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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성혜영 / 2007-03-13 / HIT : 1028
화음 챔버 오케스트라 29회 정기연주회 내내 함민복 시인의 “꽃”의 한 구절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미술과 음악의 만남, 임지선의 창작곡 <그림자의 그림자> 덕분에 더욱 그랬다. 

누구에겐들 삶이 그렇게 확실하고 희망적이기만 할까. 도입부는 망설이고 주저하면서, 머뭇머뭇 나아간다. 잡히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느리고 서정적인 도입부는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저 앞에 ‘그 무엇’이 있다고 알려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중후반으로 갈수록 갈등하고 부딪치는 힘이 여기저기서 일어난다. 그리고 마침내 엄청난 에너지가 ‘그 무엇’으로 집결되는 느낌을 준다. 

나뭇가지와 못 등, 하찮아 보이는 자연의 재료들이 중첩되고 부대끼며 얼기설기 얽히고설켜, 마침내 하나의 우주적 원형을 이루어 낸 이재효의 작품처럼. 

순전히 비음악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내가 기억하는 임지선의 음악은 서정적이고 예민하고 지적인 무엇이었다. <그림자의 그림자>는 여전히 서정적이지만 예전에 비해 한층 힘이 실려 있다. 꼭 꼬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혼돈의 시간 속에서 고민하고 흔들리며 깊어진 삶의 연륜이 아닐까? 내 짐이 곧 내 날개라던가. 일견 무심하고 지리멸렬한 세월일지언정 고맙게도 그것은 그냥 흘러가 버리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그 시간 갈피갈피에 깃든 숱한 사연들이 예술가들에게는 창작의 날개가 되기도 하니까. 

보는 사람에게도 그 에너지가 전해질 것만 같은 열정적인 연주자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제각각의 빛과 그림자를 만들며 이쪽저쪽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삶과 죽음, 음악과 미술, 남자와 여자, 악기와 악기, 소리와 침묵,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 수많은 숙명적 짝꿍들 사이로 만날 듯 말듯 이해할 듯 말듯, 음악도 흐르고 삶도 흐른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피었다. 그 꽃은 더 이상 젊지 않은 젊음에게 바치는 헌화처럼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