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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화음 평론상 입상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전윤혜 / 2015-08-27 / HIT : 1241

<2015 화음 평론상 입상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전윤혜-

 

 

 

절친한 이의 부고를 접한다면, 당신은 그를 어떻게 추모할 것인가. 수화 김환기(1913-1974)는 그가 아꼈던 친구이자 시인이었던 김광섭의 비보를 접하고 그의 시로 그림을 그렸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저녁에」)

 

삼만 리 떨어진 땅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지낸 김환기의 만년, 뉴욕 시기. 타국에서 외로이 접한 슬픔을 점점이 풀어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이 시기 그의 대표작이다.

그리움의 반복으로 점철된 푸른 색조는 감상자의 마음을 먹먹하게 채운다(김광섭의 부고는 후에 오보로 밝혀졌다.). 화음쳄버오케스트라도 지난해와 올해 그들의 오랜 음악지기를 떠나보냈다. 보낸 이들을 떠올리며 선택한 레퍼토리들과 전곡시리즈의 세 번째 쇼스타코비치. 그들은 어떻게 이 음악들을 묶고 풀어 청중과 만나게했을까.

 

 

민족과의 만남

덴마크의 닐센과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그리고 체코의 드보르작. 이들은 낭만 후기 각 민족의 음악어법으로 작품세계를 펼쳤던 민족주의 작곡가들이다. 그 주제가 무엇이든, 세 사람의 음악에는 그들이 나고 자랐던 사회와 문화가 녹아있다. 닐센의 <어느 젊은 예술가의 관 앞에서>는 제목과 같이 젊은 예술가(화가 올루프 하르트만)를 기리며 만든 곡이다. 김환기가 김광섭을 그림으로 기렸듯, 닐센은 음악으로 그를 기렸다. 창창한 앞날을 두고 떠난 예술가는 모두에게 슬픔을 안긴다. 화음쳄버오케스트라는 이 감정을 닐센 특유의 서정적 무거움으로 표현했다. 고요한 가운데 울리는 B♭-A-B♮-B♭의 도입은 청중의 귀를 집중케 했다. 현이기 때문에 더 미묘했던 음정들은 해결될 듯 하면서 확실히 해결되지 않은 채 긴장을 이끌었고, 후반 유니즌에서 그 긴장 끝의 숙연함을 청중들과 함께 했다.

 

시벨리우스의 즉흥곡은 자신의 피아노 즉흥곡 두 곡을 하나의 현악합주곡으로 편곡한 곡이다. 덕분에 건반 위를 오가던 원곡의 서정성이 현으로 극대화됐다. 이번 연주는 스칸디나비아의 광활한 자연, 그리고 그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민족성을 어두우면서도 장대한 음색으로 풀어냈다. 아르페지오를 과감히 생략하고 현이 가진 울림에 집중한 원곡의 5번 부분은 닐센의 곡과 물 흐르듯 연결되었고, 원곡 6번의 단편적인 왼손 3박은 겹겹이 쌓인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입어 풍부한 애수를 띠었다. 마치 20세기 초 배경의 치정멜로 속에 흐르는 음악처럼 우울함을 머금은 3박. 그것은 지난날을 돌아보게 하는 마법과도 같았다.

 

