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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畵音 Project'에 다녀와서
김동준 / 2006-07-31 / HIT : 1112

‘畵音 Project’라는 이름으로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서호 갤러리에서 매달 셋째주 토요일에 열리고 있는 이 기획 공연은 창작곡 수용의 측면에서 신선하고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2002년에서 시작되어 모두 38회째의 공연을 치루었는데, 그동안 화음 프로젝트에 참가한 작곡가들을 Op 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Op.1-10 
강은수, 임지선, 김성기, 이강율, 이경미, 김성기, 김성기, 김은혜, 조인선, 백승우,
Op.11-20
윤영숙, 조인선, 황성호, 김성기, 이영자, 전상직, 임지선, 김동수, 김성진, 백영은, 
Op.21-30
백병동, 윤성현, 장덕산, 이신우, 박은혜, 우동희, 길일섭, 김혜자, 임준희, 이현주, 
Op.31-38
홍수연, 김청묵, 이영조, 박동욱, 김성기, 최은진, 정석용, 황동옥,

화음 프로젝트에서 연주된 창작곡들은 세 가지의 제한적인 조건 아래에서 쓰여진다. 우선 전시가 결정된 화가의 그림을 바탕으로 작곡을 해야한다는 것, 곡의 길이가 8분 안팎이라는 것, 그리고 실내악의 편성을 기본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은 작곡가들에게 작품을 쓰는 데에 커다란 어려움을 주진 않는다. 특히나 첫번째 제한조건은 때로는 즐거운 제한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창작곡을 들으러 오는 청중들에게는 더욱 그럴 수 있다.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시각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음악을 듣는 동안 그림을 보느라고, 음악을 완전히 집중해서 듣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지만, 창작곡을 재미있고, 흥미롭게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화음 프로젝트’의 한 번의 연주회는 중간휴식 없이 50분에서 60분 정도로 계획되는데, 창작곡은 프로그램의 중앙에 위치하고, 앞 뒤로 독주곡이나 다양한 실내악곡이 위치하게 된다. 함께 연주되는 실내악곡들은 창작곡의 편성과 유사한 편성으로 구성된다. 이렇게 한번의 연주회에서 초연되는 창작곡의 비중은 작품의 길이로 본다면 그렇게 크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화음 프로젝트’의 핵심은 미술과 음악의 연계에 의한 창작곡의 위촉과 이를 일반청중들에게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에 있다고 보여진다.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서호 갤러리를 한 달에 한 번 찾는 청중들은 전문적인 매니아 층으로 볼 수는 없다. 당연히 청중 가운데는 연주자, 작곡가, 화가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청중들은 가족단위로 주말 나들이를 하는 사람들이다. ‘화음 프로젝트’라는 이름 외에도 미술관 측에서는 ‘미술이 있는 가족음악회’라는 부제를 붙여 일반 청중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들의 주목적이 각 연주회에서 연주되는 창작곡을 듣는 데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 청중들은 ‘화음 프로젝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서 서호 갤러리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내악단 畵音 연주자들의 뛰어난 실내악 연주, 그리고 연주회의 무대가 되는 서호 갤러리의 쾌적함-벽의 한쪽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으며, 자연적인 경관을 즐길 수 있다-, 음악회 앞뒤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각 연주회에서 발표되는 창작곡을 매우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한 두 번 화음 프로젝트를 찾은 청중들의 의식 속에는 창작곡에 대한 흥미로움도 서서히 자리를 잡을 것이다. 작곡가들의 입장에서는 아마도 이 점이 ‘화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쁨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신들이 창작곡들이 단순히 발표되는 차원에서, 공감의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을 현장에서 목격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5일 공연은 이제 Op.38을 맞이한 ‘화음 프로젝트’의 다양한 가능성을 잘 보여주었다. 호의주의보로 인해, 평소보다 분명히 적은 사람들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깨고, 오히려 평소보다도 더 많은 청중들이 연주회에 찾아왔다. 대략 100여명의 청중이 함께 했었던 것 같다. 이날 참여한 작곡가는 황동옥이었다. 그는 정충일의 회화작품을 바탕으로 클라리넷, 첼로, 피아노를 위한 ‘Circulation’을 썼다. 연주회 시작 전에 미술작가 정충일이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서 간략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그 이후 보케리니의 첼로 소나타와 드뷔시의 첼로 소나타가 첼리스트 최정주, 피아니스트 민경식에 의해 연주되었다. 그리고 나서 황동옥의 ‘Circulation’이 클라리넷 박정환, 첼로 최정주, 피아노 민경식의 세 연주자에 의해 연주되었는데, 작품 연주 직전에 작곡가 황동옥이 청중들에게 자신의 작품이 미술작품과 어떠한 연계성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미술 작품에 나타난 조형적인 요소들을 어떻게 음악으로 표현했는지 등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황동옥의 설명에 의하면 ‘Circulation’은 3개의 악기, 3부 형식, 그리고 반복적인 리듬을 바탕으로 정충일의 작품에 나타난 순환성을 소리화 한 작품이었다. 미술작품의 화면에 나타나있는 분명한 대조적인 성격의 조형요소들은 황동옥의 작품에서도 세 악기의 대조와 분명하고 힘있는 운동감으로 표현되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정충일의 그림 속에 사용된 색채와 황동옥의 음악 속에 표현된 색채, 즉 화음 사용이었다. 정충일의 그림 속에서는 하나의 색채가 주된 색채로서 화면의 넓은 면에 자리를 하고 있었고, 다른 몇가지 색채가 변화로서 혹은 대조로서 불규칙적인 면으로 화면 곳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주로 피아노를 통해서 표현된 ‘Circulation’의 화음은 그보다는 다채로운 색면으로 구성되고 변화되는 느낌을 주었다. 조형요소 가운데 색이 가장 주관적인 것이라는 점을 ‘화음 프로젝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날 연주회는 베토벤의 피아노 트리오, Op.11로 마무리 되었고, ‘Moon River’와 피아졸라의 ‘Grand Tango’를 앙콜로 들을 수 있었다. 

