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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畵/音.zine vol.5] 음악과 문학, 그 간극
안정순 / 2023-03-01 / HIT : 451

음악과 문학, 그 간극

안정순 (음악학박사, 음악평론가)

 

음악과 문학의 관계

 

음악과 문학은 역사적으로 서로 복잡하게 얽혀 왔다. 그러나 시간을 거슬러 음악이 처음으로 기보되었던 중세 시기에는 음악과 문학은 원래 하나였다. 중세 가톨릭교회에서부터 전례음악으로 사용된 그레고리오 성가는 그저 가사를 담은 그릇이었고, 당시 프랑스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음유시인으로 불린 트루바두르와 트루베르는 시인이자 동시에 음악가였다. 단성 음악 이후 등장한 다성 음악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표 다성 장르인 ‘모테트’(Motet)는 프랑스어 ‘mot’에서 유래하며 그 의미가 ‘단어’를 지칭하니 말이다. 시인은 곧 음악가였고, 따라서 음악과 문학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그러나 비록 한 몸체를 이룬 듯 보이는 음악과 문학은 한 성인(聖人)의 고백에서 그 이질성이 목격된다. 

 

“교회에서 찬송을 사용하는 것을 승인한 것은 귀의 즐거움(음악)을 통해서라도 연약한 마음을 일으켜 경건(예배)의 감흥을 일으키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부르는 노래(말씀)보다 목소리(음악)에 더 감동을 받을 때면 죄를 짓는 것 같아 차라리 음악을 듣지 않으려 했습니다.”

 

AD 400경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354-430)는 『고백론』에서 찬송의 가사인 말씀보다 음악에 반응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죄를 발견하고 이를 신께 고백하며 회개하고 있다. 그는 음악이 우리 내면의 욕구를 건드리고 충동적이고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가졌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즉 두 가지 매체의 간극을 인지했던 것이다.

 

음악과 문학이 갖는 근본적인 차이는 음악 양식이 크게 바뀌는 전환점마다 결정적 변화의 요인이 된다. 예컨대 르네상스와 바로크시기를 나누는 결정적 사건 중 하나로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와 아르투지(Giovanni Artusi, 1540-1613) 사이의 논쟁이 있었다. 바로 제2작법에 관한 것으로, 가사의 표현을 위해 당시 통용되고 규범화된 음악적 규칙을 넘어선 불협화음의 사용이 그 내용이다. 아르투지의 입장에서 몬테베르디의 마드리갈은 음악적 법칙을 위배하는 불편한 (혹은 형편없는) 음악이었을 것이다. 물론 현재 우리의 귀에는 바로크 시기 이후로 점차 강하게 조성의 방향성과 목적성을 획득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음악적 규칙과 문학적 표현을 향한 충동 사이의 갈등은 몇 세기의 시간이 흘러도 지속되었다. 특히 19세기 가곡과 오페라에는 음악과 문학 두 예술의 복합적이고 긴밀한 관계를 엿볼 수 있다.

 

 

가곡 속 음악과 문학의 간극

 

가곡이라는 장르를 음악 역사에 각인시킨 이는 바로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이다. 그는 당시 독일 문학계를 지배했던 실러, 슈레겔, 하이네, 노발리스, 괴테 등의 다양한 작가들의 시에다 음악을 붙였다. 600여곡의 가곡 중 특히 <겨울 나그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백조의 노래>는 바로 그의 3대 연가곡으로 불린다. 괴테의 서사시 발라드 ‘마왕’ 에다 음악을 붙인 슈베르트의 <마왕>은 음악과 문학이라는 두 가지 매체의 상호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 밤 어둠과 바람 해치며 달리는 이 누군가?

그들은 아버지와 그의 아이라네.

아버지는 소년을 품에 안아,

안전하게 감싸고 따스하게 보듬었네.

 

“애야, 왜 두려운 얼굴을 하고 있니?”

“아버지, 마왕이 보이지 않으세요?

왕관을 쓰고 망토를 걸쳤어요.”

“얘야, 그건 안개가 깔린 거란다.”

 

‘귀여운 아이야 나와 함께 가자!

재미있는 놀이를 같이 하자꾸나, 

바닷가엔 화려한 꽃들이 만발하였고

내 어머니에겐 금빛 옷들도 많단다.’

 

“아버지, 아버지, 들리지 않으세요?

마왕이 나직하게 나에게 말하고 있어요.”

“진정해라, 진정해, 얘야.

마른 잎들이 바람에 사각거리는 소리란다.”

 

‘착한 아이야, 나와 함께 가지 않으련?

내 딸들이 예쁘게 차리고 기다리고 있어.

그 애들은 밤의 무도를 이끌며

흔들고 춤추며 노래로 너를 재워 줄 거야.’

 

“아버지, 아버지, 저기 보이지 않으세요?

저 컴컴한 곳에 마왕의 딸들이 있어요.”

얘야, 얘야 내가 분명히 보는데 

늙은 버드나무가 잿빛으로 빛나는 거란다.”

 

‘널 사랑한다. 귀여운 네 모습에 반했어.

하지만 네가 원하지 않으니 강제로 할 수밖에.’

“아버지, 아버지, 마왕이 날 붙들어요!

마왕이 나를 아프게 해요!”

 

놀란 아버지는 쏜살같이 달리는데,

팔에 안긴 아이는 신음하고 있네.

