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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2016 화음 프로젝트 페스티벌 리뷰] 우주를 그리는 음악
신예슬 / 2016-10-02 / HIT : 1745

우주를 그리는 음악

    

 


2016년 인사미술공간의 <COSMOS PARTY: 우리는 우주에 간다>, 2015년 일민미술관의 <우주생활: NASA 기록 이미지들>, 2015년 대전시립미술관의 <어린이미술: 우주여행>, 2009년 대전시립미술관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그리고 올해 화음 프로젝트의 협업 전시였던 한국전통문화전당 기획 초대전 김성희의 <Universe & Rhythm>, 그리고 대전시립미술관의 과학예술 융복합 특별전시 <COSMOS>까지, 최근 우주에 관한 전시들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접근방식은 다양하다. 우주비행사들의 일과표나 우주선 사진 등 실제 기록물들을 아카이빙 형태로 전시하거나, 우주를 표현대상으로 삼거나 우주의 특정 요소를 소재로 삼은 작품들을 전시하는 식이다. 시각예술 분야에서 우주는 새로운 스펙터클을 제시하는 미지의 세계이다. 실제로 우리는 아직 우주에 관해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음에도 우주의 이미지에는 익숙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주의 음악은 여전히 낯설다. 우주에는 소리를 전달해주는 매질인 공기가 없고, 따라서 소리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우주와 음악에는 나름의 역사가 있다. 일찍이 피타고라스는 음악이론의 용어들로 천문학에 대해 논했고, 플라톤은 천문학과 음악을 쌍둥이 학문으로 보았다. 보에티우스는 음악을 세 종류로 구분하고, 그중 비례와 조화를 지닌 우주의 질서를 최고의 음악이라고 여겨 이를 ‘우주의 음악’(Musica Mundana)이라 칭했다. 우주와 음악은 서로에게 유용한 일종의 메타포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 메타포들은 당연히, 소리를 내는 실제의 음악과는 거리가 있었다.

 

작품 수는 결코 많지 않지만 우주를 소재로 삼았던 음악들이 몇 있다. 널리 알려진 것들은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음반 ‘Big Space Adventure!’에 수록된 사리아호(Kaija Saariaho)의 <Asteroid 4179:Toutatis>, 홀스트(Gustav Holst)의 <The Planets>, 핀처(Matthias Pintscher)의 <towards Osiris>, 터니지(Mark-Anthony Turnage)의 <Ceres>와 딘(Brett Dean)의 <Komarov’s Fall> 정도이다. 이외에도 팝 혹은 록음악에서 보위(David Bowie)의 <Space Oddity>, 더 폴리스(The Police)의 <Walking on the Moon> 을 비롯한 몇몇 곡들이 있다. 이 작품들은 제목에서부터 우주와 관련된 주제를 직접 꺼내놓지만, 우주로 향했던 시선은 다시 우주를 바라보는 인간의 이야기로 되돌아온다. 인간의 음악과 소리는 우주에 닿지 않는다. 그런 탓에 우주를 그려내는 영화나 영상물에서 우주 공간이라는 디제시스 안의 음향을 나타낼 때는 결국 노이즈로 수렴되는 음악을 들려주거나(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1968), 때로 침묵한다(그래비티, 2013).

 

소리가 없는 우주. 참조할 절대적인 레퍼런스가 없는 탓에 음악이 우주를 그리기 위해서는 우주 ‘바깥’의 어떤 것이 필요하다. 내러티브든, 이미지든, 작가 자신의 뚜렷한 인상이든, 무엇이든. 그런 면에서 올해 화음 프로젝트의 마지막 두 공연이었던 <Universe & Rhythm>과 <COSMOS>는 음악이 의지할 수 있는 ‘우주에 대한 미술작품’이라는 일차적인 토대를 마련해준 셈이다. 우주에 대한 미술작품, 그리고 그에 대한 음악이라는 두 층위를 거치며 우주와 음악의 관계는 상당히 느슨해지지만 두 전시에 대한 음악작품들이 근본적으로는 모두 우주라는 주제에 묶여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각자의 방식으로, 작곡가들은 우주에 대해 노래하기를 시도하는 몇 안 되는 행렬에 미술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한다.