연주회 후에 청중들은 계속해서 갤러리 안에 남아 그림을 보고, 화가, 작곡가, 그리고 연주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러한 행위들은 누군가의 주선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프랑스 파리에서 창작곡 혹은 현대곡 수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기존에서 많이 하는 끼워 듣기 방식이다. 오케스트라의 정기 연주회나 실내악 연주회 등에서 그다지 길지 않은 작품들을 한 곡 정도 삽입해서 연주하는 방식이다. 또 하나는 현대음악이나 창작곡만을 위한 연주회인데, 이 경우는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한 명이나 여러 명의 작곡가를 조명하기 위해서 그들의 작품을 연주하는 경우, 또 하나는 프랑스에서 잘 알려진 EIC(Ensemble InterContemporaine)이나 Ensemble 2e2m 처럼 현대음악이나 창작곡만을 연주하는 단체에 의한 연주회의 경우이다. 또한 파리에 위치한 라디오 프랑스가 주관하는 주제 음악회에서는 매달 한 번씩 다양한 현대 작곡가의 작품들을 무료로 들을 수 있기도 하다. 파리에서 현대음악을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는 EIC의 주 연주회장인 Cité de la Musique의 연주회장이다. 그러나 라디오 프랑스의 무료 음악회를 제외하고는 어느 경우에도 연주회장을 채우는 청중들은 노장년층이다. 나는 이들이 정말로 현대음악이나 창작곡 연주를 좋아해서, 즐기기 때문에 연주회장을 찾는 것인지 의심을 가질 때가 종종 있다. 물론 이들의 새로운 것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 나의 의문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도 있다. 또한 확실한 시즌제로 1년 전의 프로그램을 발표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인기가 더 많은 고전이나 낭만파 프로그램과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연주회 프로그램을 패키지로 묶어서 판매하는 것도 이유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들 현대음악 앙상블이나 음악회 프로그램들은 프랑스 정부나 지역단체의 지원이 없다면 거의 대부분이 존재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 사정이다. 

현대창작곡이 연주되어야 하는 당위성은 굳이 말할 필요 없이 음악계의 모든 사람들이 고민해야하는 주제이다. 과거 유럽사회에서 작곡은 귀족이나 경제력을 지닌 연주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20세기에 와서는 창작곡의 위촉은 불행하게도 연주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오히려 매우 드문 것이 되었다. 작곡을 마친 뒤에 연주자를 찾는 문제의 양상도 더욱 어려운 것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나 단체에 의한 지원의 문제는 창작자에게는 매우 절실한 것이다. 하지만 파리의 창작 현실을 보면서 어떠한 정치적인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물론 이는 어느 사회이든지 마찬가지로 발생하며, 특히나 한 국가의 수도에서는 더욱 자주 그러한 양상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평론가들의 악평이나 일반 청중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몇몇 작곡가들의 작품은 큰 공연장에서 끊임없이 연주되기도 하고,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일단 창작곡을 공연장에서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매우 많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음악과 청중의 공감이나 교감에서는 회의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畵音 Project’의 개념과 역사는 실내악단 화음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실내악단 화음이라는 이름으로 갤러리 음악회를 시작했고, 이는 당시 한국음악계에는 신선한 시도로서 받아들여졌다. 실내악의 활성화와 클래식 음악이 연주되는 공간의 변화와 이로 인한 클래식 음악의 수용의 유연성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화음 프로젝트는 실내악의 활성화를 지속하면서 미술과의 새로운 연계성을 모색한 것이다. 초기에는 갤러리라는 공간이 배경적인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창작의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지금은 ‘화음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초기에는 이 ‘화음 프로젝트’는 ‘자화상 프로젝트’로 구상되고 알려졌다. 여기에 대한 이유와 화음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박상연의 생각과 계획을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 소개하겠다.

