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영화의 음악들
이민희
(음악평론가/음악학박사)
영사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검고 흰 시각적 이미지. 흑백의 환영이 어지러이 춤추고, 관객은 ‘소리 나지 않는 영상’을 꿈을 꾸듯 바라보는 것. 아마도 영화사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무성영화’(Silent Film)라는 단어를 들으면 상상해 볼 법한 풍경이다. 하지만 1895년 뤼미에르 형제(Auguste and Louis Lumière)가 파리의 한 카페에서 진행했던 첫 번째 영화 상연회에서, 공간을 가득 채운 것은 한 피아니스트의 ‘피아노 반주’였다. 그리고 이후 등장한 거의 모든 무성 영화들은 라이브 악기 반주와 함께 관객을 만났다. 그렇다면 왜 ‘Silent’인가? 이는 움직이는 이미지를 기록한 필름에 ‘소리’가 따로 없었음을 의미한다. 즉 그 당시에는 소리와 이미지를 동시에 기록하고 재생하는 기술이 상용화되지 않았다. 대신 음악가들은 그 비어있는 소리의 빈 자리를 현장에서 음악으로 채우며 무성영화의 한 시대를 풍미했다.
가볍게, 술술 흘러갔던 반주 음악
곧 무성 영화의 역사가 시작되고, 영화 상연 현장에는 극장에 소속된 피아니스트가 영화를 반주하는 관행이 널리 퍼지게 된다. 무명의 피아니스트가 집어 넣는 영민한 즉흥 음악에 영화가 의지하는 것이다. 피아니스트들은 당대의 여러 대중적 극장에서 자주 연주했던 반주 음악들을 영화에도 똑같이 덧붙이곤 했으며, 유명한 대중가요를 편곡해 집어넣었다. 어떤 피아니스트는 베토벤 등의 잘 알려진 고전음악 레퍼토리를 토막으로 잘라와 활용했으며, 드물게는 자신이 작곡한 패시지를 활용했다. 이러한 풍경은 영화 제작자들이 음악홀이나 극장 등 대중이 음악적 여흥을 즐기던 공간을 영화 상연장소로 선택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를테면 보드빌을 연주하던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순간, 관객은 음악 반주를 자연스럽게 떠올렸을 것이다. 물론 음악이 연주될 수 없는 곳에서 선보여진 영화도 존재했으며, 각각의 극장들은 갖추고 있었던 악단의 규모나 홀의 크기가 판이했다. 같은 영화라 할지라도 오케스트라로 반주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었는가 하면, 또 다른 곳에서는 피아노 한 대의 반주만 덧붙여지기도 했다.

무성영화를 반주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출처 : https://silentfilmmusic.com/presentations)
다만 영화의 인기가 점차 많아질수록 영화 제작사들은 연주자들이 마음대로 음악을 입히는 이런 행태에 불만을 표하기 시작했다. 음악과 영상의 감정선이 맞지 않아 엉뚱한 느낌을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유독 많이 선호되던 음악 스타일 중 하나는 ‘랙타임’ 이었는데, 화면 안에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임에도 피아니스트들은 이 여유롭고 감미로운 패시지를 계속해서 연주해 비판을 받았다. 따라서 제작자들은 영화 속에 특정한 감정이나 상황이 등장할 때 특정 유형의 음악을 연주하라는 지시를 덧붙인 음악 목록을 큐시트와 함께 제시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가장 유명한 패시지로서 ‘미스테리한 피치카토’(Mysterioso Pizzicato)가 있다. 단조의 화성을 펼친화음으로, 그리고 현악의 피치카토풍으로 연주하는 것으로서, 무성영화 속 긴장의 감정을 음악적으로 보완해주는 장치다. 한편 지극히 서정적이고 감상적인, 선율이 유독 아름다운 낭만적 악곡도 발견된다. 대표적으로 <마음과 꽃>(Hearts and Flowers. 1893)이란 음악은 20세기 초 수많은 무성영화의 센티멘탈한 반주로 활용되었다.
