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8일 화음 프로젝트 Op.55]
누나의 전시회
이야기는 여암 신경준에서 시작하기로 하자. 집에서 하남을 지나 팔당대교를 지나고 두물머리를 지날 즈음에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는 산경표(山經表)를 지은 여암 선생의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 문득 생각났다. 강은 겨울이 되면서 색이 짙어져 쪽빛이라기보다 차라리 검은 색인데, 잎이 진 산들이 발목을 북한강에 담고 차마 이쪽으로 건너오질 못하고 북에서 내려온 산들은 대성리에서 멈춰 서 있다.
거기에 서호미술관이 있다.
누님의 초대전의 이름이 <나, 흐르는 강처럼>이라는 것을 몰랐다. 아니, 그것보다 오늘 畵音 프로젝트라는 기획 아래에 미술과 음악이 함께 한다는 것을 아침에야 겨우 알았다. 음악회가 오후 5시라서 조금 일찍 도착한 식구들은 저물어 가는 강을 바라보며, 차를 마신 후 전시실 겸 오늘의 음악회 장소로 내려갔다.
누님의 친구인 홍정주 관장의 개회 인사말씀이 있고 난 후, 누님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강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자신이 아프고 괴로웠을 때, 그리고 행복했을 때 그 강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누님의 작품은 강 빛을 머금었는지 모른다. 누님은 자신의 작품을 서서 보지 말아달라고 했다. 흐르는 강물처럼 걸어가며 보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Program 2007.12.08(이번 화음프로젝트의 프로그램)의 시작으로 Franz Waxman의 Carmen Fantasy가 연주되었다. 비제의 카르멘을 모체로 변형을 시도한 이 작품은 바이올린의 명인 하이페츠를 위하여 헌정된 작품이라고 한다. 연주자는 가냘픈 몸매에도 불구하고 연주는 하이페츠의 연주가 그러하듯, 소리 속에 뼈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단호하고 거친 호흡으로 가파르게 연주했다. 오디오로만 음악을 들어왔던 나로서는 그토록 가까운 곳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활대가 멈추고 잠시 침묵이 다가왔음에도 현 위에서 가녀린 손가락은 비브라토로 떨리고 있다. 그렇게 저녁은 다가오고 있었다.
그 후 이번 화음 프로젝트를 위하여 특별히 김유희 씨가 작곡한 'A Distant River'가 연주되었다. 김유희 씨와 누님과는 이 프로젝트 이전에는 전혀 모르는 한 사람일 뿐이라고 했다. 프로젝트를 위하여 그녀는 10월에 인사동 <갤러리 서호>에서 있었던 누님의 전시회에서 작품을 보았다고 한다. 거기에서 3개의 Block Twill 연작(Blue, Red, Gold)을 보고서, 어느 머나먼 강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 와보니 강이 바로 곁에 있다고, 제목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며 웃었다. 음악은 유장했다. 강이란 개울과 달라서 물이 쌓이면서 흐르고, 흐르면서도 앞 물에 뒷물이 섞이는 것이라서 흐르는지 멈춰있는 지 분간할 수 없다. 마치 세월이 흐르는 것처럼........ 김유희 씨의 작품이 그러했다. 첼로가 강심으로 밀리어 낮은 곳으로 나아가고, 그 소리 위로 바이올린이 뒤채이며 떠오르며, 강물 위에서 피아노의 소리가 조용히 명멸했다.
그 후 Cesar Franck의 피아노 삼중주가 연주되었다. 소리란 들리는 것인지 가슴 속에서 사무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터질 듯 전시실을 꽉 채운 소리 속에서도 악기들의 소리는 서로 사무치지 않고 단일한 하나의 흐름으로 어디론가 나아갔다. 그것은 바쁘기도 했고 때론 멈춰서는 듯 나아가는데...... 결국은 바다에 이르러 흐르기를 멈추듯 음악회는 끝나는 듯 했다.
그러나 앵콜이라는 것이 있게 되고, 연주된 곡은 Pietro Mascagni의 Cavalleria Rusticana Intermezzo였다. 오케스트라로 들어왔던 이 곡을 피아노 삼중주로 들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아침 이슬과 같은 슬픔, 그래서 슬픔이라기에는 차라리 고독한 사랑과 같이 감미로운 이 음악을 통해 깊어가는 겨울 저녁을 맞이한다는 것은 한 해를 보내면서 우연히 만난 행운이었다.
