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正典), 변치 않거나 변하거나
이민희
(음악평론가, 음악학박사)
교양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위대한 음악들. 소위 음악의 ‘정전(正典)’은 서양음악사 특유의 산물이다. 먼 과거부터 존재했을 것 같은 이 정전들은 사실 어느 순간 ‘탄생’한 것이고 어떤 시점이 지나 그 자치가 퇴색하고 허물어졌다. 계속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발전했으며 쇠퇴기를 거쳐 새로운 정전을 고대하는 흐름인 것이다.
완벽한 비례와 엄격한 규칙이라는 의미의 ‘canon’이라는 단어는 사실상 음악의 영역에서는 조금 다르게 통용된다. 규칙만으로 이루어진 음악이 전부 정전은 아니며, 완벽한 비례 대신 불균형하거나 딱 떨어지지 않는 음악도 정전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음악의 정전이 18세기 중반 서양 시민사회와 결부되어 발전되었으며, 콘서트홀이라는 공간과 떼어 놓을 수 없다는 점과 연관된다.
첫 번째 장면, 1765년 바흐-아벨 콘서트
왕과 귀족에 억압되어 있던 사회는 18세기 중반을 넘어가며 변화한다. 자연권과 사회계약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등장하면서 보편적인 교육을 주장하는 계몽주의가 유행하게 된 것이다. 이 안에서 소수가 독점했던 음악을 다수에게 돌려주자는, 예컨대 ‘음악의 공공성’ 논의가 시작되었다. 절대왕정과 구체제를 비판하던 이들이 쾨텐의 레오폴트 왕자를 위해 작곡되던 바흐(J. S. Bach)의 음악들까지 거부하게 된 것이다. 큰 도시에는 음악회장과 가극장이 빠르게 지어졌고, 누구나 표를 사면 입장해 즐길 수 있는 음악회 시리즈가 대거 생겨났다. 파리의 콩세르 스피리튀엘(Concert spirituel), 런던의 바흐-아벨 콘서트(Bach-Abel-Concert), 독일의 콜레키움 무지쿰(Collegium musicum) 등, 음악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짐에 따라 음악을 배우는 이들도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음악 출판과 비평도 덩달아 활성화됐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공공연주회는 당대 작곡가들의 최신곡뿐 아니라 예전에 작곡된 곡들까지도 흡수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안에서 반복적으로 연주되는 소위 ‘콘서트홀 레퍼토리’가 생겨난다. 여기에 보조를 맞추어 음악학자들은 주요 작곡가의 전기를 발 빠르게 출판했고, 청중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그렇게 공공연주회가 유행하면 할수록 영구히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즉 시대를 넘어서도 반복해서 연주되는 ‘고전’ 레퍼토리가 확고해지기 시작한다. 18세기의 콘서트 문화가 ‘정전’을 낳은 것이다.

두 번째 장면, 1829년 멘델스존 지휘의 <마태수난곡> 연주회
19세기가 되면서 청중은 점점 더 많은 ‘위대한’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시민사회는 더욱 활성화되었으며 음악학자들이 발굴한 음악들은 곧바로 콘서트홀 레퍼토리로 선별되었다. 바야흐로 19세기를 휩쓸었던 일련의 역사주의 유행은 단테(Dante Alighieri), 셰익스피어(W. Shakespeare), 세르반테스(M. d. Cervantes) 등 과거의 천재들 사이에 ‘바흐’까지를 집어넣었고, 콘서트홀에서는 100년 전에 죽은 헨델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것이 놀랍지 않은 일이 되었다. 작곡가들 역시 ‘오라토리오’를 작곡해야 할 때 헨델의 작품을 펼쳐놓고 고민했다.
1829년 멘델스존이 바흐의 <마태수난곡> 초연 100주년을 기념한 음악회를 열었을 때 이 위대한 작곡가는 독일 음악계에 완전히 되살아났다. 1828년에는 더 과거로 파고들어 르네상스 음악의 대가인 팔레스트리나(G. Palestrina)의 전기가 발간된 터였다. 죽은 모차르트와 헨델, 바흐, 팔레스트리나, 조스겡 데 프레(Josquin des Prez)까지 콘서트홀과 작곡가들의 마음 속에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실체가 되었다. 이제 작곡가들은 과거의 정전과 내 음악 사이의 거리를 가늠했고, 그들의 음악에도 ‘역사적 무게’가 더해지길 간절히 바랐다. 작곡가들은 이제 미래의 청중이 자신의 음악을 ‘정전’으로 봐주길 상상하게 된 것이다.

