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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십이간지 동화이야기] 작곡가와의 질의응답
이민희 / 2015-06-15 / HIT : 1155

2015 화음쳄버오케스트라 신년 가족음악회 “십이간지 동화이야기” 공연 평론을 위한

작곡가와의 질의응답

 

(2015.2.26~2015.3.1)

 


 

이민희 : 오작표 프로젝트를 통해서 ‘어린이를 오케스트라 12간지’를 작곡 · 초연 하셨습니다. 첫 질문은 작품의 구상에서 연주에 이르는 전 과정에 관해서입니다. ‘어린이’라는 관객을 설정하고 ‘십이간지’를 주제로 택한 과정, 구체적인 텍스트의 선정과 텍스트의 음악화에 대한 고민 과정, 악장의 구성 과정, 직접적인 작곡과 수정 과정, 나레이션 파트의 처리 과정, 리허설 과정 등 새로운 작품이 초연되기까지의 세부적 절차 각각의 단계를 거치는데 걸린 작업 기간, 작업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최한별 : 현대음악은 ‘동시대의 음악’이라는 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방가르드적 특성상 정작 동시대인들의 삶 속에서는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년간 작곡에 임하던 중 항상 아쉽게 느꼈던 부분이며, 그렇기에 나는 현대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작품 안에 동시대인들의 정서를 반영하고 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싶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십이간지 동화이야기는 그러한 본인의 소망이 구체적으로 반영된 작품입니다. 아이에서 어른까지, 온 가족이 손을 잡고 연주회를 방문해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현대음악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각 동물의 특징을 소리로 상상하는 과정에서 현대의 새로운 악기주법을 활용하는 것과 고전화성이나 형식의 틀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그 상상을 최대한 뚜렷하고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나레이션 또한 작품의 일부로 생각하여 직접 제작하였는데, 작곡 작업의 구상 단계에서는 특히 텍스트가 음악과 하나가 되어 어우러지도록 노력하였습니다.

 

모든 상상에 정답은 없습니다. 작품 속 십이간지 동물들의 소리는 작곡가 한 사람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십이간지를 듣는 어린이들은 그로 인해 새로운 소리를 경험하고, 나아가 자신만의 십이간지 동물들의 소리를 상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십이간지에 대한 여러 설화 중, 쥐가 고양이를 속이고 소 등에 올라타 일등을 한다는 유교황재설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어린이 연극을 참고하여 각 동물들에게 저마다의 짤막한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먼저 텍스트 만든 후 그것을 바탕으로 음악을 구성하였는데 열 두 동물 외에도 고양이나 임금님이 등장하는 부분이 있기에 총 15악장이 되었습니다. 각 악장이 2분 내외로 워낙 짧았기 때문에 형식을 갖추기보다는 각 동물을 상상했을 때의 이미지와 이야기의 흐름을 위주로 작곡하였고, 텍스트를 음악화 하는 과정에서는 나레이터 또한 한 사람의 연주자로 보고 이야기 자체가 다른 악기들과 앙상블을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텍스트 작성을 제외한 나머지 작업은 모두 동시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각각의 단계를 거치는데 걸린 시간은 알 수 없고요, 전체적으로는 두 달 조금 넘게 걸렸습니다. 리허설은 공연 일주일 전부터 총 4번 있었는데 모두가 굉장한 집중력을 발휘해 주었습니다. 사실 제 목소리 연기가 서툴러서 리허설 기간 중 연기지도를 한번 받았습니다. 처음엔 한 가지 목소리 톤으로 연기하다가 지도를 받은 후에 각 동물 목소리를 제대로 흉내 내기 시작했는데 그러다보니 연주자 선생님들이 제 목소리 때문에 너무 웃겨서 가끔 파트를 놓치는 상황도 생기더군요.^^ 소나 닭 울음소리를 재현한 부분도 담당 악기의 선생님들이 너무 생생하게 표현해 주셔서 연습 때마다 모두 재미있어 하고 즐겁게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민희 : ‘12간지’에 작곡가 본인의 음악적 스타일과 지향하고자 하는 음악적 이상이 반영되어 있는지요? 아니면 ‘어린이를 위한 작품’으로 의도된 만큼 평소 자신의 작품 스타일에 꼭 맞지 않더라도 ‘대중성’을 염두에 두고 작곡하셨는지요? 혹은 작곡가 본인의 지향점 중의 하나가 ‘대중성’ 그 자체이기에 ‘스타일’이나 ‘음악어법’ 적인 측면의 다름(difference)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지요? 본인의 지금까지의 작품과 앞으로 작곡될 작품들 가운데 이 작품이 어떤 의미로 위치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최한별 : 십이간지 동화이야기는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어린이들이 일찍이 현대음악을 경험해 봄으로써 다양한 음악을 거부감 없이 접할 수 있는 성숙한 문화시민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제 소망과 이상이 반영된 작품입니다. 하지만 제가 지향하는 ‘비 음악인(어린이 포함)을 위한 작품’은 ‘대중성이 있는 작품’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두 가지 개념들의 차이는 질문 4에서 답해드렸으므로 중복해서 적지 않겠습니다.

