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글로벌메뉴



칼럼

[통로 Vol. 2] 인터뷰: 정연두, 색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상)
송주호 / 2026-06-01 / HIT : 10
『통로』 Vol. 2 인터뷰
정연두: 색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상)

송주호
(음악칼럼니스트, 웹진 『통로』 편집장)


  2021년, 정연두 작가를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한 작품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2008)가 장석진 작곡가의 음악과 함께 음악회 무대에서 상연되었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기획과 연주로 이루어진 이 공연으로, 이후 음악은 정연두 작가의 작품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2026년, 올해도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정연두 작가와 함께 새로운 모의를 시작했다. 피아노 두 대의 연주와 강릉 신주 빚기 영상이 상영되는 〈싱코페이션 #5〉(2025)에서 피아노 연주를 실연으로 무대에서 구현하는 것이다. 6월 11~13일 3일간 연속으로 전시 공간인 ‘푸투라 서울’에서 진행되는 화음프로젝트페스티벌 중 둘째 날인 12일(금)에 음악에 맞춘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 재편집판(이 작업은 인터뷰 후에 결정되었다.)과 함께 공연된다.
  이 공연에 대해 정연두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늦겨울(2월 21일)의 매서운 추위를 뚫고 그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이번 공연뿐만 아니라 과거의 작품과 최근작, 그리고 미발표 작품까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고소한 빵 굽는 향과 산뜻한 커피 향과 함께. 먼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상, 그리고 음악

