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
2015년 9월 18일 화음챔버 오케스트라의 “조선통신사 프로젝트” 공연 평론
하나의 음악이 우리 곁에 ‘작품’으로 명명되기까지는 음악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 문화적 배경이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이날 연주된 루 해리슨(Lou Harrison, 1917-2003)의 <타령>(a Taryong arranged in Quintal Counterpoint, 1961)은 음악의 컨텍스트가 음악이라는 텍스트를 얼마나 강력하게 지탱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였다. 이 곡은 ‘외국인’이 작곡한 국악곡이며, 새로운 창작곡이라기보다는 편곡 작품이다. 아마도 동일한 작업을 한국 작곡가가 했다면 크게 언급되지 않았을 정도로 그 편곡방법도 무척 단순했다.
1960년 언저리에 만들어진 곡이 수십 년이 흐른 후 여전히 살아남은 이유는 이 곡이 작곡되었던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즈음의 한국은 ‘우리의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를 이론화 · 체계화 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작곡가 해리슨은 바로 그때 한국에서 한국 음악을 공부하고 이를 기반으로 몇 개의 ‘한국적인’ 작품을 남겼다. 음악학자 김희선은 이 시기에 한국적 작품을 쓴 외국인의 작업을 “한국 근대 음악계가 욕망했던 현대성의 구체적 실현과, 새로운 소리와 음향을 추구하고자 했던 미국 현대 음악계가 조우”한 현장이라 평한다.(김희선, ‘문화교차의 음악’, 음악과 문화, 2010) 이 곡 역시 그 시대의 자장 안에 있다. 곡 안에는 타자 해리슨이 목격한 한국이 담겨 있으며, 이 곡은 해리슨의 눈에 비친 한국을 확인하려는 내부자의 시선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날 음악회장의 청중들도 파란 눈 작곡가가 포착한 한국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은 쑥스러운 마음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곡은 무척 단출했다. 마치 국악 선율을 이용한 2성부 대위법을 노트에 적어 놓은 모양이었다. 악보에는 국악 특유의 미세한 표현이나 미분음들, 리듬적 악센트 등이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에 적혀 있는 것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국악 선율 두 가닥과 그것을 반주하는 뚜렷한 3박자 리듬이었다. 그러나 이날 공연에 등장했던 ‘한국인’ 국악 연주자들은 악보에 기보되어 있지 않은 미세한 음정의 흔들림이나 글릿산도, 그리고 작은 꾸밈음들을 음표 사이사이에 넣어 연주했다.
작품의 국악적 요소는 작곡가의 ‘편곡’이나 ‘작곡’에 의해서가 아니라. 연주자가 지니고 있었던 몸의 감각을 통해 음향으로 변환됐다. 해리슨도 이런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피리와 생황의 합주로 이뤄진 해리슨의 <전주곡>(‘Prelude’ for Piri and Reed Organ, 1962)도 마찬가지였다. 피리 주자와 생황 주자는 그들이 공유하는 국악적 뉘앙스를 한껏 이용해 곡을 풍성하게 했다.
클라우스 후버(Klaus Huber b.1924)의 <무딘 필봉>(‘Rauhe Pinselspitze II’ for Cello and Buk, 1992)에서도 북 연주자의 몸에 내재한 리듬감, 그리고 북의 호흡이 이 음악을 한국적인 무언가로 표상하고 있었다. 한국인 북 연주자는 작곡가가 악보에 미처 다 기보하지 못했던 아주 미세한 박자를 더하고 빼며 한국적인 시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가야금처럼 연주하는’ 첼로가 더해졌다. 첼로가 약간 어색하게 국악적인 느낌을 주는 제스처를 생성하면, 북 연주자는 첼로 소리를 재빨리 붙잡아 자신이 만들어낸 리듬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런 방식으로 서양적인 음들이 동양적인 음향으로 중화됐다.
이처럼 연주자가 음향의 상당부분을 해석하고 이끌어나가는 것은 무척 동양적인 음악의 구현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서구의 근대적인 음악회 문화에서는 낯선 풍경이다. 따라서 작곡가 해리슨이나 후버가 궁극적으로 의도했던 것이 한국인 연주자들에 의해 한국적 그루브와 함께 구현되는 것인지, 아니면 좀 더 악보에 충실한 버전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유투브나 음반을 통해 들을 수 있는 다른 ‘외국인’ 연주자들의 해석은 이날의 연주와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음악이라는 점이다.