연주회가 끝나고 1악장과 2악장 사이의 간주곡의 여운을 덜어내지 못한 채, 누님의 작품을 보았다. 흐르는 강물처럼 누나의 작품을 보았다.
늦은 가을 오후 4시, 강 빛이 미술관의 유리창에 여물 즈음에 본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여암의 산수고(山水考)에는 "하나의 근본에서 만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은 산이요. 만 가지 다른 것이 모여서 하나로 합하는 것은 물이다."라고 쓰여 있다. 그는 "팔로(팔도)의 여러 물은 합하여 12수(水)가 되고, 12수는 합하여 바다가 된다."고 우리의 산하를 표현한다. 그러니 만 가지의 다른 물이 모여 합하고 합하여 강이 되고 결국 바다로 합하는 것이다. 개울과 개천이 지류가 되고 강이 되면서 강의 폭은 넓어지고 그 유역은 광대해져 갯벌과 뒤섞이며 바다로 흐르는 것이 강이고, 지류가 몸을 섞으며 이름을 달리하는 것이 강이다. 그래서 한강만 하여도, 남 북한강이 두물머리에서 합하여 한강이 되고, 또 임진강과 섞이며 조강(祖江)이 되어 갯벌과 노을에 몸을 풀며 바다가 되는 것이다.
누님의 작품은 정말로 강이 아득하게 멀어 색이 실타래마냥 풀어지면서 바다와 습합되는 것이 보이는 듯도 하다. 그래서인지 누님의 작품에는 하나로 합하기 위하여 흐르는 강물 위로 만 가지로 풀어지는 山 그림자마저 보이는 것도 같다.
어린 시절, 거친 성격을 다스리겠다고 어머니는 싫다는 나를 미술학원에 보냈다. 미술학원에 갔을 때, 어린 누나가 사람들과 함께 석고상을 앞에 놓고 소묘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한쪽 귀퉁이에서 크레파스나 물감으로 정말로 아무거나 내 멋대로 그리며, 누나가 목탄으로 하얀 도화지에 그림자를 뭉개가며 석고상의 각을 떠올리는 모습을 경탄으로 바라보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것이 미술이라는 것을 만난 첫 계기였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께서는 매년 우리를 국전(미술대전)에 데려가셨고, 때로 화보집을 보며 누나와 나는 커갔다. 그리고 누나는 미술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누나는 회화가 아닌 염직이라는 공예 쪽을 택했다. 누나가 응용미술을 선택했을 때, 솔직히 실망했다. 그러나 그것은 누나의 선택이었을 뿐이고, 나 또한 한 번도 올바른 선택이란 것을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세월이 흐르면서 누님의 작품들을 지켜보아왔다. 염색과 지공예, 매듭 등을 이제 누님의 작업은 직조(weaving)라는 것으로 귀착되는 것 같다. 내가 보아온 누님의 작품들은 늘 색깔이 고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본 작품들에선 예전에 보았던 색들이 거의 탈색되고 말았다. 화사하던 색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대신 닮은 색들이 서로 뒤채이고 섞이며 화음이 된 듯하다.
누님의 대학원 졸업논문을 읽었을 때, 그 내용은 잘 모르겠으나 느낌은 고전주의적 논문이라는 것이었다. 사물과 표상이 일대일로 대응되며, 모든 개념은 뚜렷하게 제 의미를 갖고 있고 그 의미는 다른 것과 섞일 수 없다는 견고한 그런 것이었으며, 그동안 누나의 작업에서 드러난 색들도 자신의 고유한 색으로 뚜렷했다. 하나의 색을 향하여 녹아가고 있는 누나의 작품을 보며, 어떤 독해의 방식으로 작품을 해체하고 바라보아야 할 지 모르겠다.
아픔과 절망이 사람의 심혼의 깊이를 더한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누님의 작품을 보며, 누나가 많이 아팠구나. 그래서 아파트의 창밖으로 강물에 흘러가는 세월을 바라보았구나. 고집스럽던 누나가 이제는 흐르는 강에서 색을 덜어내고 조용히 흐르는 빛을 보았구나. 그리고 베틀 위에 같은 색의 실을 걸고 시간의 앙금들을 조금씩 지꺼덕거리며 자아냈구나. 누나의 작품들을 보며, 병이 가져다주었던 아픔과 무망의 시간들, 그런 것들을 이제야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누님의 다음 작업의 주제는 무엇일까? 山일까?
2007.12.09 아침에, 동생이 누나의 전시회를 보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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