정: 1938년에 강제 이주되고 낯선 땅에 와서 완전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많이 당황해하면서 새로이 개척하고 있던 사람들, 이렇게 땅을 개간하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했었던 공연의 내용이니까. 그런데 제목인 ‘행복한 사람들’이 왠지 역설적이면서도 대단히 선전 느낌도 들고 여러 가지 시대적 배경도 있고 해서 재미있을 것 같아가지고, 제가 작년에 아르코에 지원 사업 신청을 했는데 그게 다원예술 분야로 지원한 거죠. 그래서 고려극장하고 같이 극을 하나 올려볼까...
송: 어떤 시나리오인가요?
정: 원 시나리오 옛날 걸 받아서 나름 해석을 해서, 제가 한 가지 생각한 거는 이런 거예요. 보시면 진짜 재미있어 하실 것 같은데, 이생강 선생님 아세요?
송: 그럼요. 아주 유명하신 대금 연주자시죠.
정: 그 어르신을 얼마 전에 가서 뵐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분이 참 재미있는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한글을 일본에서 배웠대요. 일본에서 태어나셨죠. 그런데 아버지가 길거리 돌아다니면서 조선인 척하지 말라고, 차별 받는다고. 그런데 다섯 살부터 피리를 부셨는데, 갑자기 이제 아홉 살인가 한국에 돌아와서 부산에서 지내면서 트럭 뒤에 태우고 시장에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모아 가지고 그래서 피리 연주하고. 그런데 이제 문제는 언어로 한국에 와서는 또 일본놈이라고 차별받으니까, 이제 언어로 표현이 안 되는 것들을, 대금은 그냥 후후 부는 게 아니라 말하듯이 뱉어내는 거다 보니까 그게 언어를 대변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던 거죠. 그러다 6.25 전쟁이 나니까 전국 8도에서 음악인들이 다 부산으로 온 거예요. 그래서 이제 이 사람 만나고 저 사람 만나고 하다 보니까 피리로 그 방언을 흉내 내기 시작하는 거야. 서울 말, 경상도 말, 전라도 말... 그래서 전라도 경우에는 판소리가 다 전라도 사투리로 돼 있는 것들이나, 경상도는 메나리조라고 그러나...
송: 판소리나 시조도 그렇죠. 전라도 내에서도 북부 남부 나뉘어서 차이가 조금씩 있더라고요.꾸밈들을 어디다가 붙이고 어디를 더 강하게 하고 이런 부분들이 조금씩 조금씩 달라요. 잘 아시는 분들은 단번에 듣고 구분하더군요.
정: 재밌는 게, 이 언어적인 것과 음악에 대한 것과 사이에 재미있는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아서, 제가 이번에 인터뷰로 고려인들의 양로원을 다녔는데 그분들은 함경도 사투리 같기도 하고 제주 방언 같은... 반도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러시아어와 섞어서 말씀하시는데, 도저히 러시아어로도 번역이 안 되고, 북한 말 조금 안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이 갔던 친구가 고려 할머니 밑에서 자랐던 친구다 보니까 대충 할머니가 무슨 말 하는지 알아 듣는 정도. 그래서 와 이거 힘들다. 그런데 그런 거를 조금 표현할 수 있는 연주가 될 게 뭐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송: 유대인들도 오랫동안 나뉘어져 있어서 지역마다 말이 달라졌죠. 히브리어가 각 지역마다 살면서 그 나라 언어가 섞이는데, 그거를 ‘이디시어’(ייִדיש)라고 따로 불러요. 또 다른 예로, 네덜란드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식민지화한 이후 많은 네덜란드인들이 그곳에 살면서 네덜란드어하고 아프리카가 섞이게 되요. 그 언어를 ‘아프리칸스’(Africaans)라고 따로 부르죠. 고려인들의 언어도 러시아어 등 지역어와 한국어가 섞여서 자기네들만의 또 하나 언어가 만들어졌나 보네요.
정: 그게 상당히 재미있어서, 일단은 지금은 그분들 말씀하신 내용 파악하는 것이 관건인데... 그래서 고려인 친구한테 부탁을 해서 추측되는 걸 좀 써달라... 그리고 또 제가 양로원을 다녔으니까 80~90살 되신 어르신들이 또렷하게 얘기를 하시지만, 사실은 과거 얘기에 대한 기억도 단편적이고, 그래서 상당히 재미있긴 한데 상상에 제약이 조금 많이 있어요.
송: 자료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나요?
정: 자료야 많이 있기는 한데... 역사학자 분들을 만났어요. 1937년 강제 이주되어 정착하고 개척하고 하는 그런 시기에 농부로서 기차 안에서 볍씨를 들고 와서, 그거를 다 굶어 죽는데 안 먹고선 가지고 있다가 땅에다 뿌렸는데, ‘크즐로르다’(Қызылорда)라고 하는데 진짜 사막이 나타나요. 거기로 강물을 돌려가지고 끌고 와서, 벼가 자랄 수 있는 북방 한계선보다 한참 위인데도 거기서 벼를 키워내요. 그런데 모내기를 못해요. 그래서 바로 물에다가 벼를 뿌리는데, 그것도 이렇게 잘못 뿌리면 한쪽이 와장창 나고 한쪽은 그렇잖아요. 어쨌든 그런 것에 관심이 많은데, 그쪽 역사학자는 많이 싫어해요. 우리는 살 만하다, 소련 시절에 소수 민족들은 우리보다 더 심한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를 그렇게 불쌍한 사람 보지 마라, 우리 지금 되게 잘 살고 있어요, 어마어마한 방어적인 기질로, 우리는 한국 사람 아니다, 우리는 고려 사람이지,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잘 살아남았다, 지금 잘 살고 있는데 왜 우리 안 좋은 것만 자꾸 얘기하냐... 그래서 과거 역사가 진짜 어려운 것 중에는 현재의 가치 판단을 가지고 과거를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면은 홍범도 장군의 동상을 철거를 해야 되니 말아야 되니 이런 얘기까지 나오게 된다는 거지. 그러니까 이게 현재 이득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나에게 어떻게 됐냐에 따라서 과거를 이해한다는 게 그게 되게 무서운 거잖아요.