 

두 공연의 접근방식은 사뭇 달랐다. 7월 12일부터 31일까지 열린 <Universe & Rhythm> 전시는 직관적인 외양에 비해 상당히 교차적인 맥락을 추구했다. 작가 김성희는 전통공예품에 주로 사용되는 자개와 공학 분야에서 다양하게 쓰이는 탄소섬유를 결합해 탄생, 성장, 소멸이라는 리듬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우주공간을 표현한다. 작가의 글에 의하면 “암흑과도 같은 우주 공간은 탄소섬유로 표현”되고, “변화무쌍한 행성과 별들은 자개로 표현”된다. 작품들은 모두 유사한 크기의 원 형태로 대체로 평면이었지만 몇몇 작품은 평평한 원 안에 구 형태가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전통과 현대, 그리고 예술과 과학의 만남이라는 이 전시는 7월 12일 4시, 화음프로젝트와 만나며 음악과도 융합했다. 이 전시에 영감을 받아 작곡된 백영은의 대금, 소금과 타악기를 위한 <비상>은 김성희의 작업과 몇몇 요소들을 공유했다. 작곡가는 이전부터 국악기를 적지 않게 사용해왔지만 특별히 이 공연에서 국악 편성은 자개라는 전통적 소재에 화답하는 듯했고, 탄생과 성장, 소멸이라는 우주의 리듬은 백영은에게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시간으로 변환된다. 작품의 분위기나 소재, 추구하는 바 면에서 미술과 음악은 조화롭게 어우러졌고 연주도 상당히 좋은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대전시립미술관에서 7월 26일부터 11월 20일까지 열리는 <COSMOS>는 동시대의 과학과 기술에 기반을 둔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였다. 전시는 ‘우주역사와 사건/우주 시그널/행성 탐험, 우주와 공간, 물질로서의 우주, 우주 그 이후’ 등의 키워드로 구분되었고, 전시장에는 우주영화에 나올 법한 가상적인 이미지들이나 사진들, 오작동하는 기계들로 만들어진 설치작품, 단순한 형태의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영상,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는 내러티브가 있는 영상, 신발을 벗고 들어가 밤하늘의 별을 보는 돔 형태의 설치물, 방독면을 쓰고 관람해야 하는 빛 속을 떠다니는 먼지 같은 입자들 등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다. 일관적인 분위기 속에 다양한 매체, 주제의 작품들을 선보인 대규모 전시였다. 전시규모가 큰 만큼 화음의 공연도 총 5곡으로, 7월 31일 오후 7시부터 약 1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전시장의 작품과 매칭된 음악은 총 네 곡. 한호 작가의 ‘영원한 빛-노아의 방주’는 우미현의 <The Play of Light II>로, 노리미치 히라카와(Norimichi Hirakawa) 작가의 ‘비가역성: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은 이재문의 <무척도 공간들>(Scale-Free Spaces)로, 루프닷피에이치(Loop.ph) 작가의 <오스모>(Osmo)는 안성민의 <The Starry Night II>로, 문경원과 전준호 작가의 ‘세상의 저편’(El Fin del Mundo)은 신혁진의 <세상의 저편>과 관계를 맺었다. 이 전시와는 무관했지만 한대섭의 <검은 숨>도 함께 이날 연주되었다.

 

