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해설
“시각적 대상으로부터 얻은 착상을 음악적, 즉 시(時)공간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표현 및 지각 경로의 상이함’과 ‘동시성과 연속성’이라는 시각과 청각의 본질적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물론 단지 정서적 차원에서의 주관적 표현도 가능하겠지만…….
몇 가지 제한된 요소들이 화폭을 달리하며 재구성되는 이인수 화백의 작풍은 음악에 있어서의 시간적 구성, 즉 ‘요소의 변형 및 재구성, 그리고 재현’이라는 음악적 방법론과 일치한다. 그리고 다(多)악장의 악곡이 그러하듯이 각각의 화폭은 더 큰 구조(연작, 連作)의 일부가 된다.
‘구성(composition)’ 4곡과 그 사이에 놓인 3개의 간주곡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각각의 길이가 불과 1,2분에 불과한 미니어처(miniature)적 특성을 갖는다. 4곡의 ‘구성’은 상호 연관성이 배제된, 자족성을 지니는 단편적 음향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전개에 의한 음악적 흐름을 형성하기보다는, 이화백의 화폭에서처럼, 단지 그 위치를 바꿈으로써 시간적으로 재구성된다. 그 사이사이에 놓인 3개의 간주곡은 ‘같으나 다른, 혹 다르나 같은’ 이 4개의 ‘구성’이 전시된 갤러리의 벽과 같은 존재이다. 이 화백의 작품 속의 표면적 형태들, 예를 들어 숫자나 기호가 그 본래의 의미로부터 탈색되어 순수한 추상적 형태로 인식되고 이들에 의한 공간적 구성이 우리에게 미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듯이 이 작품 속의 개개의 음향들 역시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않는다. 단지 이들이 악장을 달리하며 재구성되는 데서 오는 지적, 감성적 유희가 있을 뿐이다.”
- 작곡가 전상직 –
이인수의 작품은 캔버스에 거즈나 헝겊을 붙이고 직접 만든 물감을 바르거나 짜기도 하고 가늘고 두꺼운 끈을 붙이기도 하여 마치 오래되고 산화된 벽화를 연상시킨다. 그는 자연적인 오브제의 선과 인곡적인 선이 자연의 재료와 인공의 재료가 일상적인 형태와 인위적인 숫자나 기호가 서로 대조를 이루면서 독특한 조형언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단순하고 강한 선들 못지 않게 재료에 대한 그의 강한 애정은 그가 만든 천연재료에 안료를 혼합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색상을 물질 자체의 고유색상을 사용해 마티에르의 질감효과를 극대화하여 90년대 말부터 그가 사용해 온 무채색의 차분한 색상에 깊이감을 더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