송: 그렇죠. 그 당시에 판단한 상황이 있고 이유가 있는데, 지금의 관점에서 보는 거는 역사를 오판하고 왜곡할 가능성이 크죠.
정: 큰 경험하고 왔습니다.
송: 그게 숙제겠군요. 이걸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정: 어떤 면에서는 임지선 작곡가님이 그런 디아스포라 음악 만드시고, 또 그 두 대의 피아노를 작곡하시고 한 게 그런 어떤 고려인들 육성에서 시작된, 그리운 노래라고 하는 음악들이 사실은 이런 것이기도 하겠죠. 그렇게 시작하셔서 그렇게 끌고 나가신 거 진짜 대단하신 것 같아요.
송: 2023년에 <백년 여행기> 전시는 멕시코가 배경이었는데 임지선 선생님은 여기서 확장하셔서 고려인을 소재로 작품을 발표하셨었죠. 이번에도 같은 주제로 새로 곡을 쓰신 거군요.
정: <백년 여행기>도 하나의 시작이긴 한데, 제가 가장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2011년 서경식 선생님이 제 작업실을 찾아오신 거였죠. 저한테 연락을 여러 번 하셨는데 제가 이메일도 잘 안 보고 해서 연락하신 지 한 달 만에 연락이 닿아가지고 만나러 오시니까, 엄청 대동을 하고 오신 거예요. 무슨 미술관 관장님, 그다음에 타이피스트, 녹음 전문가, 그리고 또 통역가, 이래가지고서 쫙 대동을 하고, 이제 그러니까 이분도 현대 미술 장르의 작가를 만나면서 ‘나의 조선미술 순례’라는 책을 쓰시기 위해서 오셨는데 그러니까 긴장을 하셨던 것 같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왜 제일조선 3세 문필가가 나한테 찾아왔지였고, 그래서 그분하고 만났는데 이런저런 작품 보여주고 제 얘기하고 미술 어떻게 시작했냐 해서 저 아버지하고 싸운 얘기 등 별별 얘기를 다 하다가, 이제 제가 국립현대미술관 옥상에서 찍은 <공중 정원>(2009)이라는 작품을 보여드렸는데, 그거는 아나운서가 커튼을 열면서 뒤에 경복궁을 배경으로 가설 무대 위로 걸어가는데 설명을 해요, 역사에 대해서. 그 뒤에 보면 경복궁을 공중 정원이라고 하면서 거의 한 300m, 200m 계속 커튼을 열면서 걸어가요. 무대가 끝이 없는 것 같지. 그런데 사실 커튼은 조그마한 피스고, 이쪽 무대를 떼서 앞으로 이렇게 바퀴 붙이면서 인공 조명을 써서 마치 뒤에 있는 경복궁이 하나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처럼 보이게 그렇게 걸어가면서 얘기하는 건데, 그게 어떻게 보면은 어떤 과거 궁을 내려다볼 수 있는 권력과 거짓으로 이루어진 얘기들에 대한 것들을 안 드러내고 돌려까기 할까, 그런데 서경식 선생님이 그걸 딱 간파를 하셨다고 그럴까, 자기 형들이 제일 조선인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까지 구형받아서 감옥살이할 때 처음 붙들려 와서 고문당한 게 그 건물인 거야. 그 건물 옥상에서 저는 이제 경복궁을 바라보고 있죠. 그 얘기를 딱 꺼내시니까 그때부터 이분하고 진짜 통하기 시작하고, 그분의 책들을 사서 보기 시작하고, 그분 강연하는 것도 보고, 서울 올 때마다 계속 찾아뵙고, 일본에서 ‘아트타워 미토’(Art Tower Mito/水戸芸術館)라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100km 떨어져 있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하게 되고, 거기에 전시를 하면서 풀리지가 않는 거죠. 어떤 지점이 안 풀리냐 하면은, 미술관 큐레이터가 희망에 대해서 얘기하길 원한다, 그런데 미토라는 도시는 후쿠시마 원전에 100킬로 떨어져 있는데, 여기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얘기해 봤자 불안함이나 이런 것들이 가시겠냐, 그러니까 저한테 있어서는 제가 예전에 <원더랜드> 시리즈(2005)나 꿈이나 이런 것들을 했기 때문에 희망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도 실질적으로는 너 여기 안 살잖아, 말은 쉽게 하지, 이런 거죠. 그래서 전시회를 하면서 공간이라는 문제가 저한테는 굉장히 큰 화두가 되기 시작하고, 선생님에게 여러 가지의 자문을 구하고 얘기를 들으면서 공감이라는 것을 어디까지, 그러니까 우리가 항상 뭔가 얘기할 당사자성, 그러니까 네가 디아스포라냐, 네가 외국에서 뭐 했냐, 부모가 거기서 살았냐, 이런 얘기를 떠나서 누군가를 이해를 한다는 것과 그 당사자성을 넘어서는 공감이라고 하는 게 뭘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프랑스에 이주 온 베트남 사람들 많이 사는 마을에서 ‘여기와 저기 사이’라고 하는 〈디시 에 다이예〉(d’Ici et d’Ailleurs)라고 하는 사진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그 이후로 한국 와서 탈북자 만나고 또 하면서 이제 멕시코도 그렇고 하와이도 그렇고 아시아의 있는 여러 나라의 이주 노동자 분들 인터뷰 작업도 하고 그렇게 하면서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작업들이 되어 왔었죠.
송: 우연이라면 우연이 계기가 됐네요. 〈공중 정원〉을 통해서.
정: 그 선생님과의 어떤 소통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news_no_86_297.jpg
정연두, 공중정원 (출처: KUKJE GALLERY​)


