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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音.zine vol.7] 무대 뒤의 이야기: 박현 & 임지희 '바이올린을 사랑하는 친구에게'
화음뮤지엄 / / HIT : 202

무대 뒤의 이야기

바이올리니스트 박현 & 임지희

‘바이올린을 사랑하는 친구에게’

김인겸 (음악평론가)

 

 

화음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두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당초 대면으로 진행하려고 했으나,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불가피하게 서면으로 진행했다는 사실을 먼저 밝힌다. 

 

두 분의 서면 답변을 읽으면서 필자는 과거에 읽었던, 예후디 메뉴인(Yehudi Menuhin, 1916-1999)이 쓴 『바이올린을 사랑하는 친구에게』가 떠올랐다. 절판된 지 오래돼서 구하기 쉽지 않은 책인데, 몇 년 전에 어느 바이올린 카페 회원분의 도움으로 힘들게 구한 책이다. 이 책에는 거장의 바이올린 연주에 관련한 다양한 노하우가 소박하면서도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무엇보다 책 전반을 관통하는 정서는 바이올린에 대한 사랑이다. 두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바이올린과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문장과 행간 곳곳에서 읽은 것이다.

 

어떤 계기로 화음에 입단했는지 궁금합니다. 

 

박현 : 제가 아직 유학 중이던 2004년, 화음의 제18회와 19회 정기연주회에 객원으로 참여하면서 당시 중국 심양과 북경 순회 연주까지 함께 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당시 배익환 선생님, 마티아스 북홀츠 선생님, 조영창 선생님, 미치노라 분야 선생님이 리더로 계실 때였고, 제가 너무 존경하던 선생님들과 한 무대에 섰던 설렘과 긴장, 그리고 너무 많은 배움에 벅찼던 순간들이었죠. 이후 2009년 귀국하면서 단원으로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임지희 : 저는 작곡가 김광희 선생님의 소개로 운지회 연주를 참여하게 되면서 화음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다른 연주단체, 앙상블과 구별되는 화음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박현 : 가장 큰 특징은 리허설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휘자가 없었던 때 만들어진 방식인데, 물론 리더 선생님들을 따르기는 하지만, 멤버 모두 무릎 위에 스코어를 놓고 전체 흐름을 파악하면서 연습했던 전통이 아직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내 파트가 전체 음악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먼저 알고, 각자 발견한 문제점에 대해 스코어 확인도 하고 질문도 하고 때론 토론하며 부딪히기도 하고요. 지금 지휘자가 있는 체제로 바뀌고서도 리허설 도중 아이디어를 내거나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이죠. 물론 시간적 한계로 모든 멤버의 아이디어를 듣고 수용할 수는 없을 때도 있지만요.  

 

임지희 : 공연 프로그램에는 관객들에게 낯설고 어려울 수 있는 국내외 창작곡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지만, 매번 참신한 주제와 기획으로 대중에게 어필한다는 점이 화음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연주자들과 감독님의 작품을 대하는 열정적이고 진지한 태도, 나이와 상관없이 한 명 한 명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따뜻한 분위기는 화음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훌륭한 분들과 함께 앙상블을 이룰 수 있다는데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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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박현

 

화음의 대표이자 예술감독인 박상연 선생님의 음악세계, 예술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현 : 언제나 앞서 계셨어요. 지금 돌아보면 화음을 창단하셨을 때 지금의 저보다도 젊은 연주자로 어떻게 그런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국내에 시도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추진하셨을까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이 가지고 계신 음악에 대한 변함없는 순수한 이상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씀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는데, 음악인으로 아직 우리는 길을 닦고 있는 중이고, 그걸 후대에 누가 지나갈지 어떤 풍경이 될지는 모르는 거라는 말씀이었어요. 당시에는 잘 와 닿지 않았는데, 순수음악을 한다는 건 당장 얻어지는 결과물로 보상받지 못할 부분이 있고, 그런 사명감으로 변함없이 걸어오신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임지희 : 작품을 대하실 때 같은 미시적인 영역에서는 작은 뉘앙스 하나도 놓치지 않으실 정도로 매우 세심하신데, 동시에 화음의 비전 같은 거시적인 영역에 있어서는 크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나무와 숲을 보는 안목을 모두 지니셨다고 할까요? 

