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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畵/音.zine vol.13] 옛 음악과 새 음악의 공명(共鳴), 예술 체험의 지속과 갱신에 관하여
김인겸 / 2025-03-01 / HIT : 71

옛 음악과 새 음악의 공명(共鳴), 예술 체험의 지속과 갱신에 관하여

 

김인겸

(음악평론가)

 

 

자아를 둘러싼 환경과 음악 감상의 변모

 

언제부터인지 시점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같은 음악이라도 음악을 감상할 당시 나를 둘러싼 환경과 내가 처한 상황 등에 따라 음악이 달리 들릴 수 있음을 의식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활력을 주체할 수 없었던 삼십 대 중반의 어느 해 여름의 한복판, 동해의 외진 해수욕장 따가운 볕 아래서 나는 캔맥주를 들이키며 헤드폰 볼륨을 최대로 하여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을 들었다. 그때 느꼈던, 게오르그 숄티가 지휘한 시카고심포니오케스트라의 강력한 브라스와 압도적인 표현력은 몇 번을 다시 들어도 재현되지 않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 사춘기가 끝날 때까지 나는 비발디의 <사계>를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다. 펠릭스 아요가 독주를 맡고 이무지치(I Musici)가 연주한 명반이었다. 그러다가 대학에 입학한 1992년에 파비오 비온디가 이끄는 에우로파 갈란테(Europa Galante)의 <사계>를 듣고 충격에 빠졌으며 이무지치가 연주한 그 곡이 맞는지 의심했다. 그로부터 거의 삼십 년 동안 나는 파비오 비온디 유(類)의 당대연주에 빠졌다. 비온디 특유의 강렬하고 격렬하기까지 한 ‘여름’과 ‘겨울’에 매료되자 이무지치와 아요의 <사계>의 늘어지는 연주는 외면해버렸다. 그러다 최근에 사무실 화장실에서 비발디의 <사계>가 들렸는데, 이무지치의 연주임을 바로 알아챘다. 강추위가 몰아치던 겨울, 지치고 힘든 날 들린 펠릭스 아요의 바이올린은 너무나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새 음악에 담긴 옛 음악의 흔적

 

작곡될 당시 새 음악으로 각광을 받는 작품이라도 어떤 형태로든 옛 음악을 담는다. 옛 음악을 담는 방식 또한 무궁무진하다. 주제나 선율, 리듬이나 화성을 차용할 수 있고 전통적인 형식을 유지하거나 민속음악을 활용할 수도 있다. 오마주와 패러디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옛 음악과 구별되는 차별점이 선명하다면 새 음악으로 인정받는다. 이렇게 태어난 새 음악도 흘러간 음악으로 취급되어 더 이상 연주되지 않고 도서관에서 먼지만 뒤집어쓴 채 잠들어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나마 도서관에라도 보관돼 있으면 다행이지, 시간에 풍화되어 존재 자체가 사라진 음악도 많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주목을 받거나 새로운 해석과 연주를 통해 새 생명을 부여받는 음악도 존재한다. 물론 여러 요인으로 말 그대로 묻혀 있다가 재발견되는 음악도 있다.

 

 

 

 

잊혔다가 새롭게 조명된 음악: 플로렌스 프라이스

 

최근에 신선한 감동을 받은 플로렌스 프라이스(Florence Price, 1887~1953)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작곡가의 <교향곡 1번>이 좋은 예이다. 20세기 초에 ‘아프리카계’ ‘여성’ 작곡가가 음악활동을 하는 데 있어 어떤 어려움이 있었을지는 막연하게나마 상상해도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프라이스의 교향곡에는 클래식 음악의 전통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음악적 요소가 정서적으로도 잘 융합된 프라이스의 교향곡에서 새로운 감동을 느꼈다. 특히 2악장의 오보에와 클라리넷은 흑인영가 풍의 찬송가를 연상시키는데 심오한 서정적 세계로 진입한 듯했다. 

