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나는 작품 하나하나를 한 개의 우주나 별이 생겨나서 소멸되기까지의 과정, 한 나라가 건국되었다가 멸망하기까지의 역사, 한 사람이 태어나서 삶을 영위하다가 죽기까지의 일생 같은 것으로 여기며 쓴다. 즉 별, 우주, 나라, 사람의 일생이 하나하나의 작품이며 또 내 작품도 하나하나가 다 그러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 ‘길’이란 그 역사 하나하나의 흐름이다.
작품위촉을 받으면서 이번 화음쳄버 연주회의 주제 인물이 쇼스타코비치(D.Shostakovich)라는 말을 들었다.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소련 공산주의 체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그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서유럽으로 또는 미국으로 망명의 길을 떠났다. 새로운 땅에 잘 적응하여 성공적인 삶을 일구어낸 사람들도 있고 가슴에 한을 품고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 땅을 떠나지 않았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땅에 남는 것이 결국 그가 선택한 길이었다. 그는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한 사람의 작곡가로 극과 극을 달리는 영욕(榮辱)의 길을 걸으며 일생을 보냈다. 자신의 창조적 영감과 체제가 요구하는 작곡방향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정신적 고통을 겪던 그의 모습이 그가 남긴 작품들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그가 만약 망명의 길을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 특별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 이것은 전적으로 당사자의 기질(氣質)문제라 믿고 있는 나에게는 쇼스타코비치라면 절대 그 땅을 떠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가 현저하게 상황이 좋은 어떤 다른 곳으로 갔다면 좋은 작품을 더 많이 남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는다. 그때 러시아 땅을 떠났던 창작하는 예술가가 스스로의 마음에 드는 작품을 내놓지 못해 몸부림치다가 제 발로 되돌아간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에게는 러시아 땅이 바로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쇼스타코비치는 그 땅을 등지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