    화음쳄버오케스트라의 전 리더이자 널리 알려진 솔리스트였던 배익환. “솔리스트로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실내악과 강의에서 얻은 경험 덕분(월간 ‘객석’ 1999년 2월, 2001년 3월 인터뷰 참조.)”이라고 겸손히 이야기하곤 했던 그가 지난 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만 빛나려 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화음쳄버오케스트라가 튼튼한 토양 위에 설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낮은 자세로 묵직하게 단원들을 이끌었기 때문이리라. 단원들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호흡으로 이어나간 두 곡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청중들에게 애도의 잔향을 남겼다.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다른 슬라브 무곡보다 조금 느린 템포의 16번은 다소 숙연했던 분위기를 전환하면서도 어색하지 않게 레퍼토리의 앞뒤를 이었다. 닐센의 곡에서 공간감을 주는데 큰 역할을 했던 더블베이스가 여기서도 빛났다. 그러나 초반의 첼로는 더블베이스와 잘 섞이지 않았고, 이후 한 옥타브 간격의 바이올린 선율도 어긋났다. 보다 밝고 리듬감 있는 곡이어서 긴장이 풀린 걸까. 옥타브의 깨끗한 공간감보다 이질감이 먼저 느껴졌다. 금관악기와 타악기가 없어 음정에 더욱 민감한 쳄버오케스트라 특성상, 연주자들은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초반의 불안함은 김상진의 탁월함이 커버했다. 그의 카리스마 있는 피치카토는 좌중을 휘어잡았고, 탄력적인 패시지는 슬라브 리듬만의 유머로 매끄럽게 이어졌다. 이 유머에 점을 찍은 것이 바로 예술감독 박상연의 글로켄슈필이다. 관이 없는 허전함이 작은 타악기 하나로 채워졌다. 적소에 그의 글로켄슈필이 등장하자 단원들은 서로 미소 지었는데(그의 타악 실력은 앙코르의 스네어 연주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이러한 모션 하나하나가 화음쳄버오케스트라의 결속력과 가족애를 느끼게 했다.

 

   앞 두 곡이 북유럽의 정서와 추모의 감정을 전달했다면, 드보르작의 곡은 슬라브 음악만의 쾌활함으로 김성기의 작품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고, 나아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 숨겨진 동구권 음악의 특성과도 접점을 이루었다.

 

    작곡가의 음악 속에 그 민족의 음악 어법이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누구나 흉내는 낼 수 있다. 그러나 억지로 모티브를 끌어온다고 해도 특유의 정서를 오롯이 살릴 수는 없다. 마치 서울 사람이 흉내 내는 경상도 사투리가 어색한 것처럼. 세 곡 모두 오랜 시간 그들에게 체화된 민족 문화가 배어있었다. 그들이 나고 자라며 함께 해온 음악은 자체로써 훌륭한 예술이자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자리에서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의 사회를 ‘음악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정서와의 만남

    김환기의 점화 연작은 외적인 강렬함이 크다. 작품의 압도적인 크기와 선명한 색조, 점이 주는 세밀함과 율동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때문에 그의 작품을 평면으로만 본다면, 우선은 시각적인 감상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에 제시된 김환기의 작품은 <27-Ⅰ-70 #142>라는 일련의 작품번호만을 가진다. 제목이 없는 절대음악처럼. 표제와 같은 힌트가 없기 때문에 그가 ‘어떤 모티브로 연작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왜 이런 표현을 했을까’하는 물음에 대한 해소는 부차적인 활동이 된다.

 

    짧은 7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김환기의 작품 속에>. 작곡가 김성기는 악장별로 작가의 내면적 세계, 작품에 대한 사랑과 대립, 열정, 작품 탄생에 대한 흥과 멋 등의 명쾌한 부제를 달았다. 부제를 따라 감상하다 보면 작품의 외적인 아름다움과 내적인 치열함을 함께 느끼게 된다. ‘시각적 감상’이라는 원초적 활동과 작품 뒤에 숨겨진 ‘궁금증을 해소’하는 부차적 활동을 도시에 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청중은 시각으로 김환기의 작품을 보고 청각으로 김성기의 음악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작품 세계를 그려보는 공감각적 예술을 경험하게 된다. 김환기가 점화를 결심하기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걸렸다. ‘종일 그림을 그리다. 점화가 성공할 것 같다(1965)’, ‘나는 점, 점들이 모여 형태를 상징하는 그런 것들을 시도하다. 이런 걸 계속해 보자(1968)’, ‘...선인가? 점인가? 선보다는 점이 개성적인 것 같다(1968)’3). 1악장, 더블베이스의 스타카토가 잡은 무게 중심 위에 울리는 짧은 패시지의 목관이 점점이 고뇌한 김환기의 내면을 상상케 한다.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가지 생각하며 찍어가는 점’,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갔을까, 내가 찍

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4). 윤동주가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을 담았던것처럼, 그도 점 하나에 모든 것을 담았다. 이 애정을 다해 찍은 점들의 향연을 멜로딕한 2악장에서함께 느낄 수 있었다. 2악장의 또 다른 변주인 4악장 속에는 우리의 정서가 담겨있는데, 이 정서는 갈수록 진해졌다. 5악장은 의지와 소생을 끝없는 점과 같은 피치카토로 풀어냈고, 진해진 정서가 7악장에 이르러 우리 고유의 흥과 멋으로 분출됐다. 닐센의 <어느 젊은 예술가의 관 앞에서>와 유사한 단2도 선율은 레퍼토리간의 유기성을 느끼게 했다.