다큐멘터리 노스텔지어

송: 그전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주제는 아니셨는데.
정: 그전에 제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내 사랑 지니〉(2004), <상록 타워>(2001) 이런 작품들이 대부분 남의 삶에 대한 관찰 이런 거고, 아파트 살면서 나와 똑같은 구조에 사는 윗집 아랫집 사람들에 대한 관찰 뭐 이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은 렌즈를 통해서 본다는 것 자체가 나 자신을 비춰보는 방식일 수 있는 그런 구조 같은 거가 저에게 있어서 되게 좀 화두였기 때문에, 그때부터의 작업들이 대체적으로 제 거를 끄집어내서 보여준다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그 사람들을 관찰하고 같이 협업하고 구현하고 이런 식으로 노인들의 기억을 물어서 <수공 기억>(2008)이라는 작품을 해서 구현을 한다든지 이런 식의 어떤 방법들을 많이 해왔었죠.
송: 시간 간격이 더 깊어지는 거죠. 예전에는 현실, 우리가 사는 시대, 지금의 벌어진 일들, 그리고 꿈들, 한 사람의 인생, 이 정도 정도였는데, 이제는 백년 전부터 지금까지로 확장된 거죠.
정: 이게 어떻게 보면 연장선에 있다...
송: 네, 점점 더 과거로 가면서 현재를 바라보는거죠. 예전에는 <영웅>(1998), <원더랜드>(2005)와 같이 꿈을 다루거나, <내 사랑 지니> 같은 경우는 꿈을 통해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이었는데, 점차 이게 뒤집어져 있습니다. 현실에서 과거를 바라보고 꿈처럼 재구성하는거죠. 이런 시각의 전환은 2021년에 화음챔버오케스트라와 작업했었던 <다큐멘터리 노스텔지어>(2008)가 분수령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작품이 선생님 자신의 과거와 추억들을 가져오셨잖아요. 갑자기 과거를 갖고 오셨거든요. 작품 목록을 쭉 보면서 계속 꿈, 희망, 앞으로 내가 뭐가 되겠지, 혹은 현실 이런 관점이었는데 갑자기 과거를 갖고 오신 거예요. 그래서 어떤 변화가 있으셨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뭔가 변곡점이 됐다는 느낌이 확 들었죠. 거울을 보기 시작하시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백년 여행기>까지 갔고, 그리고 이제 중앙아시아도 가시고.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런 과거를 통해서 다시 현재를 비춰보죠. 사실 <백년 여행기>도 과거에서 주제를 가져왔지만 현재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후손들이 현재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을 기준으로 해서, 우리는 현재를 보고 있지만 그들을 통해 과거를 갔다 오는 거죠. 그래서 <다큐멘터리 노스텔지어> 이후 점점 더 과거로 깊어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디아스포라라는 화두도 그렇구요,정: 어떻게 보면은 제 작업들이 디아스포라라고 하는 그 상당히 무거운 말에 얽혀 있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거든요. 그러니까 역사 교수님께, 뭐라 그럴까, 밝은 것들만 보게 되면은 뭔가 좀 빠진 듯한, 그런데 또 쥐어 짜고 무겁게만 가면은 그 무게감이랄까, 현실이 주는 그 무게감을 감당하기가 진짜 힘들고 하는 그 지점에서 이거를 어떻게 달리 볼 수 있을까, 이게 사실은 좀 위험하긴 해요. 디아스포라는 주제 자체가 워낙 무거운 데다가 그것이 현실까지 이어져 있는 상태인데 그것을 이렇게 떠내고 가볍게 하고, 이게 진짜 좀 리스키한 일인데, 그러다 보니까 음악이 주는 좀 해방감이라고 그럴까 이게 좀 큰 것 같아요. 그 서사를 판소리니 기다유(義太夫)니 마리아치 이런 거로 표현을 함으로 인해서 되게 무겁고 힘든 얘기들을 이렇게 어느 정도 드러낼 수 있는, 그래서 포용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죠.
송: 선생님 작품에 있어서 음악이 뭔가 역할을 하게 된 거네요?
정: 아주 큰...
송: 사실 <다큐멘터리 노스텔지어>를 포함해서 그전에 작품들은 아예 소리가 없었죠. 그전에 <탱고 탱고>(2000)나 <보라매 댄스홀>(2001) 이런 작품들도 음악이 있을 수는 있지만 부차적인 것이었는데, <백년 여행기>는 음악이 작품 자체니까요. 그래서 고민하실 게 많아진 거죠.
정: 저한테 있어서는 좀 절실함이 좀 있었던 것 같고, 이게 어떻게든 표현을 하고 싶은데 제가 음악을 원래 전공자가 아니고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거 아니면 이거를 확장해서 경험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도대체... 그래서 사실 <다큐멘터리 노스텔지어> 작업할 때 장석진 작곡가를 여러 번 찾아갔어요. 뭐 하나 배워보려고 많이 괴롭혀 드렸는데, 여러 가지 설명도 많이 해주셨고.