한편의 무성영화를 위해 작곡된, 맞춤 음악의 탄생
1907년 프랑스의 영화인들은 종합예술의 형태이기도 했던 ‘영화’라는 매체를 조금 더 예술적으로 만들기를 원했다. 그리고 오페라나 무대극에서 했던 것처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두 모아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 이런 분위기 안에서 샤를 르 바르지(Charles Le Bargy)와 앙드레 칼메트(André Calmettes)는 영화 <기즈공작의 암살>(L'Assassinat du duc de Guise, 1908)을 공동으로 연출하며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생상스(Camille Saint-Saëns, 1835–1921)에게 영화음악을 부탁한다. 생상스는 당시 73세의 노장으로 수많은 오페라와 발레, 부수음악을 쓴 이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기즈공작의 암살>은 15분에 불과한 작품이었지만, 생상스는 피아노와 현악기 등이 포함된 오케스트라 편성의 음악을 작곡함으로써 영화 역사상 가장 이른 오리지널 스코어의 작곡가 중 한 명이 된다.

영화 기즈공작의 암살 중 (출처 : https://www.imdb.com/fr/title/tt0000637)
영화를 위한 단 하나의 음악이란 모토는 1915년에 이르러 그 규모가 확장된다. 감독 그리피스(D. W. Griffith, 1875-1948)가 연출한 영화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이 등장한 것이다. 이 작품은 전체 러닝타임이 3시간에 이르는 대작으로, 작곡가인 조지프 칼 브레일(Joseph Carl Breil, 1870–1926)이 음악을 담당했다. <국가의 탄생>은 영화 최초로 오케스트라 악보와 함께 선보여진 미국 장편영화라는 기록을 갖고 있는데, 작품 안에는 작곡가의 오리지널 창작곡과 함께 여러 기존의 곡들이 편곡되어 삽입되었다. 베버의 <마탄의 사수>, 주페의 <경기병 서곡>, 베토벤의 <교향곡 6번> 등 기존의 유명한 클래식은 물론이고 유명한 대중음악의 선율들, 더 나아가 바그너의 음악극 <발퀴레>의 한 장면에 등장하는 음악을 통째로 가져와 독특한 효과를 만든 것이다. 이렇게 다채로운 음악적 요소들은 3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작품에 역동성을 더하며 고유의 영화색을 만드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후 다른 영화 제작자들도 자신의 영화에 맞춤으로 제작된 음악을 원하게 되었고, 결국 피아니스트들이나 악단의 즉흥연주나 짜깁기보다는 ‘스코어링된’ 음악을 동반시키는 것이 대형 영화의 작업 관행으로 굳어진다. 이후 영화음악의 발달이 빨라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걸작 무성영화와 함께한 음악들
영화의 세계에서 불문율처럼 전해지는 격언이 있다면 “위대한 영화에는 언제나 위대한 음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성영화 시절에도 마찬가지이다. 영화 공개 당시에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후에 다시 발굴되어 SF영화의 원형이자 역작으로 평가받는 프리츠 랑(Fritz Lang, 1890-1976) 감독의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는 독일의 표현주의 무성영화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다. 화려한 세트와 긴 촬영기간, 그리고 수백명의 인원을 동원했던 이 작품에는 작곡가 후페르츠(Gottfried Huppertz, 1887–1937)가 오리지널 음악을 담당해 인상적인 음악을 들려주었다. 후페르츠는 바그너 스타일의 후기낭만주의 스타일과 모더니즘 스타일을 적절히 구사할 줄 알았는데, <메트로폴리스>가 디스토피아의 미래도시를 그리는 만큼 이를 음악으로 효과적으로 묘사했다. 영화 안에는 여전히 <라 마르세예즈>나 <디에스 이레>와 같은 잘 알려진 선율도 등장했지만, 도시의 모습을 모더니즘적인 무드로 묘사하는 부분이 공존한다.