 

 

연주회를 통한 음악적 공명의 실현

 

2025년 4월 16일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현장음악2002’이라는 이름으로 기획한 첫 연주회를 개최한다. 필자는 이 연주회를 기획하며 연주회의 부제를 ‘고전음악과 당대음악의 공명 – 화음으로 여는 음악적 르네상스’로 붙였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는 이 부제를 글의 제목과 같이 ‘옛 음악과 새 음악의 공명(共鳴), 예술 체험의 지속과 갱신에 관하여’로 고쳐 보려 한다.

 

이번 연주회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빌라로부스 <브라질풍의 바흐 제9번>, 이은재 <현악합주를 위한 문묘(文廟)>(2023), 브리튼 <심플 심포니>, 로시니 <현을 위한 소나타 제3번 다장조>, 레스피기 <옛 춤곡과 아리아 모음곡 제3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그러나 의미 있는 것들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주되고 갱신된다. 음악 역시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통과 혁신의 연속선 위에서 새롭게 태어나며, 다시금 그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 이번 연주회의 프로그램은 그러한 음악적 흐름을 반영하며, 옛 음악과 새 음악이 서로 공명하고,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는 과정을 체험하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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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tor Villa-Lobos, Benjamin Britten, Ottorino Respighi 

 

 

전통과 변주, 지속과 갱신의 음악적 의미

 

빌라로부스의 <브라질풍의 바흐>가 바흐와 브라질 민속음악의 융합이라면, 브리튼의 <심플 심포니>는 전통적인 형식미와 현대적인 감각의 결합을 보여준다. 브리튼은 이 작품을 어린 시절 작곡했던 작은 곡들의 주제를 발전시켜 완성했으며,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구조 속에서 고전적인 기법과 동시대적 감성이 만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각 악장은 전통적인 춤곡 형식을 따르면서도, 브리튼 특유의 유머와 서정적 감성이 가미되어 있다. 고전적인 요소들이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점에서 이번 프로그램의 주제와도 잘 어울린다.

 

이처럼 전통이 단순히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되며 현재와 연결되는 과정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레스피기의 <옛 춤곡과 아리아 모음곡>이다. 고풍스러운 선율을 현대적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풀어낸 그의 작업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창조적 재탄생이다. 이 곡은 시대악기(당대악기) 연주와 현대적 해석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20세기 음악가들의 고민을 상징하며, 음악이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남는 방식을 다시금 고민하게 만든다.

 

결국, 이 프로그램은 과거와 현재, 전통과 창작, 재발견과 혁신의 균형 속에서 음악의 지속과 갱신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단순히 특정 시대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재의 시점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단체다. 이번 연주회 역시 그런 문제의식을 담고 있으며, 고전과 당대음악이 만나 이루는 공명의 순간을 통해, 음악이 어떻게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는지를 경험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덧붙이며

 

인체의 세포는 끊임없이 교체된다. 피부 세포는 2~4주마다 새롭게 바뀌고, 장의 상피 세포는 며칠 만에 재생된다. 심지어 단단한 뼈조차도 약 10년을 주기로 완전히 대체된다. 그렇다면 10년 전의 나는 내가 아닐까? 나일 수도 있고, 내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타인은 여전히 나를 나로 대한다. 나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는 신경계, 특히 뇌에 있다. 대부분 신경세포는 평생 유지되며, 일부 제한적인 신경 생성이 이루어지긴 하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기억과 경험, 사고방식과 같은 정신적 요소는 우리가 동일한 존재로 인식되는 근본적인 이유다.

 

음악도 새로워지는 동시에 옛것을 간직한다. 음악을 듣는 나의 동일성도 지속하며 갱신된다. 과거의 선율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되고, 옛 음악과 새 음악이 공명하는 과정에서 음악은 지속과 갱신을 모두 겪는 것 같다. 오래 음악을 감상하면서 음악과 음악을 듣는 나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를 들여다보는 일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畵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