어디에서 작업을 하더라도, 그 작풍이 전위적이라 가늠할 수 없더라도 민족의 정서는 미묘하게 감지된다. 앞의 레퍼토리에서 민족과의 만남이 있었다면, 김성기의 곡에는 우리 민족 정서와의 만남이 있었다. 김환기의 점화는 대부분이 코튼에 그려졌다. 유화물감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묵의 농담이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점들은 네모꼴 안에 마치 지장처럼 찍혀있는데, 코튼에 물감이 밴 정도에 따라 점들은 그 꼴을 침범하기도 하고 서로를 물들이기도 한다. 타국에서의 불안함이 꼴 안의점으로, 그의 막연함이 코튼 속 농담으로 나타난다. 코튼 끝은 직선으로 자르지 않았다. 불균형한 작품 테두리가 오히려 한국의 자연스러움 풍긴다. <김환기의 작품 속에>도 마찬가지다. 매 악장의 끝을 열어두었다. 예기치 않은 악장의 끝은 일정치 않은 코튼의 끝을 상기시켰다.

 

작품 전반이 짧은 패시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연주자는 끝을 더욱 예의주시해야 한다. 특히 이처럼 열린 끝일 경우 청중이 이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집중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몇몇 악장은 그 끝의 긴장감이 덜했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음악은 감상자와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감상자는 작곡가의 인생과 문화적 토대, 사회와 시대를 음악의 아름다움 속에 녹여 감상한다.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 속에서 생성되고 향유되는 것이예술이다. 감상자로서 우리는 작품 안의 표현은 물론, 창작자의 사회적 정서도 느낀다. 김환기와 김성기의 작품이 우리의 요소를 직설적으로 내보이지 않았음에도 우리가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자연스레 느낀 것처럼.

 

시대와의 만남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시대에 순응했지만 한편으로는 시대를 거슬렀던 20세기의 햄릿, 쇼스타코비치. 그는 평생을 산 음악과 죽은 음악 사이에서 갈등했다. 20세기 초 러시아는 혁명과 전쟁으로 얼룩져있었다. 1905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노동자들이 봉기했고, 일 년 후 여기서 쇼스타코비치가 태어났다. 권력을 장악한 노동자들은 서로 당파를 나누어 대립했으며 도시의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싸우며 죽어갔다. 어린 쇼스타코비치가 접한 러시아의 음악 아름다운 민속 선율이 아닌, 혁명가와 노동가였다. 초기의 쇼스타코비치는 힌데미트, 크셰넥과 같은 아방가르드 작곡가들의 기법을 공부했고, 말러와 스트라빈스키, 베르크 등의 음악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의 모더니즘적 요소들은 서구의 그것과 맞아 떨어졌다. 그는 1926년 초연된 <교향곡 제1번>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어 오페라 <므첸스크의 멕베드 부인>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레닌 사후 스탈린이 집권하며 이야기가 달라진다. 당은 인민에게 어필할 수 있는 민속적이고 사실적인 음악을 원했고 이에 반하는 작품은 시장의 힘에 굴복한 부르주아의 것으로 치부했다. 쇼스타코비치의 성공이 채 가시기 전인 1936년, 그 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멕베드 부인>과 발레음악 <맑은 시냇물>에 대한 비판이 연이어 ‘프라우다’지에 실렸다.5) 그는 숙청당하지 않기 위해 원치 않아도 밝고 명료한, 일명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입각한 곡을 작곡해야 했다. <교향곡 5번>은 스탈린의 극찬을 받았고 그를 소련의 음악 영웅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온갖 명예와 지위도 순수음악을 향한 그의 열망을 억누를 수 없었다. 이를 분출하기 위해 그는 독주 피아노곡과 같은 작품들을 틈틈이 작곡했다.제2차 세계대전 후, 문화부장관 즈다노프가 시행한 ‘즈다노프 비판’은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에프,하차투리안 등을 ‘형식주의자’로 내몰며 그들을 타락하고 반인민적인 예술가로 매도했다. 이후 쇼스타코비치는 칸타타 <조국의 시>나 오라토리오 <숲의 노래> 등 스탈린 체제를 찬양하는 곡들을 발표한다.6) 그 시대 그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너무나도음악적이고 형식적인, 철저한 ‘반소련적’ 음악이 탄생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유대의 민속 선율을모티브로 한 가곡집 <유대의 민속시로부터>와 <현악4중주 제4번>이 눈에 띈다. 이 곡들이 작곡된 시기가 스탈린의 반유대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유대인들이 죽고 시베리아로 추방당했던 때였기 때문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음악으로 그들의 고통을 함께 했다. 비록 세상에 선보일 수 없었던 작품이지만, 이는 그 어느 작품보다도 그의 음악적이고 사회적인 내밀한 욕망을 느끼게 했다. 곡은 스탈린 사후초연되었다.