영화 메트로폴리스 중 (출처 : https://www.imdb.com/title/tt0017136)
에이젠슈타인(Sergei Eisenstein, 1898–1948) 감독의 걸작 <전함 포템킨>(Battleship Potemkin, 1925)은 혁명과 살육, 그리고 대중의 희생이라는 굵직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룬 작품이다. ‘오데사의 계단’ 씬이 유명한 작품으로서, 군대의 총칼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이어 유모차가 계단을 굴러떨어지는 장면을 교차 편집함으로써 평단과 관객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 위대한 작품에 음악을 붙인 작곡가는 비엔나 태생의 에드문트 마이젤(Edmund Meisel, 1894-1930)로, 브레히트의 희곡에 부수음악을 썼던 인물이다. 마이젤은 <전함 포템킨>에서 장면 단위로 음악을 나누어 영화와 밀착된 오케스트레이션을 만들어냈다. 또한 모더니즘적인 음악기법들과 함께 재즈 등의 요소 등을 다채롭게 활용했으며, 음악적으로 호소력이 있는 스코어링을 들려주었다. 이후 장면 단위로 맞추어 진행하는 음악 작곡은 영화음악계에서 누구나 사용하는 일반적인 어법이 된다.
너무도 잘 알려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 1906–1975)도 무성영화의 음악을 작곡했다. 1929년 개봉한 <새로운 바빌론>(The New Babylon)이라는 영화는 쇼스타코비치가 최초로 작곡한 오리지널 스코어 작품이다. 이 영화는 큰 흥행에는 실패했으며 영화의 장면 상당부분이 검열로 삭제되어 원작대로 상연되는 기회는 드물었다. 그럼에도 당대의 새로운 예술 형식에 유능한 작곡가들이 손을 뻗었음을 알게 하는 예시이다.
고요히 잠든 무성영화의 음악들
1927년 10월 6일 뉴욕의 워너 극장에서 관객을 만난 영화 <재즈 싱어>(The Jazz Singer)는 별도의 음반에 소리를 기록해 배우의 ‘목소리’를 화면과 일치시키려는 시도를 한 작품이다. 이후 영화산업은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영화 속 영상과 소리를 동기화시키는 방법을 널리 사용하게 된다. 이런 흐름 안에서 1933년, 막스 스타이너(Max Steiner, 1888-1971)는 바그너식 라이트모티프를 적극 활용한 장편영화 <킹콩>으로 새로운 영화음악의 시대를 예고했으며, 곧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등의 후속작을 성공시킨다. 이어 알프레드 뉴먼(Alfred Newman, 1900–1970), 에리히 볼프강 콘골트(Erich Wolfgang Korngold, 1897–1957) 등의 걸출한 작곡가들이 나타나며 할리우드 심포닉 영화음악의 전성기를 이끈다.
생각해보면 말이 없는 공연예술들, 이를테면 팬터마임이나, 마술, 무용, 피겨 스케이팅 등은 언제나 음악을 동반해 왔다. 시간축을 갖고 움직이는 모든 예술 형식은 거기에 ‘시간으로서의’ 소리를, 그리고 음악을 결합시켜 왔던 것이다. 영화 역시 유령의 움직임으로 착각할 수도 있었을 영사기 속 ‘움직이는 환영들’을 음악과 함께 제시함으로써 대중들에게 ‘살아있는 무언가’로 다가갈 수 있었다.
유성영화가 눈부시게 발전해 21세기에 이른 현재, 이제 무성영화 시절의 몇몇 역작들은 복원되어 재상연되기도 하며, 무성영화 시기의 여러 기법들은 고요히 전승되거나 그 아우라를 보존한 채 조용히 잠들어 있다. 작곡가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1937-)는 1994년 장 콕토(Jean Cocteau, 1889-1963)의 1946년작 흑백 유성영화 <미녀와 야수>를 가져와 목소리와 사운드트랙을 지우고, 자신이 새롭게 만든 음악을 삽입해 라이브로 연주했다. 이 역시 변화한 기술과 매체 위에서 무성영화적 영감을 활용해 다매체작품을 만든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대는 흐르고 기술은 더 많이 변화하고 있지만, 각각의 기술이 주었던 영감과 고유의 예술적 색깔은 다양한 방식으로 존속되는 중이다. [畵音]

필립 글래스 미녀와 야수 공연 현장 (출처 : https://www.midnighteast.com/mag/?p=488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