이 공연에서 작곡가들이 미술작품과 접점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크게 둘로 분류될 수 있었다. 첫째는 작품의 구성요소 중 일부를 추출해 작곡의 원리로 삼은 것이다. 우미현의 <The Play of Light II>는 ‘영원한 빛-노아의 방주’ 중에서도 ’색’과 그 음영에 집중했고, 이를 음악에 적용해 미분음을 주요 구성요소로 사용했다. 곡의 요소 하나하나는 색을 만들어내는 수많은 미분음과 그 음색들이었지만, 곡을 천천히 따라가며 들을 때 더욱 돋보이던 것들은 그 소리들의 ‘움직임’이었다. 이재문의 <무척도 공간들>은 ‘비가역성: 돌이킬 수 없는’에서 대조적인 영상들이 빠른 리듬으로 바뀌는 구성방식을 차용했다. <무척도 공간들>은 1-2초 단위로 짧은 음악적 단편들이 바뀌는 구성이었고, 이 곡에서는 이재문이 “상상한 지구 밖 먼 우주(혹은 작곡가의 내면 공간)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이 소리를 통해 묘사”되었다. 공연에 앞선 설명에서 작곡가는 짧은 음악적 단편들이 서로 대조적인 성격이라고 밝혔지만, 때로 그 단편들은 서로에 대한 변주 같기도 했고, 생성적으로 서로를 엮어가며 전체를 만들어가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우미현의 작품은 ‘영원한 빛-노아의 방주’의 ‘외양’과 관계를 맺었던 반면 이재문의 작품은 ‘비가역성: 돌이킬 수 없는’에서 겨냥하려 했던 “우주와 같은 초자연적인 시간의 흐름”과 일맥상통하게, “우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소리로 묘사” 하려했다는 점에서 작곡가 나름의 우주에 관한 생각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시도가 돋보였다.

 

둘째는 미술작품에서 받은 전체적인 인상을 음악으로 새롭게 풀어낸 것이다. 루프닷피에이치의 작업 ‘오스모’는 지름 6m 크기의 돔으로, 신발을 벗고 작품 안으로 들어가서 내부에 투영된 우주를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어두운 작품 내부로 들어가 위를 바라보면 반짝이는 별과 행성들이 보였다. 이 작품을 바탕으로 작곡된 안성민의 <Starry Night II>에서는 끊임없는 리듬이 빛이 반짝이는 듯한 허상을 만드는 듯했고, 현악의 하모닉스가 만들어내는 옅은 음향은 아주 멀리에서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즉각적으로 불러일으켰다. ‘오스모’는 비닐로 만들어진 지름 6m의 작은 돔이지만, 그 내부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우주를 경험하게 하는 것처럼 이 음악도 아주 작고 옅은 소리들로 구성됐지만 마치 무궁동처럼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신혁진의 <세상의 저편>은 이날 공연된 곡 중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었다. 내러티브가 있는 영상작업이었던 ‘세상의 저편’은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현재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그려냈는데, 신혁진의 곡은 원작품의 분위기를 상당히 잘 풀어내고 있었다. 안성민의 작품은 ‘오스모’라는 작품의 경계를 넘어서 결국 자신이 생각하는 밤하늘의 인상을 그려냈다. 그의 경우 미술작품은 적절한 영감의 원천으로 기능했고, 미술을 통해서 자신이 독자적으로 표현하려 하는 바로 나아갔다. 신혁진의 작품에서 작곡가 자신만의 고유한 표현은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세상의 저편’의 외양에서 보이는 분위기, 그리고 ‘세상의 저편’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음악으로 잘 느끼도록 했다.

 

<Universe & Rhythm>과 <COSMOS>, 이 두 전시는 이전의 화음프로젝트에서 다뤘던 전시들과 다른 지점들이 있었다. 먼저 자개, 비디오 작품, 돔 형태의 설치물 등 미술 작품들의 매체와 재료들이 이전과 다소 달랐다는 점이다. 특별히 <COSMOS> 전시 중 우미현이 선택한 ‘영원한 빛-노아의 방주’와 이재문이 선택한 ‘비가역성: 돌이킬 수 없는’, 신혁진이 선택한 ‘세상의 저편’은 비디오 작품으로, 나름의 시간적 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두 음악작품과 한층 더 가까웠다. 또 다른 점은, 주제가 우주였다는 점이다. 정적뿐인 우주를 노래하기 위해 이미지를 딛고, 미술을 딛고 소리를 내어본다. 화음은 이미지가 없는 세계를, 소리가 없는 세계를 동일한 시공간에 이어 붙인다. 우주의 화려한 이미지는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지만, 우주는 침묵한다. 화음은 그 침묵하는 우주를 음악으로 그려낸다. 눈의 감각을 귀의 감각으로 확장하는 것. 화음이 오랫동안 해오던 일이다.

    

 

신예슬 shinyeasu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