thumb-54fc4f30cbee211922067581bb7cf649_1

정연두, 다큐멘터리 노스텔지어. 2022년 울산에서 화음챔버오케스트라와의 공연 (출처: Hwaum museum​)



공존, 그리고 그 간극


송: 디아스포라도 그렇고 과거를 다루시면서도 항상 현실, 지금, 우리 이 시점을 놓치지 않고 계시는 것 같아요. 그게 제일 중요한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어요. 음악도 그 포인트를 잡으려고 하신 것 같아요. 이제 <백년 여행기>의 경우에도 음악들이 옛날 전통 음악으로 보이지만 가사를 바꾸셨잖아요. 오늘을 담는 가사로 바꾸시고, 그리고 저도 그때 한번 말씀드렸지만, 지금 내가 공연장에 온 것 같은, 지금 여기서 직접 연주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죠. 과거에 이랬어, 이렇게 이 사람들이 살았어, 이게 아니고, 지금 이렇게 살고 있어,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어라는 관점으로 계속 들려서, 이걸 다큐멘터리를 보는 시각이 아니고, 작품으로서 보게 되는 전환점이 음악과 전개 방식에서 갈려진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거기서 전체 영상 70~80분을 모두 봤죠. 요즘 영상 작품이 많잖아요. 러닝타임이 20분, 30분 써있는데 전시장에 있는 영상 다 보려면 며칠 동안 있어야 돼요. 어떻게 다 보나... 런닝타임 20분, 30분 돼도 5분 보다가 나오고 그랬는데, <백년 여행기>는 그냥 쭉 보게 되더군요. 그래서 그것도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연 어떤 지점이 70~80분 길이의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게 했을까를 생각해봤죠. 그러다 음악이 만든 현장감이라고 결론을 내렸죠. 영상만 있거나 영상 속의 소리만 들렸다면 그냥 다큐멘터리가 되었을 거예요.
정: 기다유 분라쿠(義太夫文楽)라고 공연을 보면은 앞에 메인 무대가 큰 게 있어요. 인형도 나와 있어요. 그런데 인형을 까만 옷 입은 두 사람이 조절을 하고 뒤에 마스터가 컨트롤을 해서 인형이 손짓이나 이런 게 너무 섬세하게 잘 표현이 돼요. 인형이 1개가 나오면은 최소 3명이 붙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숨지는 않죠. 그러다 보니까 인형이 3개 4개가 등장하면은 무대 위에 실질적으로는 사람이 열몇 명이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 서사를 ‘기다유’(義太夫)라고 하는 게 보여주는데, 그 공연이 되게 흥미로운 거는, 예를 들면 이미지를 찍고 더빙을 한다든지, 아니면은 음악을 입힌다든지 뭐 이런 게 아니라, 그 이 두 다유(太夫: 나레이터)와 기다유샤미센(義太夫三味線) 연주자가 서로 약간은 티키타카가 좀 있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 한 사람이 샤미센(三味線)을 들고 여기 와서 졸고 있어요. 이 사람들은 본 무대가 아니고 측면에 있어요. 그것도 삐끄덕하고 돌면은 두 사람이 이렇게 앉아서 나오는 거예요. 연주가 끝나면 삐끄덕 하고서는 또 이거 돌아서 다른 사람이 나오게 되고, 이래서 원형 무대에 조그맣게 이렇게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거고. 문제는 이 다유가 읽어주는데 남자 역할 여자 역할 하면서 무대도 안 봐요. 책 봐요. 책 읽는 그 형식이 딱 있어요. 그래서 어쩌고저쩌고 그때 말이지 하면서 막 이렇게 할 때 긴장이 됐대, 여자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갑자기 샤미센이 졸다가 갑자기 두두둥 이렇게 하면은 확 환기가 되는데, 이 인형을 하는 분들이 소리를 들으면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형에 맞춰서 소리를 내주는 게 아니라, 서사를 읽어주는 소리에 맞춰서 이미지가 만들어져야 된다는 건데, 그 영상 편집은 현재의 메리다(Merida: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도시)와 한인들의 여정, 백년초 농장들 이런 것들을 보여주지만, 영상은 전적으로 소리에 의지해서 편집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를 들면은 판소리의 고수가 딱 하면은 그 타이밍에 화면이 변환되고, 그 타이밍에 담배를 들고 있던 사람의 손가락이 툭 떨어지게 되는 거고, 그 타이밍에 이렇게 화면에 색깔이 바뀐다든지, 특히 샤미센 같은 경우에 이 현 하나에 따라서 파도를 표현하더라고. 그때의 그 이미지의 소스들을 계속 그렇게 불러오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이게 음악을 위주로 들으시는 분들은 화면이 좀 쉽게 따라오지는 않는 것 같고, 화면을 위주로 했을 때 음악을 들으면은 음악이 착착 감겨 들어올 수 있죠.
