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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畵/音.zine vol.11] 여성 음악가들의 삶, 그 너머의 음악
노지은 / 2024-09-01 / HIT : 181

여성 음악가들의 삶, 그 너머의 음악

노지은(음악평론가)

 

진은숙이 있기까지

 

  얼마 전 클래식 음악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에 아시아인 최초로 작곡가 진은숙이 수상했다. 독일 지멘스 그룹을 창립한 에른스트 폰 지멘스(1816-1892)의 출연금으로 만들어진 이 음악상은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 피에르 불레즈, 지휘자 카라얀, 레너드 번스타인, 클라우디오 아바도, 다니엘 바렌보임 등 저명한 음악가들이 수상한 바 있다. 진은숙은 이미 2004년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최고 권위의 작곡상인 그라베마이어상을 받았고, 이후 시벨리우스 음악상(2017), 마리 호세 크라비스 음악상(2018), 바흐 음악상(2019), 레오니 소싱 음악상(2021) 등을 휩쓸며 한국 작곡가의 위상을 세계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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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숙​
 

 

  그러나 진은숙과 같이 여성 작곡가들이 공식석상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이다. 1903년 이전의 프랑스 여성 작곡가들에게는 프랑스 정부가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와 함께 여러 예술가를 대상으로 주는 상이었던 로마 대상(Prix de Rome)의 출전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1903년이 되어서야 프랑스 교육부 장관이 여성들도 로마대상에 출품하는 것을 허락했고, 1913년에 작곡가 릴리 불랑제가 19살의 나이에 여성 최초로 1등을 수상하면서 여성 작곡가들도 공적인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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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불랑제

 

 

여성 작곡가들의 발견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공부하고 연구해왔지만 여성 음악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기는 쉽지 않았다. 작곡과 입시를 준비하던 고등학교 시절엔 틈틈이 음악과 관련된 책을 찾아 읽었는데, 여러 책들을 읽다가 여성 음악가들에 대한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그동안 음악사를 공부하면서 왜 이들을 접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났다. 이를 계기로 더욱 많은 음악 관련 책들을 찾아 읽게 되었고, 결국 작곡이 아닌 음악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입시로 바쁘고 분주한 고등학교 시절이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작곡가들의 음악을 찾아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자 취미였다. 그 중엔 당연 여성 작곡가들의 음악들도 있었다.

 

  루이제 파랑크, 파니 멘델스존, 세실 샤미나드, 클라라 슈만 같은 여성 작곡가들의 낯선 음악은 그동안 음악사에서 소외되었던 것이 아쉬울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그 매력에 사로잡힐 때면 클래식 악보를 전문적으로 파는 음악서점에서 이들의 피아노 악보를 사서 직접 그 악보를 눈으로, 손으로 옮겨가며 파고들어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훌륭한 작품들이 있음에도 여성 작곡가들이 음악사에서 소외되었던 이유가 궁금해졌다. 단순히 ‘여성’이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오늘날 여성 작곡가들은 어떠한가, 여전히 소외되어 있는가 하면 진은숙과 같은 작곡가들이 인정받는 것만 보아도 이 시대는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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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니 멘델스존
 

 

 

여성 음악가들의 소외와 그 이유

 

  그렇다면 여성 작곡가들이 음악사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는 남성 중심의 사회적 분위기와 시대적 상황으로 들 수 있다. 과거 유럽에서는 여성이 비창조적 본성을 타고났다는 주장이 팽배하여 여성이 전문가로서 나설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교육에서부터 차이를 보였다. 그 예로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난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은 부친의 든든한 지원 하에 유명 학자와 교수들로부터 다양한 전문교육을 받았으나, 누이 파니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부친은 그녀가 뛰어난 음악적 재능이 있었음에도 음악이 삶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가정을 잘 꾸리는 방법과 화술, 그림, 무용, 음악 등을 배우게 했다. 파니는 결국 그녀에게 주어진 젠더 규범에 순응했고, 소규모 살롱에서 지인들에게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이처럼 과거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사회조직에서 소외될 뿐 아니라 이러한 사회에 순응하도록 교육을 받음으로써 인정받을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얻지 못했다.

