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글로벌메뉴



칼럼

[畵/音.zine vol.9] 나의 인생 음악, 삶 속의 음악
송주호 / 2024-03-01 / HIT : 367

나의 인생 음악, 삶 속의 음악

송주호 (음악칼럼니스트)

 

  ‘트리플 괴짜’의 탄생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태어나 무턱대고 하나의 삶을 살아갈 의무가 주어졌다. 할 수 없이 하루하루를 어찌어찌 버텨내 어제까지 살아냈고, 오늘을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내일도 그렇게 지내게 되겠지. 짧은 인생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사는 것을 보면 참 이상하기도 하다. 예측할 수 없는 소멸 이후가 두려워 예측 가능한 생존을 선택한 결과가 아닐까? 그래서 사람은 오래 살기를 원하나 보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았던 것도 이의 연장일 게다. 인간은 이렇게 오랜 역사를 통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고민했지만,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의 그림 ‘맹인들을 이끄는 맹인’(De parabel der blinden: 1568)과 다를 바가 없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유한한 존재가 무한을 꿈꾸는 이 가증스러운 오만함!

 

  그러면서도 인류가 오늘날까지 버티고 또 버틴 것은 다름 아닌 오늘의 삶을 즐겁게 만들고자 하는 소소한 노력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 ‘문화’일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신을 찾고, 그림을 그리며, 형태를 만들고, 글을 쓰며, 음악을 만드나 보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하고, 그림을 보며, 형태를 만지고, 글을 읽으며, 음악을 듣나 보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 문화생활의 이유를 물어보면 다들 ‘풍요로운 삶을 위해’라고 (영혼 없이) 말하곤 한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문화의 산물들은 즐거움을 넘어 삶을 이끄는 리더가 되었다. 모두가 맹인일 때 한쪽 눈이라도 뜬 사람들, 혹은 드물게 양쪽 눈을 뜬 사람들이 남긴 놀랍고도 진귀한 유산! 오늘의 우리는 그저 이들을 그 가치와 비교 할 수도 없는 적은 부담으로 즐기고 있음을 언제나 감사히 여겨야 한다.

 

  그래서 잠시 돌아보기로 했다. 지금 내가 누리는 삶의 즐거움을 준 음악들, 아니, 오히려 나의 삶을 지금의 모습으로 이끈 음악들. 그러면 일반인 중에서 클래식을 좋아하는 괴짜, 클래식 애호가 중에서 현대음악을 좋아하는 괴짜, 현대음악 중에서 아방가르드를 좋아하는 괴짜, 이 ‘트리플 괴짜’를 달성하게 된 이유가 선명하게 드러나리라 기대하며.

 

98801bd556078b74abfedf194019d63d_1707639
De parabel der blinden / Pieter Bruegel​, 1568

 

   카세트테이프의 추억

 

  내가 처음으로 클래식 음악을 접한 때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형은 베토벤의 교향곡을 듣고 감상문을 써오라는 숙제 탓에, 유명한 <운명 교향곡>의 카세트테이프를 사려고 집 근처의 작은 레코드 가게에 방문했다. 하지만 <운명 교향곡>은 없었고, 대신 <영웅 교향곡>을 데려와야 했다. 이날 방에서 함께 이 음악을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있다. 매우 충격적이었다! 동네 뒷산에서만 놀다가 처음으로 태산을 본 듯한 압도감! 이후 나의 용돈은 클래식 음악 앨범으로 변환되기 시작했고, 35년이 넘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영웅 교향곡> 테이프는 지금도 장에 고이 꽂혀있다.

 

  먼저 음악 교과서에 소개된 유명한 클래식 고전들부터 접근했다. 그러다 작곡가는 잘 알아도 낯선 작품에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한 작곡가가 유명한 몇 곡만 작곡했을 리는 없을 테니. 그렇게 듣게 된 생상스의 <오르간 교향곡>은 중학생 시절 최애 음악이 되었다.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확장된 음향, 밤하늘에 수없이 뜬 별을 바라보는 것 같은 서정성! <동물의 사육제>가 생상스의 대표작이라고 말해서는 절대 안 된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으며, 넘어야 할 담장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레코드점에 가보면 낯선 작곡가 이름도 어렵지 않게 만나곤 했다. 궁금하기는 하지만 중학생의 적은 용돈으로 잘 모르는 작곡가의 작품에 선뜻 손을 내밀기는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당시 종로에 있던 대규모 서점들로 진출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다. 국내에서 손꼽는 규모의 서점이자, 상당히 넓은 음반까지 보유하고 있는 대형 서점들! 특히 당시 종각역 4번 출구에 있던 종로서적은 음악책 코너가 음반 코너 옆에 있어서, 음반 코너에서 낯선 이름을 발견하면 곧바로 책에서 찾아보곤 했다. 그렇게 해서 용기를 내어 데려온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 아무리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도 눈, 입, 팔, 다리는 다른 일을 한만도 한데, 이 곡을 들을 때면 오롯이 음악에 귀를 기울였던 기억이 난다. 온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극도의 진지함, 억눌렀던 감정을 끄집어내는 집중된 정서, 삶의 의욕을 샘솟게 하는 강렬한 리듬!