김:초기에는 ‘자화상 프로젝트’로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박:네, 그랬지요. 개인적으로는 ‘자화상 프로젝트’가 더 애착이 가는 이름입니다. 제가 그렇게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음악을 통해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음악을 통해서, 우리들 자신의 정서를 확인해 보자는 뜻이 있었지요. 

김:그렇다면 화음 프로젝트로 이름을 바꾼 이유는요?

박:사실 이 일은 오래전부터 계획을 해 왔고,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 할 생각입니다. 화음 프로젝트가 Op.100 정도에 이르렀을 때에 그 가운데 정말로 좋은 작품이 두 서넛 나올 수 있다면 좋겠지요. 그리고 지금은 여러가지 사정상 서호 갤러리에서만 이 일을 하고 있는데, 나중에 여건이 된다면, 다른 지역에서도 이 프로젝트를 추진해 보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다른 지방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아시아권 국가의 지역이 될 수도 있고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금 다른 이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혹은 전시장에 와서 ‘자화상’ 프로젝트인데 그림들은 자화상이 아니지 않느냐는 질문도 있고 해서, 그때마다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좀더 간결하고 분명한 이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김:이 계획을 추진하면서 남다르게 느끼시는 바가 있을 텐데요.

박:초기에는 저도 반신반의하는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꾸준하게 찾아오는 청중들을 보면서 이제는 나름데로 만족도 있고, 희망도 갖게 되었습니다. 몇가지 얘기할 수 있겠지만, 우선 화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작곡가들의 반응이 매우 좋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음악이 연주되고, 수용되는 과정이 조금 남다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연주자들도 매우 흥미로운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꾸준하게 화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연주자들은 창작곡을 계속 연주하다 보니까, 베토벤이나 브람스와 같은 작곡가들의 악보를 다르게 보게 되더라는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연주자들이 베토벤이나 브람스와 같은 대작곡가의 권위와 이미지 속에 갇혀있던 틀에서 벗어나, 정말로 순수하게 악보만을 통해서 그 안에 담겨진 내용을 보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저는 받아들입니다. 사실 좋은 음악가라면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화음 프로젝트를 하면서 제가 희망했던 것은 청중, 작곡가, 연주자가 분리되지 않고 서로 공감하는 현장이었습니다. 음악이 탄생하는 과정 속에 청중들이 공감하면서 참여할 수 있는 현장이랄까요, 그런 것이었습니다. 

김:국악 연주자들의 참여도 보이는데요.

박:1년에 두 차례 국악 연주자들을 참여시키고 있습니다. 연주회 끝나고 뒷풀이를 하면서 얘기를 하다 보면, 바로 옆동네에 살고 있었는데 서로 모르고 지내고 있었구나 합니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2년 만에 다시 찾은 한국은 나에게는 다르게 인식되었다. 인터넷 강국이라는 말에 걸맞는 모습들이 이곳 저곳에서 보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서울 시민들은 핸드폰과 인터넷 중독환자들처럼 보였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은 아마도 우리 시대를 두고 하는 말일 것 같은데, 우리는 너무나 많은 정보, 그 정보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광고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매우 위험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 이미 우리가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무감각해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더 이상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디가 아픈지도, 어디를 치료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전세계적인 문제이지만, 이러한 매체의 발달로 우리는 더욱 소외의 심각성을 느끼게 된다. 정보가 많고, 문화적인 경험의 기회가 많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음악이 만남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畵音 Project’가 다시 일깨워주었다.

참고:www.hwaum.org 에 접속하면 그동안 ‘畵音 Project’에 소개된 그림과 음악들을 보고 들을 수 있다. 

김동준은 현재 파리 근교에 거주하고 있으며,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을 전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