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시간을 본 이는 아무도 없으나 우리는 시간을 따르며 살아가고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속도만을 체감한다. 그리고 시계를 보며 우리의 상대적 위치를 가늠하는데, 시계라는 이 흥미로운 인류의 발명품은 보이지 않는 시간을 계측 가능하고 가시적인 것으로 전환시킨다. 시계 침의 똑딱거리는 움직임과 소리는 시간을 분절시키고, 그 분절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초조감과 함께 촌각을 다투며 살아간다. 그리고 보다 더 빠르고 가시적이며 신속한 것에 대한 체질은 보다 빨리 우리를 자극하고 해소시키는 무언가를 욕망하게 한다. 빠르게 뛰어오르고 급변해야 하는 효율성 위주의 가치는 보다 연속적이고 자연적인 시간성을 따르는 삶과 예술의 양식을 뒤로 둔다. 수많은 정보, 테크놀로지의 발전 속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상실감, 그것은 우리가 이전에 맺었던 보다 넓은 지평선의 관계와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라는 전시제목은 손목에 매달린 시계를 보기 위해 아래로 숙여야 했던 우리의 시선을 저 위로 끌어올려 하늘 위로 옮겨다 놓는다. 그것은 달을 보며 농사를 짓고, 몸의 주기를 짐작하며, 달의 주기에 따른 열 달간의 생명을 잉태하던 자연과 긴밀히 닿아있는 관계, 그 연결을 파악하던 인간의 원래적 소통을 추구한다.
예술이 인간이 세계와 소통하는 방식의 풍요로움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감응력(感應力) 느끼고 조응하는 정신의 힘, 즉 감응력의 회복은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노력의 다른 말이 될 것이다. 전시된 작품들은 물의 흐름과 번짐, 달의 차고 기움과 같이 연속적이고 자연적인 시간을 감지하게 한다. 또한 고요와 침묵이 갖는 가치, 미묘한 움직임이 전달하는 억제할 수 없는 파동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섬세한 조형적 변수들은 철저한 집중을 요한다. 시각에 호소하는 미술작품들은 시간의 비가시적 속성에 주목한다면 그 반대에 위치하는 듯하지만 흘러가는 시간의 고요함, 그 ‘소리 없음’에 집중한다면 적어도 함께 침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작품들은 시간을 보이게 할 수는 없어도 시간을 비추어 낸다 ― 어둠 속의 달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밤의 태양을 비추어 쉼 없이 쏟아지는 빛의 존재를 증거 하듯.
전시가 열리는 이 곳 덕수궁 미술관은 오래된 정원,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곳이다. 돌로 지어진 이 궁은 콘크리트로 재빨리 쌓아올린 속도의 도시, 서울의 인파 속에서 또 다른 시간성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미술관 입구의 등에서 돌 벽, 철로 된 문고리까지 공간 자체가 세월의 흔적과 시간의 흐름을 몸소 보여주는 이 곳에서 새롭게 설치, 영상, 회화, 조각, 수묵 등 지금의 미술이 그 예술적 대화를 시도하고자 한다.
전시는 네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섹션별 이미지인 “강”, “물”, “달”, “끈”은 시간의 메타포로 자리한다
@국립현대 미술관 (덕수궁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