 

김광섭의 시에 ‘밤이 깊을수록 /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 나는 어둠속에 사라진다’는 구절이 있다. ‘밤’과 ‘별’, 그리고 ‘나’에서 쇼스타코비치가 떠오른다. 스탈린 체제가 심화될수록 숨겨둔 그의 작품들은 고귀해졌지만, 쇼스타코비치 자신은 사회의 어둠 속에 사라졌다. 체제와 음악 사이에서 씨름하던 그의 이중성은 수십 년이 넘은 지금도 우리에게 그 시대를 돌아보게 했다. 시대 속의 음악은 이렇게도 큰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 유대 선율을 모티브로 한 곡이 나온다면, 우리는 이렇게까지 작품에 사회적인 의미를 둘 수 있을까. <현악4중주 제4번>을 편곡한 화음쳄버오케스트라의 <실내교향곡D장조>는 현악4중주와는 또 다른 음향으로 우리에게 쇼스타코비치의 시대를 곱씹게 했다.

 

눌러내는 D현의 점2분음표는 도입의 멜로딕함을 살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포석을 깔듯 분위기를 이끈 더블베이스의 단음은 묵직한 비올라와 함께 훗날의 저음 클러스터를 예견하는 듯 했다. 흡사 김환기의 점화처럼 빽빽하게 채워진 저음은 D장조라는 조성의 정체성을 잡아주었고, 날카롭게 긁는바이올린의 고음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냈다. 저음과 고음, 협화와 불협화가 넘나들었고, 현은 밀물과 썰물이 차고 빠지듯 강약을 조절했다. 관의 따뜻함과 현의 날카로움이 교차되는 가운데 이를 감싸주는 호른의 삼박자가 조화로웠다. 1악장은 각 요소의 대비가 잘 드러났다. 이 대비는 이분법적이었던 당시 냉전의 시대와 쇼스타코비치의 이중적 삶을 표현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2악장의 을씨년스러운 도입에서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2악장이 연상됐다. 비발디의 바이올린 솔로처럼, 오보에 솔로는 하나의 가락을 실처럼 뽑아내며 곡의 서정을 돋웠다. 멜로디는 오보에에서 플루트, 현으로 이어지며 1악장에서도 빈번히 등장했던 높은 음고로 감정을 리드했다. 편곡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마지막의 A-A-A-fm와 A-A-A-fm₄⁶ 를 현과 관으로 교차시킨 것이다. 마치 억눌린 감정을 삭이는 것처럼. 이어 바이올린의 하모닉스로 곡이 마무리 되는데, 곡의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여기서 아련히 스모르잔도 된다.

