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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화음 프로젝트 Op.75-음으로 빚어낸 빛의 보석
이경분 / 2009-02-12 / HIT : 916
음으로 빚어낸 빛의 보석. 임지선의 'Impossible Possibility'

이경분 - 음악평론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조각은 시각 예술, 음악은 청각예술. 서로 다른 매체이지만, 이것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최태훈의 조각품 'Skin of Time'을 아이디어로 삼은 임지선의 음악 'Impossible Possibility'를 들으면서, 새삼 떠오르는 물음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작곡을 한 음악가들에게는 창작이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해 주는 유일한 자기 확신이 되기도 했지만,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예술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욕망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빛을 주제로 한 'Skin of Time'과 'Impossible Possibility'을 보고 들으면서 순간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창작 행위를 시작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마는 찰나(刹那)를 물체로, 소리로 박제하려는 소유욕. 이렇게 보면 예술이란, 언어의 표현능력을 넘어서는 어떤 황홀한 순간 (이를 간단하게 ‘시적(詩的) 순간’이라 하자)을 생생하게 포착해보고자 하는 욕망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물론 포착된 순간은 더 이상 순간이 아니며 그래서 더 이상 생생할 수도 없기에 모순적이다. 순간을 포착하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시도이리라. 하지만 그 형언하기 힘든 ‘시적 순간’을 억 만분의 일이나마 연장해보고, 또 자꾸 경험해보고자 하는 인간의 불가능한 욕망이 끊임없이 예술행위를 요구해왔는지도 모른다.

'Impossible Possibility'의 첫 마디가 시작하면 투명한 유리 속에 금빛, 은빛, 형형색색의 진한 액체가 서서히 움직이듯, 또는 마치 눈부신 만화경 속으로 들어온 듯, 신비한 음색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내 한줄기 밝은 빛이 들어와 이 신비한 혼돈 속에 비밀스런 이야기가 들어있음을 암시한다. 잘 들어 보라고, 귀 기울려 들으라고 한 번 더 새겨 알려준다. 

3/4박자의 춤곡 제스처 속에 들어 있는 첫 번째 이야기는 육감과 감각적인 즐거움을 노래한다. 리듬과 선율이 한 맘이 되어, 친밀하게, 그리고 고민 없이 함께 즐긴다. 그러나 즐거운 향연이 끝난 후 서서히 외로움이 밀려들 듯, 그리움이 사무치는 듯, 명상적인 분위기가 된다.

두 번째 이야기는 먼 옛날 아라비안 나이트를 연상시키는 이국적 선율로 신비한 낯선 곳에 대해 노래한다. 곡 전체에서 가장 서정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임지선의 작품에서 신비함을 표현할 때 종종 나타나는 이국적 정서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깨어지고 부딪히며, 연마되어야 할 용광로 같은 뜨거운 현장이다. 반복적인 음의 집요한 리듬, 이와 대조적인 유연한 선율 그리고 마림바의 영롱한 음색이 차례로 나타나 서로의 힘을 겨루어 보고, 탐색해 보다가, 결국에는 모두 뒤엉겨 아픔과 고통의 씨름이 한 바탕 진행된다. 그러는 동안 무수한 상처자국을 내면서 비밀스런 신비의 음은 고통과 아픔을 딛고 눈부신 보석으로 연마되어간다. 바로 여기서 이야기는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그리고는 이어 드디어 세 가지 비밀을 품고 빚어낸 빛의 보석이 서서히 신비한 색채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이 짧은 순간은 두 번째 클라이맥스를 만들고 이내 환영처럼 사라져버린다. 해지기 직전 황혼 빛의 석양처럼 우리 가슴 속에 찰나를 새겨놓고. 

조각품 'Skin of Time'이 “빛의 길”이라면, 음악 'Impossible Possibility'는 ‘음으로 빚어낸 빛의 보석’이다. 말로 표현될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아름다움. 두 작품 속에 들어 있는 무수한 상처자국, 아픔과 고독 그리고 노동은 서로 다른 방식과 다른 형태로 표현되었지만, 감상 후 가슴과 머리가 충만해지는 느낌은 비슷하다. 'Impossible Possibility'를 듣고 난 후, 'Skin of Time'을 대하면 조각품에서 뿜어내는 비상한 마력의 빛이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듯 생동감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