송: 그렇게 되죠. 영상을 주로 보는 사람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 음악이 잘 기억 안 나죠.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데 저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 그 장면에 그 음악 좋지 않았냐고...
정: 그 음악 나올 때 그 장면 좋지 않았어? 뭐 이런... 받아들이는 방식이...
송: 네 그렇죠. <백년 여행기>는 크기는 다르지만 4채널 영상이었잖아요. 남다른 현장감 때문에 굉장히 기억에 남았어요. 공간 배치도 굉장히 신경을 쓰신 것 같고, 그 전시 공간에 들어가기 전에도 영상이 앞뒤로 있었잖아요. 내가 그 안에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그런 거 보면 선생님께서는 기저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그런 것 같아요, 내가 공존하고 있다라는 것, 작품이지만 이 사람들 사이에 내가 지금 같이 있다는, 즉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조금 전에 시간적 관점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내가 우리가 현재에 있지만 과거와 공존하는 것 같고. 그 역사학자가 옛날 얘기하는 걸 굉장히 싫다고 하시는 것은 옛날 얘기만 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일 꺼예요. 지금 얘기를 하고 싶은데 거의 안 하고 있죠. 하지만 선생님 작품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다라는 것이 항상 기준인 것 같아요. <내 사랑 지니>와 같은 경우에는 미래가 현재와 공존하고 있는 지점일 것이고, <백년 여행기>와 같은 경우는 과거가 현재가 공존하는 지점인 거예요. 그래서 항상 시간적으로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상록 타워>의 경우에는 여러 공간들의 공존이죠. 지금 이 시점 여기에 내가 있어 이게 아니고, 내가 무엇과 함께 있느냐라는 거죠. 내가 미래와 함께 있는 것이냐, 과거와 함께 있느냐, 다른 공간과 함께 있느냐, 이런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느껴져요. 그걸 의식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이번에 어떤 것과 어떤 것을 공존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거죠. <로케이션>(2007)의 경우도 현실과 장치가 공존하죠. 풍경이 멋있어 이게 아니고, 진짜와 가짜가 공존하는 지점들, 그리고 그 간극에서 오는 생각할 지점들. 공존하는 두 가지 요소들의 간극만큼 관객들에게 생각할 폭을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간극이 2008년 <다큐멘터리 노스텔지어> 이후에 간격이 점점 넓어지더니 이제는 백년이 된 거죠. 그만큼 작품의 폭도 넓어지고, 그만큼 발품도 많이 파셔야 하고, 그만큼 사람들에게 고민할 점도 많이 주시고. 더 준비할 게 많아진 거죠. 그 넓은 간격을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도 요즘에는 속도를 좀 내시는 것 같아요. 이번에 준비하시는 중앙아시아는 또 하나의 ‘백년 여행기’가 될 수 있을 것 같군요.