 

  또한 여성들은 생물학적으로 재생산 기능과 본능적 능력을 갖고 있어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의무를 가져왔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룬 뒤, 임신과 출산을 통해 태어난 자녀 양육과 가사일은 온전히 여성들의 몫이었다. 클라라 슈만의 경우 부친의 반대를 무릎 쓰고 얻은 슈만과의 결혼생활에 처음엔 만족한 듯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덟 번의 임신과 가정생활을 이어나가며 음악을 자유로이 할 수 없는 현실에 몹시 괴로워했다. 결국 그녀는 임산부의 몸으로도 꾸준히 무대에 올랐고, 창작열을 불태우며 작곡활동을 계속해나갔다. 이뿐 아니라 슈만과 사별한 이후에도 능력을 인정받아 1878년에 프랑크푸르트 음악원 최초의 여성 교수로 임용되었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물학적인 여성의 한계와 가정을 돌보는 기능적 역할은 요즘 흔히 말하는 ‘경력단절 여성’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클라라 슈만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고군분투한 끝에 ‘작곡가 클라라 슈만’으로서 자신을 입증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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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슈만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했을까. 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이 처음 들어온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는 교육의 기회가 없던 여성들도 서구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선교사들은 찬송가를 통해 우리 민족에게 양악을 소개했으며, 미션스쿨 등에서 음악교육을 받은 이들 중에선 음악가가 되기 위해 미국이나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오는 이도 있었다. 최초의 여성교육 기관으로 설립된 이화학당은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여성에게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하여 임배세, 김메리, 김순애와 같은 여성 작곡가들을 배출했다. 그럼에도 우리 근대시기 여성 음악인들이 처한 상황은 과거 서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와 식민지 현실은 암담했으나, 여성 음악인들은 오히려 음악을 통해 암울한 현실의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고자 했다. 이러한 여성 음악가들을 사회에서 인정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작곡가 김순애는 1974년 ‘제1회 대한민국작곡상’을 수상하면서 “더욱이 많은 남성 후보를 물리치고 뽑혔다니 젊은 여성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라는 소감을 남겼는데, 이는 근대시기 우리 여성 음악가들의 현실을 엿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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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애

 

 

 

여성 음악가 연구동향

 

  학계에서는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여성 음악가들에 대한 연구가 음악학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서구 음악인류학자 네틀은 그의 저서 <종족음악학 연구(The Study of Ethnomusicology)>(1982)를 개편하면서 “음악문화와 여성의 문제”라는 장을 포함시켰다. 미국 음악학자 조셉 커먼도 자신의 논문에서 음악에서의 젠더 연구가 음악학의 대세이며 반드시 다뤄야할 것으로 언급했다.(1990) 우리 여성 음악가들에 대한 연구 역시 90년대 이후 현재까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국 초기 여성 작곡가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초기 한국교회음악에서 여성의 역할, 초기 음악교육을 담당했던 여성선교사 연구 등으로 점점 확대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 음악가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많은 과제들이 있지만 이러한 학자들의 노력이 있기에 오늘날 여성 음악가들이 당당히 인정받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삶 너머의 음악, 여성 음악가들의 꿈

 

 이 시대에는 지역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을 지라도 더 이상 여성이기에 차별된 교육을 받는다든지,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든지, 수상 받지 못한다든지 하는 어려움은 거의 없다. 오늘날 여성 음악가들은 마음껏 자신의 꿈을 음악으로 펼칠 수 있고, 전문성을 인정받고, 전문가로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다. 사회적 분위기나 환경은 바뀌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여성 음악가들은 음악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그들 ‘삶 너머의 음악’을 펼쳐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생물학적인 임신과 출산이라는 장벽은 여성들을 경력단절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킨 것은 아니다. 필자 역시 출산과 육아의 과정을 겪으며 음악학자의 꿈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위기의식을 느끼기도 했다. 현실은 바뀌지 않았지만 클라라 슈만과 같이, 우리 초창기 여성 작곡가들과 같이 그것을 놓지 않는 것은 기어코 자신의 몫이다. 오늘날에도 삶 너머의 음악, 꿈을 쫒는 모든 여성들에게 말이다. [畵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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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dith Zack, 배인혜 역, <세이렌의 노래-여성 작곡가들의 삶과 음악> (만복당, 2019)

김은하, “이화학당과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중심으로 본 초기 한국 여성작곡가 연구” (한국음악사학보, 2009)

우현주, “작곡가 진은숙의 사례를 통하여 본 여성 음악가의 재현 연구” (음악이론포럼, 2019)

장정윤, “한국 근대 ‘최초’의 여성음악가 임배세: 노래로 세상의 변화를 추구하다” (음악학 Vol.26 No.2, 2018)

채현경, “한국 근·현대 음악사 서술과 여성 작곡가 김순애” (한국음악사학회,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