 

3악장은 힘 있는 데타쉐에서 곡풍이 드러났다. 그 시기 자잘하게 음을 나누던 다른 작곡가들의 기법과 달리, 2박과 3박의 간결한 음을 중심으로 하는 쇼스타코비치의 기법들은 단순하면서도 진취적이다. 피아노 콘체르토 2번 1악장의 진행과 흡사한 짧은 패시지는 관의 편성에 힘입어 극대화됐다. 이 악장은 유니즌과 산발적 피치카토, 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악기들이 모여 만든 시장과 같았다. 첼로와 바이올린이 각자의 이야기를 하면 관이 유니즌으로 중재했고, 바순과 플루트가 서로의 목소리를 높이면 더블베이스와 호른이 화합을 이끌었다. 현악 4중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음색이었다. 각 파트가 다른 어조, 다른 톤으로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결국 비슷한 패시지를 반복하며 서로 동화되어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곡의 클라이막스는 4악장이다. 길이도 가장 길 뿐더러 첫 박에 내려찍는 강이 듣는 이를 집중 시켰다. 절도 있는 피치카토는 확연한 2박 계통의 러시아 춤곡을 연상케 했고, 쇼스타코비치는 여기에 겹증2도의 유대적 선율을 얹었다. 러시아와 유대의 민속이 서로 섞였다. 3악장에서 각 악기가 결국은 동화되었듯.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서 전통을 지키며 사는 유대인들이 러시아의 음악을 받아들이고 함께 춤추던 장면이 오버랩 되었다. 각 악기들은 서로의 부족한 박을 채워주며 서로상생했다. 쇼스타코비치가 음악으로 스탈린의 반유대정책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솔로가 구슬 꿰듯 엮였고 클라리넷의 솔로를 알게 모르게 플루트가 이어받아 연주했다. 

 

잦은 유니즌은 모두를 아울렀다. 각자 다른 요소들을 융화했고, 이렇게 음악으로 서로 하나가 되었다.사람은 이중적이다. 때로는 시대가 사람을 이중적이게 만들기도 하고, 서로의 전통과 문화가 부딪힐 때 스스로 이중적인 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전혀 다른 둘은 갈등하고 섞이며 하나가 된다. 마치 쇼스타코비치의 곡처럼. 그가 살았던 시대는 냉혹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체제를 찬양했지만 체제에억압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음악들이 각각 이중적일 수는 있지만,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조화가 있다. 특히 그의 <현악 4중주 제4번>은 그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오늘의 <실내교향곡 D장조>는 관과 현의 대립으로 그 이중성을 극대화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청중은 더욱 극적인 화합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음악 속에 대립과, 대립의 해소를 염원한 작곡가의 이념을 느낀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음악으로 시대를 만났다.

 

한 프로그램을 감상했지만, 곡들은 저마다 다른 사회를 품고 있었다. 닐센은 왜 음악으로 친구를 추모했을까. 왜 시벨리우스와 드보르작의 음악에는 민족적인 특성이 느껴질까. 김환기는 왜 점화를그렸으며, 김성기는 왜 김환기의 작품을 선택했을까. 왜 스탈린은 러시아의 민속 선율을 강요하고 형식적인 음악을 지탄했을까. 그리고 쇼스타코비치는 왜 자신의 작품을 스탈린이 죽을 때까지 숨겼을까. 물음들은 저마다의 정서와 민족, 시대를 이해하자 비로소 해결되었다. ‘그들의 사회’ 속에 답이있었던 것이다.

 

음악 작품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우리와 만날까. 이는 ‘우리의 사회’ 속에 답이 있다. 같은작품이라도 연주되는 시대와 분위기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악4중주 제4번>이 그 시절 소련에서는 불타 마땅한 작품이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쇼스타코비치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귀중한 작품인 것처럼. 오늘 추모의 음악이 되었던 시벨리우스의 즉흥곡 역시 십 년 후에는 어떻게 우리와 만날지 알 수 없다. 음악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과 고뇌’를 표현한다. 음악 속에 삶의 일부였던 시대, 추모,민족, 정서, 체제와 같은 모든 사회적 현상과 감정들이 담겨있다. 화음쳄버오케스트라의 제39회 정기연주회 레퍼토리 역시 이 ‘사회적 감정들’로 묶여 있었다. 이 감정들은 음악이 어느 나라에서, 어떤시대에, 어떤 사람과 만나느냐에 따라 또 달라질 것이다. 음악과 사회는 유기적으로 돌고 돈다. 서로를 나타내고 서로의 시대 속에 서로를 해석 한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것이 바로 음악의 사회성이다.

 

 

 

*2015 화음 평론상 입상자

전윤혜 프로필

한국교원대학교 제4대학 음악교육학 학사

한국 잡지교육원 취재기자 양성과정

2015년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 시민모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