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의 이야기
화음의 현재에서 미래를 상상하다
바이올리니스트 피예나 & 비올리스트 홍진선
이민희(음악평론가)
2023년 11월 7일,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 피예나와 비올리스트의 홍진선의 인터뷰를 서면으로 진행하였다. 비교적 최근 화음의 가족이 된 두 사람은 다양한 레퍼토리를 함께 연주하며 관객을 만나왔던 터, 두 연주자에게 음악을 연주하고 해석하는 방식, 국내외 무대의 특성, 현대음악에 대한 견해, 화음이라는 앙상블에서 느껴지는 점 등에 대한 견해를 물어 보았다.
화음은 현재 3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30년에 버금가는 앞으로의 30년을 상상하고 계획한다고 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많은 요소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연주자’라고 생각한다. 연주자가 어떻게 본인의 음악성을 성장시키고 있는지, 그들이 꿈꾸는 앙상블이 무엇인지, 그들이 연주하고자 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귀 기울일 때 화음이 이후에도 꾸준히 발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화음이 가는 모든 길이 연주자와 함께할 것이기에, 피예나와 홍진선의 이야기를 들으며 화음의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었다.
두 분 모두 프랑스 등 외국에서의 공부 경험이 있으십니다.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외국에서 연주할 때의 환경과 국내의 연주 환경이 무엇이 다른지, 각기 장단점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피예나: 프랑스는 항상 관객들이 많아요. 그만큼 공연장에 가는 것이 생활 속에 녹아있는 것이겠지요. 또한 연주 장소가 꼭 공연장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성당, 시청, 길거리 등.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주기회도 많아지고요. 프랑스에서 제가 느꼈던 너무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무대에서 인사하며 마주치는 관객들의 따뜻한 시선과 연주 후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먼저 다가와서 좋은 연주였다고 말해주는 거였어요. 물론 서양과의 문화 차이도 있겠지만 그런 관객들 덕분에 무대에서 편하게 연주하면서 자연스럽게 무대공포증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홍진선: 국내외 무대의 장단점이라기보다는 제가 한국에 오기 전엔 콰르텟 활동을 중점적으로 하였고, 한국에 와서는 콰르텟도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연주들도 하고 학생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고 있는 활동에 변화가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여러 선생님들과 연주하며 너무 많은 영감을 얻고 또 무대에서 보여주시는 에너지에 감탄을 합니다. 또한 많은 분들과 다른 구성으로 이루어지는 연주에서 그룹마다 제가 비올리스트로서 다져야 하는 역할과 색깔 그리고 소리에 대한 연구도 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순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피예나: 연주자들마다 다 다르겠죠? 저 같은 경우 연주 직전에는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하고, 연주 동안에는 순간순간 흐트러지지 않고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합니다.
홍진선: 저는 몰입인 것 같습니다. 연습을 할 때도 몰입은 하지만 관객들이 그리고 연주회장의 어쿠스틱이 주는 또 다른 요소들은 그 몰입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소리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그 소리를 따라가는 과정이 연주이며, 그 순간은 온전히 그 음악과 나 그리고 관객만이 존재하는 아주 멋진 몰입의 시간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음악 작곡가의 신작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피예나: 큰 맥락으로 봤을 때 클래식한 곡들의 연주준비 과정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아요. 먼저 곡을 익히고 음악적인 해석과 ‘아이디에이션’(Ideation)을 통해 곡을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지요. 하지만 현대곡은 몸에 빨리 익숙해지지 않아서 악보를 읽는데 비교적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요. 그래서 저는 다른 곡들에 비해 신작을 읽을 때 메트로놈을 거의 항상 쓰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곡을 완성시키는 단계에서는 작곡자와 연주자가 같이 몇 번의 리허설을 진행하면서 작곡자가 의도하는 소리나 기법,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떨 때에는 연주자가 더 좋은 연주방법을 제시하기도 하면서 함께 더 효과적인 아웃풋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거치며 완성도 있는 공연을 준비합니다.
