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글로벌메뉴



칼럼

[畵/音.zine vol.3] 새로운 세기, 새로운 방식의 음악과 미술의 결합
이민희 / 2022-09-01 / HIT : 533

새로운 세기, 새로운 방식의 음악과 미술의 결합

이민희(음악평론가/음악학박사)

 

 

클래식 음악은 본래 ‘절대음악’이라는 맥락에서 연주되고 해석되었으며, 이는 ‘소리’를 제외한 그 어떤 상상이나 감각적 사유를 결벽증적으로 금지하는 것에 가까웠다. 따라서 연주자들은 늘상 검은색 옷을 입고 근엄하게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은 음악 청취와 작곡에 완전히 새로운 환경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도 디지털미디어는 “각각의 매체를 기반으로 형성된 각각의 예술 장르를 하나로 통합”해버렸다. 즉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작업 환경 안에서 이미지, 텍스트, 소리 등은 모두 ‘데이터’ 형태로 치환되며, 이런 가운데 각 요소들 간의 결합 및 상호 변환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원활히 이뤄지게 되었다.

 

따라서 21세기 음악 문화 안에서는 음악과 미술 분야의 결합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음악과 영상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툴이 일반화된 것은 물론, 실제 라이브 현장에서 음악과 이미지를 동시에 컨트롤 하는 것이 수월해졌고, 이제 이런 흐름 안에서 청중들은 ‘음악’과 ‘이미지’가 결합된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에 흥미를 느끼고 이에 익숙해진 것이다. 

 

 

사티의 음악과 결합한 코르테스, 추상영상이 된 강석희의 음악

 

20세기 후반, BBC등을 비롯한 외국의 방송사가 주도하며 ‘클래식 비디오’들이 처음 만들어졌다. 이런 작업들은 그리그(Edvard Grieg)의 페르귄트 조곡(Peer Gynt Suite) 위에 ‘아침’이나 ‘오두막’과 같은 풍경을 결합함으로써 그리그가 상상했던 음악적 심상을 표현했다. 이런 전통은 21세기에도 계속 이어져, 이제 음악과 영상을 동시에 재생하는 스트리밍사이트 ‘유튜브’에서 일상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테면 사티(Erik Satie)의 <짐노페디>((Trois Gymnopedies, 1888)는 유튜브 상에서 에두아르 레옹 코르테스(Edouard Leon Cortes)의 회화와 결합된 동영상으로 발견된다. 코르테스는 프랑스와 스폐인계의 혈통을 지닌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상파 화가다. ‘회화의 파리 시인’으로 불리는 서정적인 감성이 특징이며, 파리의 일상을 화폭에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형태의 동영상을 듣고 보는 행위는, 사티의 음악에 대한 특정한 해석까지를 미술작품과 함께 받아들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f261ba50919472f0db1c65ab15abc3ea_1662012 

[사티의 음악과 동반되어 동영상 형태로 서비스된 코르테스의 회화 중 일부]

 

예컨대 특정 청자는 연주자는 모차르트의 앙상블을 들으며 ‘비엔나의 여름궁전’을 떠올리고, 오케스트라의 역동적인 연주에서는 ‘폭풍을 맞는 듯한’ 상상을 해왔다. 이제 이러한 음악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나 이미지들이 손쉽게 영상화되어 게시됨으로써, 특정 음악을 해석하는 누군가의 태도가 다양한 이들과 공유된다. 이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미술과 고전음악의 만남의 사례는 그들의 작품 수만큼이나 많다. 

 

f261ba50919472f0db1c65ab15abc3ea_1662012


f261ba50919472f0db1c65ab15abc3ea_1662012
[강석희의 <예불>의 영상화 작업 이미지 캡쳐]

 

한편 강석희의 <예불> 영상화 작업은 숨겨져 있던 이 음악을 미술과 결합시켜 정교하게 부활시킨다. <예불>은 1968년 발표된 작품으로 그저 대가가 썼던 음악 레퍼토리의 하나로 인식되곤 했다. 하지만 국악인 안이호를 비롯한 신세대 실험영상 제작자들의 달라붙어 <예불>을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시켰다. 

 

애초에 <예불>에서는 강석희 음악 특유의 동양적인 감각, 범종교적인 아우라와 힘, 정제된 호흡이 느껴지는데, 일련의 흐름이 ‘영상’과 만나 보다 분명하고 강렬해졌다. 영상은 색조, 이미지의 구도 등에 있어 전형성을 탈피하고 있으며, 독특하게도 국악적인 느낌의 소리와 도시의 풍경, 네온사인, 일관된 색조로 빛나는 어스름한 풍경을 결합시켰다. 이런 작업을 통해 낯선 현대음악은 ‘새로운 청중’을 만났으며, 음악은 참신한 해석을, 연주자는 본인이 연주한 작업에 대한 보다 폭넓은 배급 방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추상적인 이미지나 초현실적인 상들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영상작업이 현대음악과 결합되어 쏟아지고 있다. 미술 계열에서는 이를 아방가르드 필름(avantgarde film), 실험 영화(experimental film), 초현실주의 비디오(surreal video), 추상비디오(avangard video) 등과 같은 카테고리로 구분하는데, 해당 작업들은 대부분 ‘음악과의 결합’을 필수로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안에서 ‘현대음악’이란 오히려 추상적인 이미지와 잘 어울릴 수 있는 가능성의 보고이다. 