세 번째 장면, 1936년 베를린올림픽 개막식
시간이 흘러 히틀러의 제3제국, 베를린올림픽은 독일의 위대함과 우수성을 전세계에 송출하는 도구였다. 이를 상징하는 장면이 바로 베를린올림픽 개막식이다. 수천 명의 인파가 운집한 스타디움에서 ‘독일찬가’와 함께 베를린의 청소년 6천여 명이 동원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졌다. 서유럽을 중심으로 축적되었던 음악의 정전화 그리고 위대한 작곡가의 목록엔 오스트리아·독일인이 빼곡했고 이는 히틀러의 민족의식을 고취 시키는데 제격이었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은 종종 거대한 위대함을 불러일으키는 베토벤 작품들의 영웅적인 모습들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오늘날 이 민족적 혁신의 시대에 베토벤 작품이 다른 사람들 것보다 더 자주 연주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베토벤의 정전화는 하루살이처럼 사라지는 뭇 예술과 다른 굳건한 실체로서, 그 항구성이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과 병치됐다. 작곡가의 손에서 떠난 음악이 세월을 지나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전유된 것이다.
청취자는 음악을 들을 때 일방적으로 레퍼토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미적 감각에 기반해 비판적 청취를 해야 한다. 하지만 정전은 이미 너무나 무거워졌고, 일개 한 명의 청취자가 ‘위대함’의 통념을 전복시키기란 너무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베토벤뿐 아니라 제3제국 시절 유독 많이 연주되었던 브루크너(A. Bruckner)의 교향곡들도 ‘독일인’이라는 맥락에서 선호된 음악이었다. 유사한 맥락에서 서양음악사의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 집중에도 그 비판적 잣대를 들이댈 수 있다. 소위 ‘하모베’ 정전의 형성과 그 가치를 공고히 하는 과정에 민족주의적 욕망이 결탁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네 번째 장면, 1985년 자크 루시에 트리오의 바흐 탄생 300주년 음반 발매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며 이제 세계는 ‘모더니즘’이 아닌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치들로 들썩였다. 서양사를 이끌었던 이성 중심주의와 보편주의 형이상학 전통이 시험대에 올랐다. 데리다(J. Derrida), 푸코(M. Foucault), 리오타르(Lyotard), 보드리야드(J. Baudrillard) 등은 ‘전체’ 혹은 ‘총체’로 대변되던 절대 불멸의 진리를 과격하게 무너뜨리며 다양한 이론을 발표했고, 이제 절대적 원리와 영원불변의 실재를 주장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음악학자 맥클러리(S. McClary)는 음악에서의 성차를 비판했고,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은 경계를 넘는 예술을 발표했다.
이제 정전은 구시대의 유물이자 타파해야할 ‘중심’으로서 누구에게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작곡가들은 바흐와 말러의 선율을 짜깁기해 작품을 선보였고, 대중음악가들은 클래식의 선율을 마음껏 변형하고 활용해 인기를 얻었다. 자크 루시에(Jacques Loussier)의 바흐 프로젝트는 이 위대한 클래식 음악을 ‘즉흥음악’으로 재해석해 대성공을 거뒀다. 세기말의 DJ들은 클래식 음악의 정전을 그들의 음악 안으로 흡수했다. 정전은 그저 ‘유명한 선율’의 하나로서 랩 배경의 루프(Loop)가 되었고, 대중은 이런 음악을 통해 클래식 선율을 처음으로 접하기도 했다. 정전에 덧씌워져 있던 고상한 아우라는 이제 바로 그런 속성 때문에 조롱당하기에 이른다.

다섯 번째 장면, 정전을 다시 갈구하는 2025년
디지털이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21세기 초입, 혹자는 이 세계에 대중이 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취향은 극단적으로 분화되었으며, 오디오시스템은 1인의 청취 환경에 꼭 맞게 디자인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18세기 콘서트홀 문화를 중심으로 형성된 ‘정전’은 사실상 그 레퍼토리를 여전히 작동시키는 것 자체가 위대한 일이 되었다. 이렇게 바쁜 세상에서 무려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러 예술의전당까지 가는 수고를 해야 한다니! 현대사회에서는 ‘정전’이라는 것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이제 포스트모더니즘의 광풍이 잠잠해진 미래의 한 시점으로서, 클래식 음악의 새로운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나노단위로 변하는 멀티태스킹의 21세기 안에서 ‘정전’으로 가득 찬 클래식 음악회는 모든 가치를 초월한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재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한 프레이즈의 트릴을 연주하기 위해서 한 달을 연습했다는 뭇 피아니스트의 고백은 수도자의 고행과 별반 다르지 않다. 숭고한 체험으로 다가오는 21세기의 콘서트홀 문화 앞에서, 이제 많은 음악가들은 나의 연주, 나의 레퍼토리, 나의 작품이 시공을 초월한 이벤트가 되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 좋든 싫든, 바로 그 지점에 클래식 음악의 동시대적 가치가 존재할 테니 말이다. [畵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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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18세기 베니스의 콘서트홀
https://www.copia-di-arte.com/a/concerthallinvenice18thce.html
그림2. 리스트와 위대한 작곡가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Danhauser,_Josef_-_Franz_Liszt_am_Fl%C3%BCgel_phantasierend.jpg
그림3. 1936년 베를린올림픽 전경 https://encyclopedia.ushmm.org/content/ko/photo/pro-hitler-slogan-displayed-at-the-1936-olympic-games
그림4. 자크 루시에 트리오의 음반 [Plays Bach Brandenburg Concerto No 2](1972) 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