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 연주 에세이 - 모티브의 재발견 No. 6
드뷔시 <하프와 현을 위한 ‘춤’>
박현
(바이올리니스트, 화음챔버오케스트라 단원)
지난 5월18일 화음의 레퍼토리 프로젝트 공연에서 연주된 <Danse sacrée et Danse profane (신성한 춤과 세속적 춤)>은 이날 함께 연주된 미니멀리즘 어법의 현대작품들 사이에서 다채로운 화성 팔레트로 프로그램에 색채를 더했다. 드뷔시는 1904년 당시 반음계 하프(Chromatic Harp)를 개발한 플레옐 악기사의 위촉으로 이 작품을 구상했다. 반음계 표현이 자유로워진 새로운 하프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지만, 하프를 위한 협주곡 보단 실내악에 가깝다. 드뷔시는 하프와 현악오케스트라 편성을 통해 같은 ‘현악기’로 이룰 수 있는 이상적인 조화를 보여준다. 각각 현을 ‘퉁기고(발현)’, ‘마찰시키는(찰현)’ 주법의 원리는 다르지만 하프와 현악오케스트라는 이 작품 안에서 서로를 보완하고, 서로에게 동화된다.
1904년 작품의 초연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관객은 호응했지만, 가브리엘 포레와 비평가들은 “드뷔시의 특이한 화성은 흥미롭고 매력적이지만, 때론 불편하다.”1)고 평했다. 그 ‘불편함’은 아마도 모호함이 아니었을까. 드뷔시의 음악이 인상주의 그림과 연관 지어지는 이유는 그 모호함 때문일 것이다. 빛으로 경계가 흐릿해진 모네 그림 속 대상들처럼 드뷔시의 음악은 명확한 해결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의 ‘특이한’ 화성은 긴장과 해결을 따르지 않고, 순간의 분위기와 ‘인상’을 남긴다.
하프와 현을 위한 <춤>은 ‘성스러운 춤’과 ‘세속적 춤’으로 이루어진다. 제목에선 성음악과 세속음악으로 분류되던 르네상스 음악이 떠오른다. 드뷔시는 20세기 전환점에서 옛 음악에서 새로운 영감을 찾았고, 낭만시대 화성에서 벗어나긴 위한 시도 중 하나로 교회선법을 사용했다. 첫 악장인 ‘성스러운 춤’은 D 도리안 선법의 음계를 따른다. 당시 드뷔시와 가까웠던 작곡가 프란치스코 데 라체르다의 <하프를 위한 ‘성스러운 춤’>에 음계와 주제를 차용했다는 주장도 있다.2)
악보 1. 도입부, 첫 주제 모티브
1주제는 오케스트라 유니슨에 의해 제시된다. 그레고리안 성가와 같은 선형의 세 마디 모티브는 느린 3/2 박자로 부드러운 피아니시모 안에서 깊은 감정을 담아 제시된다. 셋잇단음과 사분음으로 리듬을 변형한 하프의 주제에 오케스트라가 피치카토로 응답한 뒤, 17마디부터 1바이올린에 의해 완전한 D 도리안 음계 안에서 주제를 펼친다.
하프와 오케스트라는 계속해서 서로를 모방하고 보완한다. 하프 선율은 1바이올린 유니슨에 힘입어 울림이 연장되고, 선적으로 채워진다. 오케스트라는 [악보 2]에서처럼 피치카토로 하프에 동화된 주법으로 선율을 받치며 음악의 질감을 통일시킨다.
악보 2. 하프 선율을 받치는 오케스트라의 피치카토
베이스, 첼로와 비올라가 시작한 피치카토에 바이올린이 합류하며 울림을 풍성하게 만든다. 이제 역할을 바꿔 하프는 이분음표 화성으로 오케스트라가 유니슨으로 연주하는 주제를 반주한다. 오케스트라의 주제는 메조 포르테로 음색이 진해졌지만, 연주자는 드뷔시 특유의 프렌치 음색을 고려해 활의 무게를 조절한다. 이때 활은 무게보단 속도를 더해 음량을 키우고 비브라토로 섬세한 뉘앙스를 만든다. 드뷔시 음색을 만들기 위해서 그가 영향을 받은 인도네시아 가멜란 음악이나 당시 프랑스 피아노처럼 베일에 싸인 음색을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음색은 하프가 만들어내는 순간적 울림과도 맞닿아있다.
하프와 오케스트라가 마지막으로 주제를 연주하고 D음을 지속하는 베이스의 페달톤 위로 하프가 리드믹한 종결구를 펼친다. 프란치스코 데 라체르다(Francisco de Lacerda) 주제를 연상시키는 이 아르페지오는 느린 점이분음표로 숨을 고르고 ‘세속적인 춤(Danse profane)’으로 이어진다. ‘세속적 춤’은 앞선 악장보다 생기가 더해진 3/4박자의 왈츠이다. 드뷔시의 <느린 왈츠(La plus que lente)>(1910)와 라벨의 <라 발스>(1920)에서처럼 비엔나 왈츠는 당시 그에게 익숙한 낭만적 소재였다. ‘세속적인 춤’도 앞 악장과 마찬가지로 조성이 아닌 선법 음계를 따른다. 왈츠는 D 리디안 음계로 다채로운 화성의 색채를 입고 재탄생된다.
악보 3. ‘세속적인 춤’ 도입부 주제
하프의 첫 박을 받아 오케스트라는 둘째 박에 왈츠 선율을 시작한다. 쉼표로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드뷔시는 선율 리듬에 작은 강세와 크레센도를 더해 방향을 지시했다. 느긋하게 시작한 왈츠 주제는 하프의 빨라진(Animez) 아르페지오와 이를 뒷받침하는 오케스트라의 피치카토로 활기를 얻는다. 다시 돌아오는 주제마다 이어지는 하프의 에피소드는 점점 화려한 솔로 변주를 보여준다. 템포가 두 배로 느려진 섹션(Le double moins vite)에서 하프의 리듬은 6:4로 복잡하게 펼쳐진다. 하프의 위 성부는 연결되게, 아래 성부는 명확하게 발음하며 대비를 이룬다. [악보 4]의 하프의 서정적인 멜로디는 1바이올린 유니슨에 힘입어 더욱 깊은 감정을 표현한다.
악보 4. 느린 구간의 하프와 1바이올린의 선율 유니슨
마지막으로 재현되는 주제에서 하프는 처음과 달리 박마다 꾸밈음을 더해 활기찬 엔딩을 예견한다. 하프의 긴 상행 글리산도로 드라마틱하게 시작된 종결구는 마디를 꽉 채우는 오케스트라 선율과 박마다 악센트가 더해진 하프의 화성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하프는 화려한 32분음 아르페지오로 변모되지만 절제된 템포로 리듬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고, 하프의 마지막음에 오케스트라가 함께 피치카토로 화답하며 왈츠를 끝맺는다. 하프와 오케스트라가 따로 또 같이 함께 추던 춤은 그렇게 같은 선상에서 멈춘다. [畵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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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emet, Mary, “Sheet Music Review: Claude Debussy’s Dances for Harp & String Orchestra”, Strings magazine, May-June 2023
2) Ferguson, Joan Laurel (1988), "Francisco de Lacerda and Claude Debussy's Danses: sacrée et profane", The American Harp Journal 11/4, pp. 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