힘겹게 가까스로 집에 도착하고 보니

품 안의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네.1)

  

괴테는 그의 발라드 ‘마왕’에 붙인 슈베르트의 작품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가 음악에 대해 무지해서가 아니라 서사시 발라드의 성격이 슈베르트의 통절형식 작곡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괴테는 슈베르트보다 코로나 슈뢰터(Corona Schröter, 1751-1802)의 유절형식 세팅을 더 좋아했다. 서사시 발라드의 특징이 반복구를 통한 음악의 반복에 잘 녹아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유절형식이란 동일한 음악이 텍스트의 각 절에 적용되어 음악은 단순히 박자, 리듬, 운문 길이의 반복된 음향적이고 운율적인 순환을 메아리치게 된다. 즉 음악은 점점 더 커지는 말의 정형화된 소리에 그 존재가 눈에 띄지 않게 된다. 음악은 시를 해석하지 않고, 시 외에 낯선 요소를 새롭게 드러내지 않는다. 음악은 그저 시와 협력하여 반복되는 형식 속에서 스며들어 시가 자신의 소리를 발설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괴테는 반복되는 형식적 구조와 (시에 묘사된) 이야기가 선적으로 진행하며 발생하는 절묘한 충돌들로 생기는 음악의 효과를 기대하였던 것이다. 즉 서사시 발라드의 반복이라는 순환 구조는 이야기의 진행과 부딪히며 불안하고 불길한 박을 만드는데 이것이 괴테가 추구한 ‘마왕’의 진행 구조이다.

 

괴테가 추구한 서사시 발라드의 반복 구조와 내러티브의 선적 진행 사이에서의 긴장감을, 슈베르트는 통절형식을 사용함으로써 그 긴장감을 다 풀어헤쳐서 나열한 것일까? 슈베르트의 <마왕>은 피아노 반주의 셋잇단음표가 말 달리는 긴박한 분위기를 묘사하며 시작한다. 이 리듬은 곡 전체에 걸쳐 반복되며 그 위로 마왕의 존재와 겁을 먹고 떠는 아이의 심리, 아버지의 저음 목소리, 마왕의 달콤한 유혹이 펼쳐지다가 아이의 죽음(Tod)과 함께 강렬한 피아노 반주로 허무하게 마무리된다. 즉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은 괴테가 발라드의 형식을 통해 전달하려고 한 이야기의 선적인 진행과 순환 구조 사이의 충돌을 통한 긴장감은 아니지만, 말 달리는 소리를 묘사하는 셋잇단음표의 집요하게 반복되는 리듬은 발라드가 주는 미묘한 긴장감과 겹친다. 슈베르트는 반복구가 없는 통절형식으로 반복된 소리를 통해 발라드의 극적 장면을 하나의 이미지로 그려냄으로써 문학과는 다른 차원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내고 있다.

 

샌드아트 영상: https://youtu.be/cDyadF3Zc6g

 

오페라 속 음악과 문학의 간극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베르크(Alban Berg, 1885-1935)의 오페라 <보체크>는 이러한 음악과 문학이 작동하는 방식의 차이를 잘 드러낸 작품이다. 뷔히너는 독일현대문학의 효시(嚆矢)이자 독일 현대극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독일 작가이다. 『당통의 죽음』, 『레옹스와 레나』, 소설 『렌츠』, 『보이체크』를 남긴 뷔히너는 24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비운의 천재이다. 뷔히너의 『보이체크』는 27개의 장면들이 기승전결의 구조 없이 파편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베르크는 이를 5장면씩 하나의 막을 구성하여 3막 15장의 대칭적 구조의 오페라로 만들었다. 이에 대해 베르크가 드라마를 이해하는 방식과 드라마에 대한 음악적 접근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있다. 베르크의 오페라는 뷔히너의 열린 형식의 드라마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였고, 뷔히너의 사실주의와도 맞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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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보체크>의 3막 15장의 구성

 

 

베르크는 인과성 없는 파편적으로 나열된 27개의 장면들의 의미를 정령 읽어 내지 못했을까? 베르크가 사용한 무조음악(atonality) 어법은 조성음악의 전통적 음의 논리를 거부한다. 뷔히너의 파편적으로 나열된 장면들과 겹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베르크의 제자였던 아도르노(Theodor Adorno, 1903-1969)는 뷔히너의 파편적 드라마와 베르크의 전통적 오페라 구성이 맞닿은 지점으로 바로 ‘아름다움(美)의 경제적 논리를 추구한 점’이라고 하였다. 오페라는 드라마의 스케치들의 감춰진 중요한 의미를 담은 또 다른 텍스트로 전환하는 과정으로, 음악은 여기에 ‘생략된’ 의미를 드러내고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두 가지 예술 매체는 각자 특유의 형식과 표현 방법으로 상호 작용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한다. 

 

음악과 문학은 때로는 같은 방향을, 때로는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 동일한 소재의 음악과 문학이 교묘하게 서로 어긋나는 순간 새로운 창작의 세계가 열린다. 음악과 문학이라는 예술의 형태가 의미를 전달하는 일종의 매개 혹은 매체라면, 서로 다른 매체에 의한, 즉 음악과 문학의 간극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발생한다. 유절형식과 통절형식, 열린형식과 닫힌형식은 음악과 문학이라는 서로 다른 매체에 따른 선택이며, 가곡과 오페라는 음악과 문학을 나란히 결합하는 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제2의 창작물이자 독해 결과물로 이해된다. 음악과 문학이 갖는 고유성을 지킴과 동시에 새로운 미학적 의미를 창출하는 것, 이를 ‘상호매체성’이라 부르고2), 이것은 바로 두 매체의 ‘간극’을 전제로 한다. 이를 통해 의미의 층은 두터워진다. [畵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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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혜언·정인모, 『독일의 음악과 문학』, (부산: 부산대학교출판부, 2019), 70-71.​

2) 이홍경, “시와 음악의 이중주: 예술가곡에 나타난 문학과 음악의 상호매체성,” 『독일어문학』 제48집, 104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