 

이민희 : 궁금한 점은, 화음프로젝트와의 이번 작업이, 본인의 전체 작품 리스트나, 전체적인 지향하는 바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입니다. 이를테면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는 젊은 시절에 짧은 ‘애니메이션 음악’을 작곡하긴 하지만, 이 음악들은 구바이둘리나가 추구한 ‘영성’이나 ‘종교적’ 테마와는 거리가 멉니다. 즉 그녀의 ‘애니메이션 음악’과 ‘콘서트 음악’이 음악적으로는 비슷한 부분이 있다 할지라도, 구바이둘리나에게 있어 ‘애니메이션 음악’은 전체 음악 작품에서 중요한 레퍼토리가 아닙니다. 반대로, 프로코피예프나 필립글래스 등은 애초에 ‘비음악인’에 대한 나름의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많이 고민했기 때문에, ‘영화음악’이나 ‘발레곡’ 같은 레퍼토리를 ‘교향곡’이나 ‘협주곡’ 만큼 중요하게 다룹니다. 이들 작품의 진수를 보기 위해서는 ‘영화음악’을 찾아서 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으며, ‘영화음악’이라는 장르가 ‘음악적으로’ 이들 음악의 핵심을 관통함은 물론 ‘미학적으로도’ 중요합니다. 반면 최한별 작곡가님의 경우, 전체 작품 커리어나 앞으로의 작곡의 지향점을 놓고 보았을 때 이 작품이 가지는 무게감이 궁금합니다.

 

최한별 : 좀 더 많은 동시대인들에게 사랑받는 곡을 쓰고자 노력하는 제 평소의 소망과 이상이 담긴 작품인 만큼 전체적으로 지향하는 바와 다른 작품들 사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겠지요?^^ 특히 어린이들이 일찍이 현대음악을 접해보는 것이야 말로 장차 현대음악의 관객개발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기에 이번 작품은 제게 있어 그 이상을 실현해 나갈 수 있는 첫 걸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 지향점이 ‘대중성’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정확히 전하기 위해 처음 답변을 할 때 약간의 설명을 드렸던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예로 들어주신 구바이둘리나와 프로코피예프와 같은 경우도 평소에 지향하는 스타일과 그렇지 않은 것이 구분되어 둘 중 한가지가 전체 레퍼토리에서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혹은 두 가지가 모두 동등하게 중요한지에 대한 질문으로 생각됩니다만, 제게 있어서는 그러한 스타일에 대한 구분이 특별히 없으며 비 음악인이든 음악 전문가이든 모든 청중들이 들었을 때 그저 끝까지 집중하여 들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로 비 음악인들을 생각하며 곡을 쓰지만 비 음악인을 위한 음악과 전문가를 위한 음악이 제게 있어 두 가지의 상반된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집중해서 따라갈 수 있는 음악’을 높은 퀄리티로 작업하여 전문가들은 물론 비 음악인들 또한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이민희 : 살아 있는 동물의 소리를 직접 듣는 것과, 음악회장에 앉아 동물의 소리를 유사하게 재현한 음향을 듣는 것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최한별 : 앵그리버드 주제곡을 모티브로 만든 푸가를 유튜브에서 들었을 때와 같이 웃기고 신기하지 않을까요?

