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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 안의 타인-대중
박상연 / 2010-09-01 / HIT : 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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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타인 - 대중

 

                                                                                        박상연

(계간수필 2010 가을호)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심정이야 너나 할 것 없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우에 따라 이런 차이 정도는 있을 수 있다. 진정으로 자기를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의 차이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식이란 게 생길 때부터 스스로 인정하든 남들이 인정하든 평생을 그에 따라 만족과 불만을 반복하며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이는 관계 형성보다는 스스로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예술가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특히 조명과 박수를 받고 무대에 서는 음악가는 더 그럴지도 모른다.

민주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효율적 가치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치의 내용보다는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대중성’이 이 시대의 절대적 가치로 떠오르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본능에 대중성이란 도덕적 가치마저 부여되니 음악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는 자명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길로 들어서자니 발걸음이 안 떨어진다는 것이다. 대중성이란 게 마음에 걸린다. 아니 체질에 안 맞는다. 남들이 안 하는 일,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 나의 생리와는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다. 진실을 추구하고 에너지의 조화와 창조를 운운하는 나의 4차원적인 엉뚱함은 이 시대의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인류라든가 문화, 사회라든가 하는 관점. 나의 관점에서는 대중을 분명하게 인식하지만 그들의 관심이 항상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

그래서 나의 가치를 어떻게 현실적으로 풀어야 설득력이 있는가 하는 것이 항상 숙제인 것이다. 마치 변압기를 통해 200볼트가 100볼트로 바뀌듯이 4차원을 1차원으로 변환하는 과정과 방법이 나에게는 또 하나의 장르, 나만의 예술이 되었다. 사실 이 일이야말로 내가 하는 일의 핵심이다. 물론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먼저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추상적 가치를 현실적 상황으로 변화시키는 일, 그리고 서로 다른 차원을 조화롭게 공존시키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그 연장선에 화음쳄버오케스트라가 있고 화음畵音프로젝트가 있다.

이 둘을 시작한 지는 이제 겨우 15년과 9년째이지만 시작 당시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우려와는 다르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물론 아직도 대중적이지는 못하다. 영원히 그럴 것이다. 화음 쳄버의 완성도를 위한 치열함은 현재진행형이고, 화음 쳄버의 핵심 프로그램인 화음프로젝트는 미술과 음악, 시각과 청각이란 서로 다른 차원의 교류를 통해 예술적 영역의 확대를 경험을 하고 있다.

말과 글의 개념적 교류도 가능케 하고, 지성과 감성의 상호 관계라든가 예술에 있어 개념의 역할 등 다양한 경험도 하고 있다. 또한 과거 예술의 생성과정과 발전과정도 경험하여 예술이 환상이 아닌 본질적인 접근도 가능하게 되었다. 현실감이 생겼다는 얘기다.

본질적인 이해가 있으면 실체가 불분명한 대중성이란 괴물은 쉽게 잡을 수가 있다.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이 허상에게도 분명 아킬레스건은 존재하고 우리가 만들었으니 우리가 해결할 수도 있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엄청난 괴물을 만들어 놓고 기꺼이 그의 노예가 되는 모습은 마치 우상 숭배의 역사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취약함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니 약함이 아니라 인간의 기능적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약함이나 강함, 옳고 그른 것은 우리의 인식일 뿐이지 사실 존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어쨌든 음악가답지 않은 이런 엉뚱함을 세련되게 현실적으로 요리해서 먹음직스러운 식단을 마련하려면 아킬레스건을 잘 활용하면 된다.

이런 이상과 현실의 문제, 가치와 효율의 문제는 화음 쳄버오케스트라가 무대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만으론 발견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가치에 대해 내가 직접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시간의 문제다.

아무튼 개인이 그렇듯 어느 단체나 사회엔 나름의 DNA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유전자가 진화하며 끝없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심정 또한 너나 할 것 없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진실에 대한 이해와 역사에 대한 관심은 나와 우리의 구분, 과거와 미래의 구분을 없애고 일체감을 형성한다. 아, 그래서 책임감이란 게 생기나 보다. 대중에 대한 책임감도 그래서 생겼다.

진실은 현실의 위대함을 깨닫게 한다. 적어도 현실엔 모든 것,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모든 것이 존재하며 결국 창조라는 것도 발견일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내가 원하는 가치를-수많은 가치의 극히 일부분이긴 하지만-영위하기 위해서 실천하는 노동 또한 의미 있는 일이니 일생을 걸고 노력해 볼 만하다.

그런 과정에서 나를 발견하게 되고 그 발견은 다시 나의 에너지로 환원되니 이 구조야말로 완전함 그 자체이다. 누가 인간이 죄인이고 나약하다고 했는가. 인간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모든 자연현상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완전한 존재인 것이다.

하늘 높이 떠 있는 연이 그럴 수 있는 것은 바람의 저항과 연에 달려있는 질긴 줄 때문이다. 대중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고 대중을 변화시키고 싶어하는 본능과도 같은 질긴 줄이 있는 한 어떤 바람도 에너지로 바꿔 꿈과 이상을 높은 하늘에 띄울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의 끈만이 가슴속 깊이 부끄럽게 숨어 있는 우리 모두의 꿈을 자랑스럽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자유가 항상 우리 옆에 있는 저항과 현실에 있다는 것은 희망의 메시지이다.

 

 

비올리스트,  지휘자.  

서울대 음악대학, 독일 만하임 음대와 쉬투트가르트 음대에서 바이올린과 작곡.

비올라를 공부.

국립교향악단, 독일 루드비히스하펜 라인란트 국립교향악단,

 KBS 교향악단 단원 역임.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역임.

현재 화음쳄버오케스트라 & 화음프로젝트 대표 겸 예술감독, 고양예고 오케스트라 지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