홍진선: 현대음악도 다른 시대의 음악들과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면 그 작곡가의 피드백을 듣고 의도를 파악할 수 있어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배경에서 작곡되었는지 파악하고, 그와 관련된 곡이 있다면 들어보기도 하며, 프레이즈 길이와 곡의 구조 등 곡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요소들을 먼저 생각한 후 악기로 연습함에 있어서도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시작합니다. 곡을 계속 연습하다 보면 원래 처음 시작할 때 느꼈던 생동감 있는 에너지들을 점점 잃어가면서 테크닉적인 요소들에 좀 더 신경 쓰기 마련인데, 그 에너지와 영감을 최대한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화음에는 몇 가지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결성된 지 30여년 정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일반적인 연주회장이 아닌 곳에서 연주될 때가 많으며, 문학가·평론가 등 연주자가 아닌 이들이 그룹에 함께 속해 있습니다. 연주자 선생님께서 느끼시는 화음만의 독특한 점이 있을까요?
피예나: 정말 간단하게 말하면 따뜻한 분위기와 리허설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화음은 리허설이 굉장히 디테일하게 진행됩니다. 그래서 육체적으로는 힘든데, 그러면서도 항상 즐겁게 리허설에 임할 수 있는 것은 수석선생님들과 대표님이 그만큼 잘 이끌어주시고 모든 프로젝트들을 문제없이 진행되도록 애써주시는 김초원 팀장님과 민지씨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음 연습 때 순간 물음표인 과정들이 있더라도 대표님과 선생님들의 의도를 이해하며 정말 공부가 많이 되고 제 음악세계가 넓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또한 하나의 공연을 음악가들의 시선에서뿐 아니라 문학가·평론가 선생님들의 관점을 비평이나 리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도 예술가로서 귀한 인풋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진선: 저는 아직까지 화음과 함께한지 얼마 안 되었지만 말씀하신대로 화음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요소들이 너무 많고 다양해서 매번이 신기하고 큰 영감을 받고 있습니다. 30년이라는 시간동안 이끌고 와주신 선생님들 옆에서 같이 연주하는 것 자체가 큰 배움이자 영광이고 연주하는 동안에도 오랜 시간 호흡을 해 오신 선생님들 사이에서의 케미스트리(chemistry)가 느껴짐에 매번이 소중한 경험입니다. 연주회장에서의 연주도 좋아하지만 경우에 따라 연주자와 관객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다른 곳에서의 연주도 의미가 있게 느껴집니다. 또한 단지 연주에 그치지 않고 평론가나 문학가분들과 함께 하는 작업에서도 좀 더 폭넓게 예술을 이해할 수 있어 좋습니다. 특히 저는 개인적으로 화음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좋아하는데 매번 스토리가 있는 프로그램 구성과 제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곡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전체적인 연주의 조화가 매번 감탄을 자아냅니다.
일반적인 음악회장이 아닌 ‘미술관’ 등에서 연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피예나: 요즘 많은 분들이 그러시겠지만 저도 예전부터 전시 보러 가는 것을 좋아했어요.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 외에도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힘이 공연장과는 다르거든요. 거기에서 영감도 받고 위로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음악회장이 아닌 곳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뭔가 그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 미장센, 어쿠스틱이 어우러지면서 유니크해 지고 그런 점들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아래)화음챔버오케스트라 레퍼토리 프로젝트 (2022년 12월 19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콘솔레이션홀)
화음에서 진행했던 몇몇 연주회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지요? 있다면 연주자의 입장에서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피예나: ‘갤러리를 음악회장으로 가지고 온’ 미술관 순례 시리즈가 흥미로웠어요. 관객입장에서는 작곡가가 영감을 받은 미술작품과 완성된 곡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흔하지 않은 기회이고, 또 99석으로 컴팩트한 인춘아트홀이 공연 컨셉과 잘 맞는다고 생각되어 기억에 남아요. 특히 미술관 순례는 다른 공연들하고 다르게 사중주 정도의 작은 편성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리허설 과정도 오붓[(?)하게 챔버 리허설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2023년 12월 1일 음악회 장소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도 저에게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라 그 곳에서 올려질 공연을 생각하면 설레고 기대가 됩니다.