 

  그 순간 결심했다. 이제는 오히려 낯선 작곡가들의 음악을 들어야겠다! 사실 CD로 들었더라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겠지만, 당시 나는 CD 플레이어가 없었기에 테이프로 시선을 고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테이프는 구할 수 있는 범위가 넓지 않고 가격이 저렴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그렇게 듣게 되었던 곡 중에 가장 충격을 받은 곡 중 하나는 닐센의 <불멸 교향곡>이었다. 딱히 주제 선율이라고 할 수 없는 단편적인 제스처들이 번갈아 등장하는, 그리고 어떤 조성도 규정하기도 어려운, 이 독특한 음악은 호기심을 극도로 자극했다.

  

98801bd556078b74abfedf194019d63d_1707640
10대 시절에 구입한 카세트테이프

  호기심! 그래, 이것이 바로 나를 이끈 동력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고등학생 때에 금단(?)의 열매에 손을 대고 말았다. 바로 메시앙의 <튀랑갈릴라 교향곡>! 정명훈이 바스티유 오페라 오케스트라에 부임하면서 내놓은 첫 음반으로 화제가 되었던 앨범. 사실 이 앨범에 손을 뻗기는 더 큰 용기가 필요했는데, 아직 “살아있는” 작곡가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CD와 LP뿐만 아니라 테이프로도 발매가 되었기에, 다행히 뛰어넘을 수준의 담장이었다. 그렇게 맛본 담장 밖의 열매는 그때까지 맛보지 못한 짜릿함이 있었다. 다른 행성에서 온 듯한 음향, 매 순간 숨 막히는 전율, 무수한 시간 잠들어있던 생명의 근원을 깨우는 듯한 고동! 이 음악을 함께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에 앞으로의 외로운 길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대수랴? 내 앞에 멋진 문화의 리더들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만이 있을 뿐.

 

  한국 작곡가의 작품을 들은 것도 이 즈음이었다. 종종 가요 프로그램에서 ‘작곡: ◯◯◯’라는 표기를 본 적이 있었다. 한국에도 당연히 작곡가가 있겠지. 그런데 클래식 작곡가는? 음대마다 작곡과가 있지 않던가? 한국 작곡가의 음악은 음반으로, 심지어 테이프로는 도저히 접할 수 없는 저세상 영역이었다. 그런데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발매한 테이프가 딱 하나 있었으니, 바로 정윤주의 <가야금 협주곡>! A면을 빨리 돌리고 B면에 수록되어있던 이 음악의 첫 음을 듣는 순간,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처럼 황홀함과 두려움이 공존했다. 한국 작곡가도 신기(?)한데, 가야금과 관현악단이라니! 두꺼운 벽지로 덮여 있어 아무도 몰랐던 문을 발견하고 연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한계가 빨리 찾아왔다. 카세트테이프로는 ‘새로운’ 음악을 듣고 싶은 호기심을 달랠 수 없었다. 우선 LP로 눈길을 돌렸다. 고1 때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을 시작으로, 차이콥스키 <만프레드 교향곡>, 보로딘 <교향곡 2번> 등 부푼 마음을 안고 들었던 기억은 아마도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LP는 가격을 감당하기도 어려웠고, 크기가 커서 부모님의 눈의 피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TV에서 잠깐 듣고는 가슴에 새겨진 곡,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거부할 수 없는 음압으로 숨이 막히는 순간까지 몰고 가는 거대한 크레셴도! 이 곡은 CD로만 구할 수 있기에, CD를 사서 친구에서 테이프로 더빙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 입학 선물로 (너무나 소박하게도!) CD 플레이어를 내걸었다.

 

  세계의 확장

 

