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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레퍼토리 프로젝트 Life Ⅰ: Moments of Life] 고통이 있어 아름다운 오늘 여기, 이 순간
노지은 / 2024-04-29 / HIT : 291

고통이 있어 아름다운 오늘 여기, 이 순간

(음악평론가 노지은)

 

화음챔버오케스트라 래퍼토리 프로젝트

Life 1: Moments in Life (삶의 순간들)

2024년 3월 30일(토) 오후 2시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

 

 

고통의 인생, 그리고 음악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최근 서점에 갔다가 발걸음을 멈춰 서게 한 책의 제목이자,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이었다. 한 때 “꽃길만 걷자”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져나가던 때가 있었다. 필자는 ‘삶은 과연 꽃길만 걸을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하며 썩 달가워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만약 꽃길만 걷자는 말에 의지하다 불행이 닥치면 ‘꽃길만 걸어야하는’ 그 의지가 좌절될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차라리 인생은 고통스러운 것이기에 그것을 받아들이자고 한다면 작은 행복에도 더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래서일까. 쇼펜하우어의 이 말은 필자에게 ‘그래, 맞아!’하며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그의 철학과 삶에 대한 메시지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고, 특히 예술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은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는 이 세계가 삶의 의지로 가득 차 있기에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현실은 ‘삶의 의지’라는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날 방법도 없을 뿐더러, 죽음을 통해 완전히 제거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는 예술을 언급했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인간은 예술작품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의지와 고통을 잊고 시간을 초월한 마음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그는 여러 예술 분야 가운데서도 음악을 최고의 수준으로 여겼는데, 음악은 회화나 조형예술처럼 모방이나 재현이 아니라 “의지 자체의 모방”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음악은 모방 없이 직접 인간의 마음을 울린다. 특히 가사가 없는 기악음악은 선율만으로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그는 음악이 가진 이 힘이 고통스런 인생을 어느 정도 위로할 것이라 믿었다. 

 

 

음악으로 펼쳐진 삶의 순간들

 

 오늘날에도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마음의 울림을 주며 메시지를 전하는 이들이 있다. 그중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꾸준히 미술과 음악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예술세계의 지평을 열어왔다. 이들은 올해 첫 레퍼토리 프로젝트의 순서로 “Moments in Life (삶의 순간들)”이라는 주제를 선보였다. 이날 화음의 공연은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이라는 음악을 위해 최적화된 공간에서 이뤄졌으며, 다른 공연들과 달리 미술작품이 등장하지 않은, 순전히 음악에 집중된 공연이었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마음을 울리는’ 기악음악을 기대해볼 만 했다.

 

 첫 곡 하워드 구달의 “그리고 다리는 사랑이어라”는 첼로와 현악 앙상블을 위한 작품으로, 2007년 9월에 비극적으로 사망한 친한 친구의 딸을 추모하기 위해 작곡된 곡이다.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낸 넘실거리는 수면 위로 협연자 이길재의 첼로 연주는 백조의 우아한 몸짓이 되어 애절하게 호소한다. 이에 더해진 하프의 음색은 물가에 물에 비친 반짝이는 윤슬처럼 음악을 아련히 빛내준다. 이 곡은 ‘죽음’에서 비롯되었지만 해설자 송주호의 말처럼 ‘사랑’과 ‘생명’을 더 느끼게 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한, 어쩌면 고통 속에 피어난 이 음악이 새로운 생명을 얻는 순간이었다.

 

 임지선의 더블베이스 협주곡 “뜻밖의 기쁨” (화음프로젝트 Op.100)은 오케스트라에서 주목받지 못한 콘트라베이스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싶은 작곡가의 바램이 담긴 곡이다. 이 날 협연한 베이시스트 조재복은 입장할 때부터 여유 있는 미소로 음악이 끝날 때까지 마치 뜻밖의 기쁨을 발견한 사람처럼 활기차고 생동감 있는 연주를 보여주었다. 음악은 경적을 울리며 달리는 기차가 연상되는 분위기로 시작되어, 변화무쌍한 템포와 악상의 변화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에 박상연 지휘자와 연주자들은 빠르게 달리는 듯한 음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다이나믹하게 살려내 몰입감을 더한다. 조재복의 호탕한 연주와 디테일한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호흡은 뜻밖의 기쁨, 그 이상을 선사해준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중 4악장 “아다지에토”는 그의 아내 알마에게 바치는 사랑의 노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이 돋보이는 곡이다. 보헤미아 지역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대부분의 여생을 오스트리아에서 보낸 말러는 자신을 ‘어디에서나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로 묘사했다. 또한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상실감에 평생 죽음이라는 주제에 매달렸다고 한다. 때문에 고통의 산물인 그의 음악은 남다른 무게가 있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말러의 교향곡을 연주하기에는 다소 작은 규모이지만, 이 아다지에토를 연주함에 있어서는 큰 무리가 없었다. 지휘자 박상연은 이 곡에서 만큼은 폭넓은 제스처를 통해 음 하나하나 포용하듯 풍부하게 이끌어내고, 오케스트라는 흡입력 있는 연주로 몰입감을 더한다. 이는 말러가 생전에 심취했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선율만으로 마음을 울리는 음악을 보여준다.