언젠가 박상연 선생님께서 화음이 지나온 길을 고속도로를 놓는 것에 비유하신 적이 있습니다. 땅을 갈고 길을 내고 아스팔트를 까는 작업. 고되고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지난 30년간 박상연 선생님께서 개척자와 같은 역할을 묵묵히 감당해오신 것을 볼 때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화음에서 참여한 연주회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회는 무엇이며, 어떤 점이 기억에 남는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박현 : 하나를 꼽긴 어려운데, 처음 화음과 함께했던 2004년 정기연주회와 중국 순회연주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배익환 선생님과 함께 무대에 섰고, 모든 리허설이 너무 소중한 레슨과도 같았던 기억으로 특별합니다. 

그리고 2012년에 국제교류재단 주최로 간 유럽순회연주도 정말 평생에 두고 남을 연주 경험이었어요. 그때는 이경선 선생님, 김상진 선생님께서 리더로 계실 때였고, 코펜하겐에서 시작해 더블린까지 유럽 6개국을 순회했는데, 당시 화음프로젝트로 브라이언 수츠 선생님이 작곡한 <Six Cities>가 그 연주 여행 추억이 담긴 주제곡이 되었죠. 각 나라를 이틀 만에 이동하는 바쁜 일정이었는데도, 새로운 곳에서 연습하고 제네바 UN본부, 세르비아 국립극장 등 정말 다양한 무대에 오를 때는 집중력과 앙상블의 합은 최고였던 것 같아요.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대기 시간이 길어져서 당시 유행하던 플래시몹으로 공항 로비에서 연주도 했던 경험이 기억에 남습니다.

 

임지희 : 작년 12월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진행했던 레퍼토리 프로젝트 네 번째 공연 ‘세리오소’(Serioso)가 기억에 남습니다. 전문 연주장이 아닌 박물관의 콘솔레이션홀에서의 연주였는데요, 처음 무대 리허설을 할 때는 울림과 음향이 낯설었지만, 실제 공연 때는 관객이 들어차서 그런지 어떤 아늑함이 느껴졌어요. 박물관 곳곳에 경건한 기운이 가득했고, 심지어 무대로 사용한 공간 중 일부분은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성스러움과 알 수 없는 아늑함 때문인지, 베토벤 <세리오소 사중주>, 임지선 선생님과 그라나도스의 작품,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등 명곡으로 짜여진 프로그램을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몰입도로 연주했던 것 같습니다.

 

화음에서는 창작곡 연주와 고전 등 기존 작품 연주를 병행하는데요, 창작곡 연주와 기존 레퍼토리 연주와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그 차이점을 실제 연주에 어떻게 반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현 : 창작곡 연주는 초연하는 작품이 대부분이라 참고할 선행연주나 문헌이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에 해석하기까지의 시간이 걸리고, 작곡가들도 실제 연주를 접하면서 수정하게 되는 부분들도 있죠. 그래서 기존 작품들 연주보다는 아직은 설익은 채로 연주하게 되기도 하는데, 그래도 작곡가에게 의견을 묻고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게 의미 있습니다. 

기존곡은 수많은 해석 속에서 우리가 확신하는 부분을 밀고 나가거나, 지나쳤던 걸 발견하며 새롭게 해석해 나가는 즐거움이 있죠. 그리고 연주자가 한 사람이라도 달라지면 또 새로워지고요. 실은 새 작품이든 기존곡이든 좋은 작품이라면 큰 차이는 없어요. 음악의 실마리가 저절로 풀리기 때문에.