홍진선: 저는 2022년에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했던 연주가 기억에 남습니다. 연주하는 무대 자체가 연주자에게 집중할 수 있는 묘한 힘이 있었고, 어쿠스틱과 조명 그리고 관객의 몰입 등 삼박자가 잘 어우러진, 그래서 그 연주자체가 하나의 스토리로 기억에 남는 연주중 하나입니다. 이날 ‘Serioso’라는 주제 아래 베토벤의 <Serioso 사중주>,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임지선의 <그림자의 그림자>, 그라나도스의 <오페라 고예스카스 ‘간주곡’>을 연주했었습니다.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림과도 어우러져 예술 자체로 다가갈 수 있는 연주회로서, 연주장소와의 조화가 더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화음의 홈페이지에는 연주 전후로 다양한 칼럼과 리뷰가 게시됩니다. 이런 글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을까요?
피예나: 비올리스트 에르완 리샤 선생님의 포토에세이를 좋아합니다. 에르완 선생님은 원래 사진을 잘 찍으시는데 사진과 함께 짤막한 글과 음악까지 선생님의 흥미로운 시선을 읽고 보고 들을 수 있어서 전시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재미있어요. 또 화음에서는 공연이 끝나면 비평을 읽어 볼 수 있는데요 연주자로 참여한 공연에 대한 비평을 받아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연주한 음악회에 대한 비평을 읽는 것 또한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화음은 ‘음악과 그림’의 만남을 테마로 하는 앙상블이기도 합니다. 피예나 바이올리니스트께서는 개인 사진전을 여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시각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예술가로서 화음의 연주회나 기획 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피예나: 너무 진부하지도 너무 도전적이지도 않은 적정선을 세련되게 잘 유지하시는 것 같아요.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 프로젝트를 발전 시켜서 다음 프로젝트로 연결하는 것도 너무 좋아요. 예를 들어 아까 언급했던 미술관에서 연주된 것을 다시 공연장으로 들여오거나, 재미있는 그림책을 직접 고르셔서 작곡자들과 협업하는 그림책 음악회 등, 범위는 넓지만 절대 어떠한 선을 넘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혹은 본인이 잘하고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레퍼토리가 무엇인지요? 더 나아가, 두 분 모두 현악앙상블 레퍼토리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것이 있으시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피예나: 저는 프랑스에서 공부해서 그런지 라벨, 드뷔시의 곡들을 좋아해요. 연주하면서도 너무 좋고요. 그런데 제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레파토리는 프로코피예프예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이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요. 한편 저는 요즘 바르톡의 <디베르티멘토>를 자주 듣고 있어요. 3개 악장으로 되어있고 길이는 25분정도 되는 곡이예요. 1939년 2차 세계대전으로 바르톡이 헝가리를 떠나기 직전 후원자의 의뢰로 알프스 휴양지에서 보름 만에 작곡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그런지 바로 다음 작품인 여섯 번째 현악 사중주는 매우 비통한데 비해 디베르티멘토는 그 짧은 시간이나마 바르톡이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였음을 알게 해주는 곡이에요. 각 파트의 솔로와 튜티가 번갈아 연주되며 주는 소리 질감의 대조, 예상치 못한 리듬과 다이내믹의 변화가 인상적인 곡입니다.
홍진선: 저는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를 좋아합니다. 그의 언어를 악기로 표현하는 것이 재밌고 그것을 악기로 연주하기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사중주를 포함한 그의 후기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 심오하고도 아름다운 곡을 귀가 안 들림에도 어떻게 썼는지?’ 알면 알수록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기회가 된다면 화음에서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해봤으면 하는 작품이 있으신지요?
피예나: ‘이번 공연은 어떤 곡을 할까?’라는 생각만 하고 ‘이 곡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네요! 좀 전에 말한 바르톡의 <디베르티멘토>도 기회가 된다면 해보고 싶습니다.
홍진선: 최근에 야나첵의 <현을 위한 모음곡>(Idyll suite)을 연주했는데 너무 재밌고 흥미로워서 화음과 연주하면 어떨지 궁금하고 하고 싶어집니다. [畵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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