 

 

추상 비디오를 만들어내는 음악적 신호

 

레이캬비크(Reykjavik) 태생의 스타이나 바술카(Steina Steina, 1940-)와 테코슬로바키아 태생의 우디 바술카(Woody Vasulka, 1937)는 예술가 부부다. 1971년 안드레 매닉(Andres Manik)과 함께 전자 매체, 비디오, 영화, 음악, 퍼포먼스 등을 위한 장소이자 오늘날까지도 뉴욕 대안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더 키친(The Kitchen)’을 설립한 이들로, 비디오예술 및 비디오아트 예술에서 선구자로 손꼽힌다. 주목할 점은 스테이나 바술카가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했던 음악전공자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스테이나는 새롭게 관심을 기울이게 된 ‘비디오’라는 매체를 ‘음악’을 통해 실험한다.

 

f261ba50919472f0db1c65ab15abc3ea_1662012
[스테이나 바술카의 <바이올린의 힘>]

 

스테이나 바술카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진행성 퍼포먼스’라 불리는 <바이올린의 힘>(1978, 쌍방향 퍼포먼스, 10분)이다. 작품의 주제는 바이올린 소리와 텔레비전이 생성하는 소리 사이에 형성되는 상호작용과 간섭현상이다. 특히 이 작품은 신시사이저, 채색기, 신호조작기 등을 사용하여, 바술카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의 음악을 이미지로 생성해낸다. 스테이나는 이 작업을 여러 해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했으며, 이미지의 뒤틀림 현상을 체계적으로 탐구하게 된다. 작품 안에서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스테이나의 모습 위로 바이올린의 음향에 따라 일그러진 영상이 겹쳐져 있다. 이런 일그러진 이미지들은 음악의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f261ba50919472f0db1c65ab15abc3ea_1662012
[<공감각적 순간>의 연주모습]

 

유사한 결을 가진 작업이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작곡가 오예민의 <공감각적 순간>(Synesthetic Moment, 2014)은 피아노와 라이브비디오, 그리고 전자음악을 위한 곡이다. 이 작품에서는 연주자의 제스처, 얼굴표정,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행하는 손의 모습 등을 카메라를 통해 확대하여 스크린에 보여주며, 이것이 작곡가가 설정한 ‘영상변형효과’와 결합한다. 피아노를 치는 연주자의 얼굴은 카메라에 의해 무대 앞 스크린에 투영되고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잔향은 스크린 속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괴이한 이미지를 구현하는 식이다. 연주자의 소리신호가 미리 프로그래밍 해 놓은 방식으로 변형되며 실시간으로 이미지 위에 투사되는 것이다.

 

이 경우 청중은 단지 피아노곡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의 제스처와 연주자의 표현 등을 ‘보며’, 이런 소리를 듣고 작곡가가 느꼈던 특정한 감각을 ‘영상 효과’로서 화면 위에서 동시에 감상하게 된다. 우연성을 띄는 추상적인 성격의 디지털 이미지가 그 자체로 미술적인 영역에 있다면, 음악은 여기에 상호작용하며 또 다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이 포함된 시청각 설치

 

일본 작가 토시오 이와이(Toshio Iwai, 1962-)는 쌍방향 시청각 설치작품 <피아노-이미지 미디어로서>(Piano-as image media, 1995)를 선보인 바 있다. 이 작품은 가상 악보로 피아노의 키를 만들고, 이 키들을 차례로 움직여 해당 건반에 해당하는 소리를 내게 했다. 이 경우 관객 혹은 연주자는 영사된 격자 위의 움직이는 점을 이동시켜 악보를 즉석에서 ‘쓰게’ 된다. 즉 연주자를 통해서만 연주될 수 있었던 ‘물리적 오브제’인 피아노는 새로운 매체 요소를 통해 소리내기가 가능해지며, 결국은 ‘빛’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결과물이 함께 도출된다. 이렇게 고형의 피아노는 ‘이미지 미디어’로서 스스로를 구현하게 된다. 

 

f261ba50919472f0db1c65ab15abc3ea_1662012 

[<피아노-이미지 미디어로서>의 작품 구상 및 실제 퍼포먼스 모습]

 

이와이의 작업은 어느 한 감각 경험의 요소에만 주목하는 것을 포기하고, 공감각적 경험을 만드는 다채로운 미디어 요소들을 서로 결합한다. 특히 이 작업에서 생성되는 음악은 ‘디지털 사운드’가 아니며, 컴퓨터에 의해 피아노 건반이 조작되면서 만들어지는 ‘아날로그 사운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업은 “이미지와 사운드의 심미적인 결합은 물론 물리적 대상과 디지털 미디어의 기능적인 결합을 하나의 공간에서 이루어”냈으며, 이 모든 것이 작품을 대하는 연주자 혹은 관객의 참여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와 같은 작업은 ‘미디어 오브제’와 ‘음악’의 융합으로서, ‘공감각’이라는 새로운 감각을 구현한다. 20세기와 21세기를 거치며 미술의 영역이 수없이 분화되었고, 그러는 가운데 단지 ‘회화’의 영역이 아니라 그 이외의 감각을 다루는 미술의 분야 안에서도 미술과 음악의 융합이 격렬하게 이뤄지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각각의 예술 장르도 급속하게 변화하기에, 앞으로 음악과 미술의 융합이 어떤 방식으로 참신하게 청중을 만날지는 미지수다. [畵音​]

 

------------------

참고자료

Christiane, 『디지털 아트: 예술 창작의 새로운 가능성』 (시공사, 2007)

Mèredieu, 『예술과 뉴테크놀로지: 비디오·디지털 아트, 멀티미디어 설치예술』(열화당, 2005).

박소현, “토시오 이와이 (Toshio Iwai)”, 아트센터 나비, http://blog.daum.net/metil999/4035470

심혜련, “디지털 매체 기술과 예술의 융합,” 정광수 외, 『과학기술과 문화예술』(고즈윈, 2011).

유튜브 https://youtu.be/UKRY63Buv6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