  이제 대학생이 되었다. 이젠 테이프의 제한에서 해방되었다. 그리고 (그제야) 내 방이 생겨서 원하는 시간에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아르바이트도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재력(?)을 겸비했다. 한마디로, 모든 빗장이 풀렸다! 20세기 소리 예술의 문이 활짝 열렸고, 심지어 음악회도 마음껏 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대학 시절에 연애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이유가 이것일지도?) 이후부터는 모든 순간이 새로운 음악들로 채워졌고, 내 방은 빠르게 좁아졌다. 그리고 감상에서 실전으로 확대했다. 대학 관현악단에 가입하여 첼로도 배웠고, 동호회에 가입하여 베베른 <세 개의 작품>, 힌데미트 <무반주 첼로 소나타>, 메시앙 <예수의 영원성에 대한 찬가>, 브리튼 <첼로 모음곡 2번>, 베리오 <세퀜차 XIV>, 윤이상 <활주> 등을 연주했다. 감상회도 수차례 진행하며 여러 애호가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글! 글은 나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복잡한 스키마를 요구하는 다방면의 지식과 오랜 기간 단련된 솜씨가 필요한 글. 하지만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 동호회에서 감상회를 진행하는 나를 눈여겨 본 월간 『Choir & Organ』의 편집장이 내게 글을 의뢰했다. 일종의 길거리 캐스팅이었다. 그렇게 2006년 9월호에 리게티 서거 소식에 대한 번역과 여러 음반 리뷰로 데뷔했고, 12월호에 풀렝크의 <네 개의 크리스마스 모테트>로 내 생애의 첫 음악 칼럼을 기고했다. 이후 펜데레츠키 <슬픈 성모>, 리게티 <볼루미나>, 쇤베르크 <모세와 아론>, 메시앙 <영광된 몸>으로 이어지며, 현대음악 전문가로 알려지는 (혹은 그렇게 한정 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즈음에 음악회 프로그램 노트도 쓰기 시작했다. 현대음악뿐만 아니라 합창단, 독주회, 실내악단 등 장르와 규모에 불문하고 공부하고 연구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내가 여태껏 음악을 들은 무수한 시간과 경험에 체계적인 지식을 얹는 과정이었다. 그러한 중에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으니, 바로 화음챔버오케스트라와의 조우였다! 2010년 6월 11일 지금은 공연을 하지 않는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호암아트홀 25주년 기념 쳄버뮤직 시리즈’ 공연으로, 여기서 연주되었던 브리튼의 <프랑크 브릿지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백영은의 <‘내일의 기억’ 주제가 있는 파사칼리아>, 그리고 슈베르트의 <사중주곡 ‘죽음과 소녀’>의 말러 편곡 버전의 해설을 썼다. 백영은 선생님의 지난 작품들을 살펴보고 메일 인터뷰를 진행하며 정성껏 곡에 대한 해설과 인상을 적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다.

 

  놀랍고도 진귀한

 

  그러다 2011년 3월 17일, ‘호암아트홀 앙상블 페스티벌’ 공연에서 이메일과 무대에서만 뵙던 박상연 감독님께서 직접 로비로 나오셔서 맞아주셨다. 내가 썼던 해설을 잘 보았다는 말씀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화음에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로 ‘쇼스타코비치 실내교향곡 시리즈’를 시작한 2012년 8월 18일 정기연주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뵙지 못했는데, 아마도 외부 초청 공연이 많았고, 내부적으로도 조직 개편과 이사회 구성 등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2014년부터 4월 11일 두 번째 ‘쇼스타코비치 실내교향곡 시리즈’ 정기연주회에 재회했고, 이후 오늘날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 덕분에 이후에 나의 삶에는 한국 작곡가의 작품들이 크게 자리하기 시작했다. 작곡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악보를 분석하며 소리를 청취하는 활동은 이제 익숙한 과정이 되었지만, 여전히 흥미롭고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한다그리고 현악 앙상블 작품도 챙겨 들었다. 현악 앙상블을 위한 작품은 18세기까지는 많이 있었지만 19세기에는 오히려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가 20세기 이후에 다시 많아졌는데, 음색의 다양성을 오히려 배제하고 오직 음 자체의 구조로 표현하고자 하는 경향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다른 관점으로 보자면, 이는 같은 계열의 음색으로 음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19세기의 노력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무대에 오른 베르크의 <서정 모음곡>과 버르토크 <디베르티멘토>, 글래스 <교향곡 3번>, 윤이상 <교착적 음향>, 존 애덤스 <셰이커 룹스>, 리게티 <분지들>, 러드윅 <잃어버린 계절>, 펜데레츠키 <신포니에타>, 라우타바라 <핀란드 신화>, 하우어 <12음 연주> 등을 비롯한 수많은 연주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 짜릿한 순간들이다.

 

  물론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현대음악만 연주하는 단체가 아니기에 음악사의 넓은 범위를 섭렵했는데, 이때 또한 ‘놀랍고도 진귀한’ 작품들을 프로그램에 올렸다. 브루크너의 <실내교향곡>(현악오중주 편곡), 프란츠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피아노 사중주 편곡), 하이든의 <장송 교향곡>,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현악 편곡), 쇤베르크의 <실내교향곡 2번>, 본 윌리엄스의 <토마스 탈리스 환상곡> 등은 다른 공연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지금도 다시 보고 싶은 순간들이다.

 

98801bd556078b74abfedf194019d63d_1707641
현악 작품이 수록된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음반

 

  여러분은?

 

  창문을 피하여 한 방의 모든 벽을 빼곡히 메운 음반들, 그리고 방을 가로질러 놓인 책들을 보며, 이게 뭣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난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는 어려워도, ‘난 뭐 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는 이제 서서히 답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아직도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프로그램에 올릴 곡들이 많다.

 

  언젠가 여유를 내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음악들, 삶의 어떠한 순간에 집중했던 음악들, 삶의 방향을 바꿔놓았던 음악들 혹은 그러한 음반들을 다시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분은 어떠한가? 아마도 그 음악들이 말해주지 않을까 싶다, 독자분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畵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