’”이라고 설명했다. 공연이 열린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콘솔레이션 홀은 전면에 영상작품을 비출 수 있는 큰 벽이 있는데 현란하게 번쩍이는 영상은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애초에 형상이나 구조를 파악할 수 없는 이 작품을 배동진은 귀에 쉽게 들리는 재료의 반복으로 그려냈다.

 

  잠, , 기억, 상상, 영감, 그리고 먼지의 과학. 이러한 것들은 느낌이나 분위기처럼 희미하지만누군가에게는 근본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작품의 주제로 삼고 씨름한다. 뜬구름을 잡거나 허공을 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한다. 공유하기 어려운 이것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려 애쓴다. 이번 공연의 두 창작곡에서 공통적으로 보인 특징은 글로 된 설명이나 보이는 영상에 비해 들리는 음악들이 훨씬 편안하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분열적 영상이지만 간결한 음향이 덧입혀져 감상 자체는 크게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작곡가 백영은과 배동진은 이미 난해한 영상들에 심각한 의미를 다시 부여하기 보다는 공감하기 쉬운 재료들로 충분히 다시 듣고 싶은 음악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감상자들에게 희미하나마 어떤 흔적을 기어이 남기는 두 작품에서 작곡가들의 노련함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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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그림책><보티첼리 삼부작>

 

  슈만의 <동화그림책, Op.113>에서는 화음챔버의 오랜 단원인 비올리스트 에르완리샤가 협연처럼 활약했다. 원래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인데 작곡가 안성민의 편곡으로 비올라와 현악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 연주됐다. 작품의 제목은 특정 이야기나 그림과 연관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슈만은 작품에 대해 말을 아꼈다. 그렇지만 풍부한 음색과 호소력을 지닌 비올라가 자신만의 이미지와 이야기를 만들어내도록 청자들을 적극적으로 초대했으며 예술감독 박상연이 직접 선택한 파울 클레의 그림들은 동화 같은 상상력을 더하도록 이끌었다. 고도로 추상적인 예술재료들이 음악가들의 손길을 거쳐 보다 인지하기 쉬운, 명료하면서도 직관적인 형태로 만들어져 공감의 연결고리가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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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티첼리 삼부작>은 그야말로 호화로운 연주였다. 레스피기의 화려한 관현악에 보티첼리의 명화, 그리고 화음챔버의 연주력이 합해져 다양한 감각을 깨우고 충족시켰다. ‘’, ‘동방박사의 경배’, ‘비너스의 탄생과 같은 보티첼리의 작품들은 많은 이들이 이미 알만한 작품들이었지만 벽에 거대한 크기로 확대돼 섬세한 요소까지 하나씩 새롭게 부각됐다. 레스피기의 다채로운 팔레트에서 표현한 음악 풍경을 화음챔버는 생동감 있는 터치로 연주했다. 한 번에 이 모든 의미심장한 요소들을 다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만큼 공감각적 풍미가 가득한 공연이었다.

 

  공감의 출발점

 

  본 공연이 끝나고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이 앙코르로 연주됐다. 연주 직전 화음챔버 단원들 눈빛이 반짝였고 입가에 미세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이미 수없이 많이 품어본 음악을 소중한 이에게 내어주듯 연주했다. 음악이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향하는지가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날 이례적으로 큰 편성으로 무대가 넘치도록 찼으며 관객석 역시 가득 찼다. 같은 시간 한 공간에 있었지만 반드시 같은 것을 공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음악이 어디에 이르게 될지 쉽게 예측할 수 없고, 공감은 도달하기 쉬운 도착점이 아니다. 이해하려고 하지만 너무 희미해서 까무룩 잠이 들 수도 있고, 무대의 화려한 춤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우두커니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음악가들은 언제나 먼저 춤을 춰야만 하고, 안온히 있으려 하는 관객들을 흔들어 춤을 청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유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희미한 것을 그저 희미한 채로 전달해서는 안 된다. 좋은 작품이라는 확신과 연주에 자신이 있을 때 연주자들에게 미묘하지만 확실히 감지되는 분위기가 있다. 그럴 때 음악은 더 이상 희미하지 않다. 무엇인가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것들을 공유한다는 느낌을 준다. 공감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연주는 잠자고 싶은 감상자들의 욕구를 춤추고 싶은 충동으로 기어코 바꾸기도 할 것이다. [畵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