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의 연주에세이 - 모티브의 재발견 No. 3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 1악장 모티브
악보1. 1악장 1주제 모티브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의 첫 주제 모티브는 매우 강렬한 인상으로 듣는 이를 긴장시킨다. 점이분음, 삼연음과 사분음을 타고 하행하다 이어지는 세 박자의 침묵. 모든 성부는 첫 네 마디를 통해 일제히 포르티시모의 음색으로 D단조 화성을 각인시킨다. 단순한 IV-V-i 진행이지만 첫 마디와 세 번째 마디 성부 배치를 보면 특별한 점이 발견된다. 얼핏 들으면 모든 성부의 음과 리듬이 동형 진행하는 듯하나,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의 내성만 하행하고 제1바이올린과 첼로의 외성은 D음을 반복할 뿐 움직임이 없다. 외성에 갇힌 채 움직이는 내성은 위아래로 막힌 공간에서 소리치는 것 같은 막막한 감정을 증폭시킨다. <죽음과 소녀> 시에 쓰인 다가오는 ‘죽음’을 향한 소녀의 절규일까. 슈베르트는 <죽음과 소녀>의 문학적 영감과 가곡의 선율을 2악장에 직접적으로 드러내는데1) 1악장에서는 언어 너머 내재된 감성을 음악적으로 풀어낸다.
슈베르트는 이렇게 섬세하게 계산된 음색 효과를 더해 첫 모티브에 드라마를 부여한다. 연주자로서는 둘씩 나뉘는 내성과 외성의 볼륨 균형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게 된다. 소리가 상대적으로 작게 들릴 수 있는 내성은 더욱 단단하게, 첼로의 개방현이 더해져 울림이 커진 외성에 파묻히지 않게 음량을 유지해야 한다. 두 소리의 대립이 팽팽할수록 ‘죽음’과 ‘소녀’의 대치하는 힘이 더욱 절박해질 것이다. 첫 두 마디의 리듬 모티브에서는 슈베르트가 따랐던 베토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마디의 마지막 박에 나오는 특징적 삼연음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의 연타음을, 이어지는 쉼표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7번>, <현악사중주 Op.95>의 도입의 극적 침묵을 연상시킨다.
앙상블로 첫 마디에서 삼연음의 시작을 완벽하게 맞추기는 결코 쉽지 않다. 긴 음의 박자를 얼마나 채워서 지속할지, 박을 어떻게 느낄지 통일하지 않으면 마지막 박의 시작점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포르티시모의 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마지막 박에서 활의 아래 부분으로 돌아오는 리테이크(Retake)의 타이밍도 계산되어야한다. 4/4박자로 표기되어있지만 프레이즈는 2/2박자의 흐름으로 연주하게 되는데, 첫 모티브의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는 오히려 매 박을 삼연음으로 쪼개어 느끼는 게 도움이 된다.
본격적인 제시부의 전개를 보면 삼연음 리듬이 악장 전체에 얼마나 중요한 도구로 쓰이는 지 알 수 있다. 삼연음은 성부를 옮겨가며 긴박한 동력을 이어가고, 첫 주제가 반복될 때 처음 침묵으로 남겨졌던 박자를 채우며 크레센도의 폭발하는 에너지를 만든다. 지속적으로 따라오는 삼연음의 긴박함에선 슈베르트 가곡 <마왕>의 말발굽 소리를 표현하는 피아노의 삼연음이 떠올려진다. 첫 주제에서 스타카토로 짧고 강하게 제시되었던 삼연음은 2주제에서는 슬러가 더해진 부드러운 모양으로 변모되어 선율을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