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해설
무한한 동양적 사유세계의 공간을 염소와 언어적 도상으로 풀어가는 ‘사유문자’는 자동필기의 무위성을 지닌 일종의 문자 추상으로서 한자의 서체를 연상시키는 속도감 있는 운필조형이다. 이 사유문자는 해독의 대상이 아니라 특정한 사유의 본질을 상징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이해나 가치는 물론, 시공적 한계까지도 초월하는 지극히 내밀한 영적인 세계에의 희구를 조형 부호로 펼쳐 놓은 것이다. 이는 실존적 자아에 대한 회의와 물음을 초탈한 형적 자유를 통해 추구하는 것이며, 어떤 미지의 사유 세계로 가고자 하는 열망에서 표출되는 불명확한 미적 행위라고 하겠다.
“이 사유문자(思惟文字)는 내가 지금까지 줄곳 사색의 염소, 종교적 영서(靈書)등을 통한 사유의 자세를 취한 것과 같은 맥락의 작품으로서 문자를 상징적으로 형상화하여 일반적인 문자에 대한 생각을 환기시키고 좀 더 심상적 세계에로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사유문자는 사유에 의해 유추된 문자로서 내면적인 무의식 세계를 보여주는, 해독할 수 없는 문자이기도 하다. 그것은 신화적 언어로 남을, 잊혀진 언어를 찾아가기 위한, 사라진 세계로의 여행이기도 한데, 이러한 일련의 무의식적 사유기행을 통해 전생의 역사를 사유적 언어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미술작가 윤여환 –
“문학적 환상을 담은 표제음악이 아닌 시각적 예술의 그림을 매체로 충전되어 얻어진 영감에 감사한다. 염소의 그림을 통해 윤여환 화백의 심오한 내면적 미학사상과 철학적 고뇌에 동화되어 샘솟듯 찾아진 나의 ‘참소리’에 행복한 환희를 느꼈다. 이 음악은 A,B,C,D,E,F,A'의 일곱 개의 작은 장(章)으로 구성하였다. 첫 부분 A는 이 그림주제의 염소 모습이다. 묵직한 침묵의 외눈으로 바라보는 사색의 모습을 어두운 증4도의 선율과 화성진행으로 묘사하고 서로 다른 두 개의 감7화음의 겹친 음색은 사유문자 속에서 변하는 꽃처럼, 나비처럼, 물고기처럼,... 새처럼, 구름처럼,...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바뀌며 오고 가고 쉬고, 기도하며 순례한다. B는 침묵속에서 절규의 노래를, C는 신비로운 만남을, D는 미지를 향한 명상적 사색을, E는 환희의 찬양을, F는 삶의 절정에서 참회를, 그리고 A'는 순례에서 돌아온 무딘 염소의 해탈을 찬미가로 노래하였다. 양띠해에 태어난 나에게 염소의 그림은 우연이 아닌 하늘에 주신 계시처럼 성스럽고 은혜롭고 감격이었다. 그래서 이 음악은 다시 태어난 나의 음악혼의 자화상이다. 화음쳄버의 위촉에 감사한다. 그리고 윤여환 화백에게도.”
- 작곡가 이영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