 

이민희 : ‘12간지’의 모든 악장에 등장하는 동물 모티브는 반복되지 않으며, ‘선율’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화성도 날카로운 부분이 많습니다. 보통 ‘대중적’이라 칭해지는 작품들은 ‘선율’이 반복된다거나, ‘리듬’이 단순하다거나, 특별한 모티브가 반복되면서 전체 곡을 엮어나가거나 하는 방편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12간지에는 이런 일반적인 방법이 모두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에서 ‘대중’을 염두에 둔 작곡 전략은 무엇인가요?

 

최한별 :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대중’이 아닌 ‘비 음악인 관객’에 염두를 두었습니다. 따라서 보통 ‘대중적’이라 칭해지는 작품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대중음악과 클래식은 작곡 기반이 다르기 때문에 대중음악을 클래식처럼 반복 없는 긴 호흡으로 작곡한다면 기억에 남아 흥얼거릴 수 있는 선율이 없을 것이며, 반대로 긴 호흡의 클래식 음악에서 선율 반복과 단순한 리듬만을 사용한다면 관객은 기대감 없이 지루하게 앉아있게 될 수 있겠지요. 실제로 (예술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단순한 리듬과 선율 반복이 주를 이루는 고전음악 음악회에서는 지루한 나머지 조는 관객들이 있습니다.

 

비 음악인 관객이 긴 호흡의 클래식 현대음악을 재미있게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열쇠는 ‘집중력’ 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다른 작품들을 구상할 때에는 10분이 넘는 긴 호흡의 곡을 관객들이 끝까지 집중해서 들을 수 있도록 음악적 소재들의 적절한 변화와 반복, 긴장과 이완, 소재끼리의 성격대조나 새로운 소재의 도입을 통한 시점 변화 등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것에 주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다만 12간지는 각 악장이 2분 내외로 짧은데다 이야기가 곁들여졌기 때문에 집중력을 위해 이러한 작업방식을 택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소재의 배치보다는 음향과 표현위주로 아이들이 평소에 들어보지 못한 신기한 현대주법이나 약음기 소리들을 동원하여 상상을 소리로 재현하고 효과음 또한 풍성하게 만드는 것에 주력하였습니다. 집중력이란 음향의 배치와 관계가 있으며 꼭 선율이 인지되어야만 집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어린이 관객은 음향 위주의 소, 용, 말 등의 악장을 흥미롭게 여기는 반면 성인 관객의 경우 선율이 인지되는 ‘양’ 과 같은 악장을 선호했다는 점입니다. 수년의 교육과 경험을 통해 ‘음악은 이러한 것이다‘ 라는 관념이 생긴 성인 보다, 아직 경험이 많이 없는 어린이들이 선율이 없는 음악을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민희 : 제가 질문 드린 ‘대중을 위한 작곡전략’이란 표현은, 작곡가님이 말씀하신 ‘비 음악인 관객’을 염두에 두고 추구한 ‘작곡전략’과 동일합니다. ‘대중’이란 말이 ‘대중영합적’이라거나 ‘대중음악적’이라기 보다는, ‘현대음악에 지식이 없는 폭넓은 계층의 사람들’ 이라는 맥락에서 사용하였습니다. 한가지 더 궁금한 점은, 마지막 부분에 인용하신 ‘어린아이들이 소, 용, 말 이라는 악장을 흥미롭게 여기는 반면, 성인관객은 양 악장을 선호했다’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만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요? 어떤 상황에서 어떤 표본집단을 통해 의견을 얻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최한별 : “보통 ‘대중적’이라 칭해지는 작품들은 ‘선율’이 반복된다거나, ‘리듬’이 단순하다거나, 특별한 모티브가 반복되면서 전체 곡을 엮어나가거나 하는 방편을 사용합니다.”라는 대목을 저는 그것이 바로 ‘대중영합적‘이거나 ‘대중음악적‘인 음악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게 있어서의 ’대중‘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싸인회에 참여한 어린이들에게 가장 좋았던 악장을 물어보거나 며칠에 걸쳐 지인들과 그 자녀들을 통해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민희 : ‘12간지’ 이야기는 짧고 단순한 텍스트를 가지고 있으며 동물들이 나열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작곡가가 특정 동물들을 연결해서 그룹을 짓거나, 나열된 동물 중에서도 더 중요한 동물이 있는 것 같습니다. 12동물을 운용하는데 있어 곡 전체를 관통하는 큰 구조가 있는지요?