정: 제가 빅토르 최(Виктор Цой: 고려인 3세로, 구소련 록그룹 ‘키노’의 보컬)의 ‘알루미늄 오이’(Алюминиевые огурцы)라고 하는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그 가사를 열심히 번역을 했어요. 그리고 빅토리 최의 전집도 읽고. 그러면서 생각이 든 게, 최근에 강남구청에 힐링 텃밭 신청하는 게 있는데 신청을 했어요. 이달 말에 발표가 나는데, 한 3.3평 정도 조그만 텃밭을 세곡천에, 그 정도 크기에다가 오이를 한번 심어 볼까. (현재 텃밭을 받아 오이를 키우고 있다.)
송: 빅토르 최는 제가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도 종종 미디어에 소개가 됐었는데, 그 이후로는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것도 한 30년 됐네요.
정: 아버지는 고려인이고, 태어나기는 레닌그라드. 알마티(카자흐스탄의 수도)에서 ‘첼리니 센터’(Tselinny Center of Contemporary Culture)라고 아트센터가 있는데, 거기서 빅토르 최에 관심이 있다고 하니까 책을 주시더라구요. 그런데 이거는 영화에 관련된...
송: 카자흐스카야 노바야 볼라... 카자흐스탄에서는 빅토르 최가 자기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아버지가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출신이어서 그렇게 간주한다.)
정: 아버지가 알마티에 계셨죠.
송: (책을 보면서) 사진에 여러 출신의 사람들이 섞여있군요.
정: 영화 전반인데, 빅토르 최가 좀 나오길래. 이게 빅토르 최 얘기만 나온 것이 아니라 카자흐스탄 영화에 대한... 그런데 아마 빅토르 최의 마지막 영화를 여기서 만들었죠.
송: 이 책이 카자흐스탄 언어로 쓰여졌나 보군요. 러시아어가 아니고...
정: 이게 영어, 러시아어, 카자흐스탄어를 항상 표기하더라고요.
송: 그렇게 선생님의 작품에서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는데, 이번에도 그렇죠. 그런데 <다큐멘터리 노스텔지어>도 원래는 소리가 없었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화음챔버가 전시 작품 앞에서 연주했었던 <날의 벽>(2023)도 소리가 없는 전시 작품이죠. 시간에 따라 녹는 시간성은 있지만요. 그런데 이 작품들에 소리가 더해지는 것에 고민이 많이 되지 않았나요?
정: 하나 보여드려도 돼요?
송: 네네, 그럼요.
정: 시라토리 겐지라고, 제가 미토에서 희망에 대한 전시를 만들어 달라고 그러는 데 한참 헤매고 있을 때 이분을 만나게 됐는데, 이분은 마사지하는 안마사 시각장애인이시고. 이분이 사진을 찍으신다는 얘기를 듣고 제가 찾아가서 보니까 사진이 너무 엉망이라 카메라를 사드렸어요. 그리고선 카메라는 미술관이 준 돈으로 샀으니까 부담 느끼실 필요는 없지만 찍어서 보내주시면 너무 감사하겠다고 그랬는데 그다음부터 매달 4천 장씩 사진을 보내주셔서, 그래서 1년 동안에 거의 8만 장 이상을 받게 돼가지고, 그 사진들을 가지고서 뭔가를 작품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게 이분이 이제 못 보시니까 제가 제안을 드린 게 혹시 좋아하는 음악이 있냐고 여쭤보았더니 오조네 마코토(小曽根真)라는 피아니스트의 재즈 피아노 음악을 좋아한다, 특히 <와일드 구스 체이스>라는 곡을 좋아한다고 그래서 오조네 마코토 씨한테 편지를 보내서 허락을 받고 음악 연주를 하게 돼가지고, 이제 그 곡을 받아서 그분이 보내준 사진들을 슬라이드쇼를 했어요. 그래서 이분이 전시장을 보러 오더라도 자기가 찍은 사진들을 볼 수는 없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서 쇼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송: 이 소리의 리듬에 맞춰서 편집하셨군요. 반대로,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진으로 만든 영상에서 리듬을 느낄 수 있을까 싶네요.
정: 이 작업이 어떻게 보면은 제가 음악이라는 것을 어떻게 결합하는가를 끄집어내 오는 계기가 될 것... (오븐에서 빵을 꺼내며) 아이고 색깔이...
송: 자주 이렇게 빵을 만들어 드시나요?
정: 거의 요즘 그냥 재미들어서 하는 거... 요즘 발효가 저는 되게 좋아요. 호밀과 밀가루를 반반 섞어서, 이거를 ‘이화곡’(梨花穀)이라고 하는... 조금 더 익혀야 되나?

e169db5821a0cfc2c7c402d24ef720e3_1780142
빵을 반죽 중인 정연두 작가

(하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