 

임지희 : 고전 레퍼토리는 작곡가의 특징, 스타일, 작곡배경, 형식 등에 대한 많은 정보와 연주 경험을 가지고 작품을 대하게 되고,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어볼 수 있는 등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참고자료가 많습니다. 반면 창작곡은 오롯이 악보와 작곡가의 곡해설을 가지고 작품을 해석하고 연주해야 한다는 점이 다른 것 같습니다. 대신 연주자의 상상력을 보다 자유롭게 반영할 수도 있고 궁금한 부분을 작곡가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다는 점은 창작곡 연주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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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임지희

 

화음프로젝트로 앞으로 연주하고 싶은 콘셉트의 연주회나 특정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박현 : 실내악 시리즈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연주했던 현악사중주들을 오리지널 버전으로도 연주하고 싶어요. 기존 큰 편성인 오케스트라 곡들을 실내악 버전으로 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고요.

 

화음 평론가의 비평문을 읽은 적이 있나요? 있다면 기억에 남는 글을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화음 평론가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박현 : 음악회 현장이 글로 남겨진다는 것은 관객과 연주자 모두에게 의미 있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처럼 좋은 글로 관객분들이 공감할 창과 이번 인터뷰처럼 연주자들과 함께 생각하고 논의해 볼 수 있는 프로젝트들도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임지희 : 앞서 언급했던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 연주의 비평문이 기억에 남습니다. 서주원 선생님 글이었는데요, 비평문 마지막 대목에 “숙달된 연주자들이 하나가 되어 내면에서부터 최대치를 끌어낼 때 태도에 장엄함이 서린다. 그 정신과 기운이 청중에게 전달되며 소리를 넘는 충족감을 주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요, 연주자가 무대 위에서 몰입하고 전심으로 쏟아낸 것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것을 확인할 때 큰 희열을 느끼게 되는데, 비평문을 통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어 더욱 기억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연주자(바이올리니스트 말고도 괜찮습니다)가 있다면 누구이며 어떤 점에서 존경하거나 좋아하는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박현 : 최근엔 크리스티안 테츨라프(Christian Tetzlaff*1966)의 연주를 좋아합니다. 그의 베토벤 협주곡 실연을 들었는데 베토벤의 의도를 가장 잘 살린 그의 카덴자가 정말 인상적이었고, 베토벤을 낭만적으로만 해석한 연주들 속에 고전적인 그의 해석과 섬세한 톤이 돋보였어요. 

 

임지희 :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프리츠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 1875-1962)를 좋아합니다. 그의 작품과 연주 스타일에서 젠틀한 우아함과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가 의대 공부를 그만두고 음악으로 진로 결정했을 때, 의사보다 음악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연주자의 길 선택했다는 점도 그런 크라이슬러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좋은 앙상블은 무엇이며 연주자로서 좋은 앙상블이 가져야 하는 요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현 : 연주력과 더불어 상대방을 듣는 귀, 소통 능력, 책임감 그리고 존중과 배려인 것 같아요. 꼭 음악연주단체가 아니어도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서든 협업의 기본 덕목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앙상블에선 개인의 역량만큼 조화의 태도와 기술이 중요하거든요. 화음과 같은 앙상블에서는 더욱 그렇구요. 단단한 생명력이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블렌딩 될 수 있는 소리의 유연함도 갖춰야 하고 맡은 파트에 책임을 다하는 연주자가 가장 앙상블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죠. 그리고 좋은 단체라면 그런 연주자 개개인을 소중히 생각해야 하고요.

 

임지희 : 저도 앙상블을 하며 배워가고 있는 과정인데요, 함께하는 팀원과 리더에 대한 신뢰, 개개인 각자의 책임감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바이올린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딱 세 가지만 조언 부탁드립니다.

 

박현 : 제가 딱 잘라 조언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하나씩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바이올린 파트만 보지 말고, 스코어를 읽으세요. 둘째, 음악만 공부하지 마세요. 셋째, 음악 안에서 진심으로 행복한 적이 있다면 계속 나아가세요.

 

임지희 : 음악을 공부하는 동기가 경쟁과 성취가 아닌 음악 자체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길 바랍니다. 다양한 장르의 좋은 음악, 좋은 연주를 많이 들으세요. 양치하고 세수하듯 꾸준히 기본기를 갈고 닦으세요. [畵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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