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30년을 여는 힘
서주원(음악평론가, 음악학박사)
제44회 정기연주회 '화음 30주년 기념 I: 고전'
2023년 6월 24일 (토)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한결같은 우직함
30년을 기념하는 연주회였지만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의미는 각별했으나 요란한 홍보도 없었고 떠들썩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긴 시간 우직하게 걸어온 그 길에서 다만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으로 보였다. 통상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는다. 그런 의미에서 화음은 이제 새 시대로 접어들었다. 표면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이는 이유는 그 행보가 촘촘하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날도 화음은 30년간 버텨온 음악 현장을 여전히 지키고 있었다.
새 30년을 여는데 지난 30년의 시간과 경험은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버팀목이 될 터이다. 그러나 견고한 기반을 갖춘 화음이 미더운 만큼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도 있다. 그것은 변화의 바람이다. 근래 화음 연주는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연륜 있고 노련한 프로 연주 단체로서 언제나 기본 이상의 연주를 선보이지만 때로는 기대를 뛰어넘는 연주가 기다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현악챔버오케스트라는 특수한 앙상블이지만 비슷한 결의 소리로 구성되기 때문에 자칫 일률적으로 흐르게 될 위험도 있다. 감상자의 귀는 소리에 빠르게 적응한다. 편성이 크게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레퍼토리가 좋다 할지라도 이내 익숙한 소리들의 연속으로 들릴 수가 있다.
이러한 문제는 한 달 앞서 연주된 ‘레퍼토리 프로젝트’(2023년 5월 20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도 드러났다. 1부는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 14번 ‘죽음과 소녀’>, 2부는 장석진의 <카프카: 1권>과 쇤베르크의 <현악육중주 ‘정화된 밤’>이었다. 슈베르트와 쇤베르크의 작품은 각각 현악사중주와 현악육중주를 현악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한 것이다. 슈베르트의 곡은 말러가, 쇤베르크의 곡은 쇤베르크 자신이 편곡했다. 세 작품은 순서대로 죽음, 불안, 충격적 고백 같은 극적 내용과 정서를 담고 있었다. 작품의 완성도나 연주는 탁월했지만 연주의 효과는 오히려 감소된 듯 보였다. 모두 묵직한 주제와 두터운 음향이었기에 중간 휴식이 있더라도 전반부 40분, 후반부 40분을 연달아 듣기에는 다소 버겁게 여겨졌다. 연주자들의 연주력이나 집중력은 후반부라고 해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곡인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은 화음챔버 연주 중에서도 손꼽을 만큼 좋은 연주였다.
아쉬웠던 점은 성격적 대비였다. 원곡이 현악사중주이든 현악육중주이든 현악오케스트라로 편곡된 버전이어서 한 가지로도 충분한 메인요리가 두 번 연달아 나온 것 같았다. 악기 편성(편곡)의 문제와 관련해서 다른 편성, 독주 또는 소규모 실내악,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문제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즉 비슷한 결이 반복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이전 연주회를 여기에서 논하는 이유는 2부에 연주된 브루크너의 <실내교향곡> 때문이다. 현악오중주를 현악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했다. 어떤 편성이든 현악오케스트라 작품으로 편곡해서 연주하는 것은 화음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강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에 브루크너의 <실내교향곡>은 마치 지난 번 연주의 연장선에 있는 듯 했다. 현악오중주에 비해서 규모는 커졌지만 풍성하고 입체적이라기보다는 평면적이고 단조롭게 느껴졌으며 예상 가능한 분위기와 표현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편곡으로 연주하는 목적은 특정 편성을 통해 이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새로운 감상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지금 편곡의 문제에 대해서 논하지만 편곡자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화음이 레퍼토리를 결정하는데 현악챔버만을 위한 작품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소규모 실내악, 혹은 오케스트라 작품을 현악챔버를 위한 작품으로 편곡해서 연주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화음이 지금까지 위촉한 창작곡은 이제 224개에 이를 만큼 쌓여 있다. 이는 우리 음악계에 기념비적 성과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창작곡만으로 연주회를 계속하기에도 여러 가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방대한 고전의 창고에서 작품을 가져와 편곡하는 것이다.
즐거운 음악 시간
여기에서 좋은 감상 경험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수많은 기준이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하나의 주제와 흐름 안에 대조가 적절히 들어가 있을 때 감상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기승전결의 큰 짜임새 속에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조절하며 마지막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야 한다. 작게는 각 성부의 대비부터 음색·악상·악장의 대비, 그리고 크게는 작품 사이의 대비까지 효과적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을 면밀히 설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요소들이 연달아 있더라도 전체적 효과는 반감된다. 모든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 결과적으로 어떤 것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이날 화음챔버가 연주한 브루크너의 <실내교향곡>은 편곡과 연주가 충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주 효과 측면에서 공들인 만큼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결같음’은 한 단체를 지속시키는데 결정적 원동력이지만 연주 실제에서는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반면 1부에 연주된 하이든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화음챔버의 강점을 충분히 살린 호연이었다. ‘고전’이라는 주제에 걸맞은 작품에서 화음의 탄탄한 실력과 긴밀하고 유연한 호흡을 보여주었다. 18세기 말에 고전 음악은 본래 청중을 고려하며 발전하기 시작했다. 후원자는 물론 대중들의 호응이 작곡가의 생존과 성공에 중요한 요소가 됐다. 작곡가들은 호소력이 있으면서 청각적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하고자 했다. 하이든은 고전 초기에 가장 성공한 작곡가로서 연주자와 감상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협주곡들을 작곡했는데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그중 하나다. 이날 협연은 화음에 오래 몸담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이보연이 맡았다. 그녀는 카덴차를 직접 작곡해서 연주해 연주자 고유의 기교와 음악성을 극대화해서 보여줄 수 있는 카덴차의 의미를 신선하게 살려냈다.
