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글로벌메뉴



비평

화음 프로젝트 Op.78
이경분 / 2009-04-24 / HIT : 1076

인간존재의 수수께끼.
클림트의 <유디트1>와 임지선의 'Secret of Golden Color', 화음 프로젝트 Op.78 


이경분(음악학 박사) 

 


클림트의 그림 속 유디트는 누구인가? 홀로페네스의 까만 머리통을 들고 있기는 하지만 성서의 유디트나 17세기의 여류화가 첸텔레스키의 유디트와는 전혀 상관없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한쪽 젓 가슴은 금빛 반투명 옷 속에, 다른 쪽 젓 가슴과 배꼽은 하얀 살갗을 그대로 내 놓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남자의 머리통을 마치 장식품처럼 들고 있는 클림트의 유디트. 민족을 구한 영웅적 행위에 대한 자부심이나 자신을 능욕한 남자에 대한 적개심과는 전혀 거리가 먼 표정이다. 흥분한 듯 게슴츠레한 눈과 얼굴 전반에 번진 애매한 미소는 사랑하는 남자를 죽여서라도 소유하고자 하는 여인의 그로테스크한 욕망처럼 은밀하다. 

그래서인지 클림트의 유디트는 이름은 다르지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1905)를 연상시킨다. 자신이 사랑하는 선지자 요하난의 머리를 자르게 하고, 피가 철철 흐르는 은쟁반 위의 죽은 입술에 키스하며 성적 흥분을 느끼는 살로메. 이런 끔찍한 여인들이 19세기와 20세기 전환기 유럽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였다니 과연

당시 유럽에서 흉흉했던(?) 데카당스의 분위기를 아스라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1900년대 초 특히 비인의 공기는 치렁치렁한 장식들, 뭔가 비밀스러운 제스처, 신비함과 이국적인 것, 성적인 억눌림 그리고 눌린 만큼 반작용을 일으키는 강렬한 성적 욕망으로 충만해 있었다. 클림트의 그림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시대적 욕망을 대가적으로 포착해 낸 결과물이 아닐까? 그러기에 에드가 바레즈의 말처럼 예술가는 자기시대를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늘 뒤쳐져 오는 범인들과 달리, 자기시대와 같은 템포로 가는 사람이리라. 그런데 시대가 지나도 한참 지나고, 감각도 미적 경험도 달라진 21세기 현대인들이 클림트의 그림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클림트의 <유디트1>이 발산하는 예술적 영감에 자극되어 만들어진 임지선의 'Secret of Golden Color'는 금박 베일에 쌓여있는 유디트의 비밀을 4가지 차원에서 들려준다. 강하고(ff) 단호한 제스처로 시작하는 'Secret of Golden Color'의 첫 부분은 유디트의 그림자를 스케치하듯 윤곽만 그려낸다. E음과 A음의 5도 음정으로 시작하는 오보에와 빠른 반음의 반복으로 음향적 무늬를 새기는 첼로와 더블베이스, 그리고 금싸라기 베일을 수놓는 듯 영롱한 하프가 유디트의 그림자를 신비하게 만든다. 

두 번째 부분에서 유디트의 형상은 전면에 부각되어 훨씬 뚜렷해진다. R. 슈트라우스의 <살로메>의 "일곱 베일의 춤"에서처럼 E음과 A음을 품은 오보에의 서정적인 선율은 (3화음의 하프 반주와 함께) 유디트의 에로틱하면서 매력적인 면을 그려낸다. 현악기들(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은 유디트의 윤곽에 색채를 더한다.

이와 달리 세 번째 부분에서는 유디트의 그로테스크한 면이 부각된다. 피아니시모(pp)에서 시작하여 피아노(p)-메조피아노(mp)-메조포르테(mf)-포르테(f)-포르테시모(ff)에서 폭발하는 긴장감은 앞의 서정성과 극한 대조를 이룬다. 현악기의 반음계적 16분음표 패시지는 짧지만 격렬하다.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자르고도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유디트의 끔직한 면을 암시하는 듯하다. 

네 번째 부분은 다시 첫 부분의 단호한 제스처를 상기시키는데, 유디트의 이중적인 면이 동전의 양면과 같음을 암시한다. 여기서는 유디트의 서정적 색채와 그로테스크한 색채가 대조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어우러져 여기저기 무늬를 만든다. 매력을 발산하는 유디트의 정체는 바로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그로테스크한 이중성에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세례요한의 목을 잘라서라도 키스를 하고야마는 성서의 살로메 이야기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가 살았던 시대의 일이라면, 살인을 하고도 미소를 품은 클림트의 '유디트'는 1901년 작품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욕망과 존재의 수수께끼는 시간의 양과는 상관이 없나보다. 클림트 이후 또 100여년이 지난 2009년의 'Secret of Golden Color'도 이 수수께끼가 여전히 수수께끼임을 암시한다. 이를 나는 작품 마지막에서 듣는다. 황금빛 음색을 쏟아 내던 하프 음이 킥킥대는 웃음소리처럼 흩어지는 마지막 마디에서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랄까. 앞에서 형상화된 유디트의 모든 것은 일순간 '날 잡아봐'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져버린다. 유디트는 누구인가? 그리고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또 질문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