 

최한별 : 특별히 없습니다. 텍스트의 내용과 분량, 제가 주관적으로 상상한 동물의 이미지에 따라 편성과 연주시간이 달라지게 되었는데, 편성이 크거나 연주시간이 길다고 해서 꼭 더 중요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 청중들에게 있어서도 저마다 더 중요한 동물, 더 인상적인 동물이 각각 달랐을 것이고 또 그랬기를 바랍니다.

 

이민희 : ‘양’ 악장에서 음향이 갑자기 전환되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전 악장들이 ‘날카롭고’ 긴장을 유발하는 음향 위주로 되어 있고 뚜렷한 선율이 없다면, ‘양’ 악장에서는 이전의 긴장이 릴렉스되고 처음으로 선율이 인지되는 느낌이 듭니다. 주로 음악의 앞 쪽 악장들에서 (동물의 울음소리를 묘사하거나 동작을 묘사하는 것과는 별개로) ‘날카로운 음향들’을 사용한 이유가 있나요? 예를 들어 ‘토끼’ 악장에서는 악기들이 글릿산도를 주고받으며 ‘토끼의 동작’을 흉내냅니다. 그러나 ‘토끼 동작 묘사’와는 별개로, 이런 글릿산도들이 조합된 수직적인 울림은 날카로운 소리를 냅니다.

 

최한별 : ‘날카로운 음향‘이란 청중들이 대부분 현대주법을 들었을 때 그렇게 인식하는 듯 합니다. 특별히 날카로운 음향을 사용 했다기보다 쥐, 고양이, 토끼 등 작고 날렵한 동물들을 묘사할 때는 가늘면서도 힘 있는 소리를 사용하였고 소, 호랑이, 용과 같은 동물들은 웅장하면서도 위험하거나 신비로운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날카롭거나 긴장감 있는 음향들이 유발된 것 같습니다. 물론 ‘달리기 시합‘ 이라는 주제 자체가 긴장감을 자아내기도 하지요. ’양‘ 악장은 무리지어 있는 양떼를 묘사하다보니 유일하게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악장이 되었습니다. 사실 목가적인 분위기를 꼭 ’선율‘과 ’화음‘으로만 표현해야 할 이유는 없었는데 이 부분은 제게 있어 앞으로 생각해보아야 할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이민희 : 작품의 마지막 악장 ‘임금님의 상’ 부분에는 각각의 동물 모티브가 반복됩니다. 여타 다른 모음곡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인 것 같은데, 작품의 마지막 악장을 이와 같은 형태로 구상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최한별 : 어린이들에게 각 동물들의 테마를 다시 한 번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마치 모든 동물들이 연극을 마치고 커튼콜을 하는 것처럼 한 번씩 등장시켜 주는 거지요.^^ 전통적인 형식에 구애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아이디어였습니다.

 

이민희 : 긴 시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