협주곡 연주에서의 화음의 차별성은 이번 연주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바이올리니스트 이보연은 화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연주자다. 오랜 시간 함께 하며 음악적으로 서로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연주자를 협연자로 세울 때 서로에 대한 감응력은 매우 높아질 수밖에 없다. 대개의 연주회에서 협주곡은 오케스트라 공연 1부에서 외부 연주자를 초청해서 연주한다. 짧은 리허설 시간 동안 지휘자와 협연자, 오케스트라는 서로 충분히 파악하기 힘들다. 게다가 많은 오케스트라의 고질적 문제이기도 한데 협주곡 연습을 소홀히 한다는 인상을 떨치기 어렵다. 2부의 오케스트라만을 위한 작품 연주와는 질적으로 큰 차이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해외 유명악단이라고 해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는 것을 종종 본다. 하이든의 작품에 담긴 변화무쌍함과 재치와 유머를 순간순간 살리기 위해서는 고도의 통제력과 작품에 대한 통달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화음챔버가 하이든 협주곡에서 보여준, 섬세하게 주고받는 호흡과 자신감에 찬 활력은 작품의 묘미를 살리는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보연은 자연스럽고 힘찬 연주력으로 음악을 장악하는 연주자다. 그녀의 활은 음악이 응당 가야만 하는 그 길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는 듯 보인다. 음악감독이자 지휘자 박상연의 지휘봉은 협연자와 음악적으로 부딪치지 않으면서 현악챔버가 음악에 필요한 긴장감과 균형감을 계속적으로 유지하도록 조율했다. 힘차게 나아가면서도 서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의 연주는 친밀하고도 매력적인 하이든의 음악과 어우러져 흥미진진한 음악적 경험을 선사했다.
첫 연주곡 역시 감상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김은성의 <Vivo for Strings>는 이번 정기연주회를 위한 공모당선작(화음프로젝트 Op.224)으로 세계초연됐다. 작품 이름의 ‘Vivo’는 이탈리아어로 “살아있는, 생생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신선한 선율과 활기찬 리듬이 귀에 착 감겼다. 투명한 음향 속에서 낯선 듯 친숙한 주제가 경쾌한 반주 위에서 펼쳐졌으며, 반복과 대조를 적절히 활용해 음악적 기대감을 충족시켰다. 또한 하이든과 브루크너의 음악을 인용하는 재치가 돋보였으며 즉흥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선율은 물론 리듬과 화음도 전략적으로 구성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음악적 장치를 인지하든 그렇지 않든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게 감상하게 만드는 음악적 재미가 두드러졌다. 의미를 안다면 더 풍성히 즐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인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프로그램 노트에 실린 작곡가의 인터뷰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결국 음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재미’입니다. 청각적 유희이든 사유적 유희이든 청중이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에서 ‘청각적 유희’와 ‘사유적 유희’는 다른 말로 하면 재미와 의미일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작곡가의 창작 작업에서부터 작품을 연주하는 연주자, 그리고 감상자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중요한 가치다. 재미가 없으면 쉽게 지루해지고 의미가 없으면 이내 공허해진다.
재미, 또 다른 30년을 이끌 힘
연주의 측면에서 화음이 보여주는 특별한 지점이 세 개가 있다. 이날 연주곡을 역순(브루크너-하이든-김은성)으로 대입해 살펴보면, 첫째, 기존의 연주곡들을 현악챔버 버전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협주곡 연주에서 기존 오케스트라와 차별화된 수준의 연주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셋째, 창작곡을 연주할 때 한국 창작곡 연주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넘어 남다른 애정과 헌신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장단점이 공존하는 첫 번째 특징은 앞으로도 화음이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사항일 것이다. 두 번째는 계속적으로 기대되는 특징이다. 마지막 특징, 즉 창작곡 연주에 힘을 싣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조금 힘을 빼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을 연주에 담아내면 어떨까? 작품을 잘 연주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충실하게 연주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작품이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를 잘 살려내는 것도 중요하다. 특별히 이날 연주한 김은성의 작품은 음악적 농담이 담긴 유쾌한 작품이었다. 농담을 잘 하려면 화자가 먼저 웃어서는 안 된다고는 하지만, 너무 진지하게 말하면 청자는 농담인지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이런 경우 즉각적 반응을 일으키는 재미가 크게 감소된다.
30년간 한결같이 뜻 깊은 길을 성실히 걸어온 화음챔버가 살려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음악적 즐거움이 아닐까? 앞서 언급했듯 18세기 말 고전 음악은 많은 청중이 즐기는 공공 음악회를 힘입어 발전했다. 이 시기에 후원자와 청중을 만족시키는 것은 음악가의 생존과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몇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청중의 중요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진지함과 재미를 갖춘, 감상자가 기꺼이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음악회를 만든다면 이는 화음이 앞으로의 30년을 가뿐히 지속하게 만드는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다. [畵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