 

 마지막 곡 백병동의 “흐르는 강물처럼”은 ‘강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심정으로 지나온 길을 되씹으면서’ 쓰여진 작품이다. 그렇기에 듣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음악이다. 흘러가는 강물처럼 그저 음악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면 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음악을 업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마음 편히 음악을 듣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런 필자에게 작곡가의 의도처럼 음악에 나를 맡기는 감상은 좀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특히 말러의 서정적인 곡 다음에 나와서인지 상대적인 현대음악의 난해함은 피할 수 없었다. 다만 이 음악을 들으며 강물처럼 우리 삶도 기분 좋은 바람을 타고 흐를 때도 있고, 풍파 속에서 힘겹게 흐를 때도 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마치 인간의 의지를 거스르는 대자연을 그리듯 대담히, 때론 이에 순응하듯 담담히 음악을 흘려보낸다.

 

 모든 순서가 끝나자 앙코르 곡으로 헨델의 “라르고”가 차분히 울려 퍼졌다. 이 곡은 사실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Serse)에 나오는 아리아 “어디에도 없던 나무 그늘이여(Ombra mai fu)”가 원곡이지만 기악으로 편곡된 “라르고”로 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 친숙한 이 음악이 흘러나올 땐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왜 바로크시대의 이 작품일까.’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앞서 연주된 음악들과 동떨어진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힘을 빼고 음악을 듣기 시작하자 비로소 이 음악이 삶에 지친 이들을 감싸 안고 위로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한결 편안해진 단원들의 표정과 연주에선 여유와 평온함이 묻어난다. 이것이 바로 쇼펜하우어가 말한 음악의 힘이었을까.

 

 

고통이 있어 아름다운

 

 “고통을 잘 이겨내는 방법을 아는 것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산 것이라는 말과 같다. 고통을 통해 힘이 솟구치며 고통이 있어야 건강도 있다. 가벼운 감기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푹 쓰러지는 사람은 언제나 ‘건강하기만’ 한 사람들이며 고통 받는 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다. 고통은 사람을 부드럽게도 만들고, 강철처럼 단단하게도 만들어준다.”

 

 헤르만 헤세는 ‘고통’에 대해 자신의 글 <삶을 견디는 기쁨>에서 이와 같이 이야기한다.

 

 삶에서 경험하는 고통의 순간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통의 순간을 겪은 이는 고통스럽지 않은 날들을 사랑하게 되고,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고통의 순간이 또 오더라도 이겨낼 힘이 있다.

 

 이날 “삶의 순간들”이라는 주제로 열린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 프로젝트 첫 번째 순서에서 만난 음악들은 모두 각기 다른 삶의 순간들을 보여준다. 각각의 음악들은 나름 고달픈 인생들을 위한 나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간의 삶은 불완전하기에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계속해서 ‘삶의 의지’로 인해 좌절되기도 하며, 크고 작은 고통 속에 흘러간다. 그러나 고통이 있기에 인간은 음악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것이며, 음악이 주는 힘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개개인의 삶을 넘어 화음의 행보도 다시금 생각해본다. 미술과 음악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구축하며 아무도 고집하지 않은 이 길을 걸어온 화음의 발자취. 이들은 음악현장에서 소외되기 쉬운 우리 현대음악과 음악평론까지 감싸 안고 간다. 이러한 화음의 대담한 시도와 이에 따른 고통의 시간들은 오늘의 화음을 있게 한 힘이다. 쇼펜하우어는 행복한 삶에 이르기 위해 타인이 아닌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누구나 가는 길이 아닌 내가 가는 길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화음은 충분히 의미 있는 여정 속에 있다. 고통이 있어 아름다운 오늘 여기, 이 순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