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사석원의 <고궁보월>의 작품들을 처음 접했을 때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고궁의 위용과 함께 한편으로 밀려오는 것은 다름 아닌 '난감함'이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제 음악 작업의 주제가 되었던 다른 예술작품들은 이미 동시대의 음악과 많이 닮아있었습니다. 평범한 객체를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으로 표현한 전위예술작품들은 그 대상을 바라볼 때 일반적으로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을 살려내며 대부분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었지요.
그러나 흐드러진 홍매화 앞에서 오색 날개를 퍼덕이는 올빼미, 푸른 달을 향해 힘차게 대지를 박차는 꽃사슴, 눈앞에 살아있는 듯한 사실적인 움직임과 그것을 마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로 안내하는 듯한 찬란한 색상, 이렇게 순수히 첫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움을 '기묘하다' 혹은 '난해하다' 라고 통용되는 동시대의 음악으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이 고민 탓에 이번 작품의 구상단계는 다른 작품들보다 훨씬 더 길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랜 고민 끝에 대단한 해결방법을 찾아낸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노래하겠다고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의 귀에 익숙해진 소리를 사용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여러 날에 걸쳐 <고궁보월>의 작품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작품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보이는 그 이상의 것' 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소복이 쌓이는 눈이 흩날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머물다 간 바람, 새벽을 맞이하며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별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몸을 털고 움직이는 작은 동물들. 이렇게 제가 나름대로 찾아낸 '보이는 그 이상의 것'을 체험했을 때의 그 감각을 여러분과 함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아주 솔직하게 풀어나갔을 뿐입니다.
이렇게 완성된 최한별의 <고궁보월>은 '보이는 것' 과 '보이는 그 이상의 것' 들에 대한 직관적인 표현이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머무르는 듯한 판타지의 실현입니다.
음악을 듣기 전에 <고궁보월>의 작품들을 차분한 마음으로 보아주세요. 여러분께는 어떠한 것들이 보이고, 또 어떠한 것들이 들리나요?
<음원 정보: 화음 프로젝트 Op. 159 >
I. 1776년 3월 창덕궁 후원
II. 경복궁 꽃사슴
III. 덕수궁 사자
IV. 경복궁 향원정의 십장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