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작곡노트 - 작곡가 임지선
어둠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빛의 축제, 장방형의 프레임 속으로부터 솟아나는 빛은 비상한 마력을 내뿜으며 우리를 무한한 우주공간으로 인도한다. 빛에 현혹되어 다가가면 과도하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만큼 무수한 상처자국을 지닌 철판이 융기를 거듭하는 가운데 굽이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어느 별의 표면을 옮겨놓은 듯한 그 금속피부는 마치 수많은 시간에 의해 형성된 행성의 거죽처럼 거칠지만 아름다운 질감을 지니고 있다.
그 속에서 산맥이 굽이치고 평야와 구릉 사이로 강이 흐르고 있다. 우주 공간의 한 단면을 필름과 같은 막으로 떼어놓으면 이런 형국으로 나타날까? 뚫린 구멍 사이로 쏟아지는 빛이 만들어내는 환상 못지않게 이 표면은 중요하다. 그것은 작가가 중성적이며 비인격적인 철판과 대결하며 만들어낸 노동의 결과이자 그것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개념과 의도가 살아 꿈틀대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플라즈마 기법을 이용하여 철판의 표면을 거의 재료에 대한 학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수하게 긁어대고 상처를 입힌 결과 나타난 이 표면은 바로 우주란 바다의 수면일 뿐만 아니라 이 작가가 그려낸 빛의 드로잉이기도 하다. 다만 그것이 선으로서가 아니라 점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일면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빛과 빛의 흐름을 연결하는 길이 있다.
나는 이것에 대해 주저 없이 ‘빛의 길’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길을 따라 도달할 수 있는 종착지점은 어디일까. 마치 드리핑기법으로 화면을 균질하게 칠해놓은 추상표현주의 화폭처럼 전면(all over)을 무수하게 많은 빛의 입자로 뒤덮어놓았기 때문에 정면에서 바라본 프레임의 표면은 거의 평면적이다. 그러나 측면에 서서 그 표면을 보라. 거기에서 일렁거리는 매스, 볼륨과 함께 빛의 율동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 미술평론가 최태만의 ‘빛의 길, 내 마음의 천국’ 글 中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