앨런 호바네스(Alan Hovhaness)의 <진동회화>(Vibration Painting Op. 226, 1960년대 작곡)는 앞서 연주됐던 해리슨이나 후버의 곡과 비교해 보았을 때 작곡기법에서 차이가 있었다. 작곡가는 음과 음 사이를 파고들어 자신이 포착한 음높이의 뉘앙스를 서구적 기보로 표현해내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거의 모든 음들이 ‘음과 음 사이’의 미분음 영역에 머물렀던 반면, 이것을 시간 안에 흐르게 하는 리듬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곡의 후반부에는 규칙적인 펄스에 갇힌 현악기의 미끄러짐이 기이한 음향 공간을 만들어 냈다. 작곡가는 ‘외부인’으로서 당당하게 그 ‘밖’에서 자신의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음악은 간혹 ‘일본풍’으로 느껴지거나 동양을 표피적으로 흉내 내는 이국주의 음악처럼 들리기도 했다.
유일한 한국 작곡가였던 임지선의 작품 <흩어진 기억과의 만남 - 조선통신사>(Encounter with Scattered Memories-Joseon Tongsinsa 화음 프로젝트 Op.147, 2015)에서는 좀 다른 방식의 접근이 느껴졌다. 이 곡에서는 ‘다른 문화’를 어떻게 기호화 하고 어떤 측면을 묘사할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그녀의 음악 어법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더 강해보였다. 그녀는 생황이라는 악기를 이용해 표제적인 음악의 내러티브를 보다 뚜렷하게 드러내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어떤 측면으로는 생황의 미세한 음향과 리듬적 호흡이 그녀의 곡 안에서 주변화 된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생황과 다른 악기의 앙상블이 묘하게 어긋날 때에는 서로 다른 목소리와 형태를 가진 두 개의 다른 세계가 그대로 노출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임지선이 ‘한국적인 것’ 혹은 ‘동양적인 것’을 대하는 태도가 앞선 작곡가들과 달랐던 이유는 우선 그녀의 국적 정체성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곡의 작곡년도가 2015년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적 · 국악적 · 동양적인 것을 어떻게 규정하고 구현해야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잠잠해졌다. 이제 동시대의 작곡가들은 다양한 문화적 상징들과 음향을 자유로이 전유한다. 청중의 입장에서도 유사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임지선의 곡을 제외하고 이날 연주된 모든 곡들은 멀게는 1960년대, 가깝게는 1990년대에 만들어졌다. 이런 사실은 이날 음악회에 왔던 청중의 상당수가 이 곡들이 작곡되었을 당시의 시대상황과 무관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50년 전 사회가 호명하고 만들어낸 음악들은 이제 다른 시대에 놓임으로써 처음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한편 연주 전 약 30분가량 이어졌던 ‘조선통신사를 생각하다’ 렉처에서는 청중이 음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일관된 해석을 주입하는 것처럼 보여 아쉬움을 남겼다. 발표자는 조선통신사의 행렬이 얼마나 크고 화려했는지, 당시 일본의 대접이 얼마나 융숭했는지, 일본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반복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일본인이 가졌던 한국에 대한 동경’이라는 키워드를 계속해서 강조했다. 이런 발표자의 관점은 자연스럽게 연이어 연주된 외국인 작곡가 호바네스, 해리슨, 후버의 한국관을 지레 짐작하게끔 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중들이 곡마다 상이한 음향을 감지하며 한국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느끼고 상상력을 자극받아 즐거움을 느꼈다면, 그것은 순전히 음악이 가진 추상의 힘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조선통신사’라는 음악회 타이틀은 다양한 시공간의 겹침을 멋지게 은유한다. 이날 음악회에서 연주된 음악 안에는 15세기 초에서 21세기에 이르는 600년의 시간, 196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작곡가에게 인지된 동양과 서양의 거리, 그리고 작곡가들의 서로 다른 정체성과 전략이 존재했다.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 영향 받으며, 그 영향의 산물은 또 다른 시간과 공간에 퍼지고 다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날 청중이 조선통신사에 대해 보다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기를, 음악을 둘러싼 겹겹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느꼈길 바란다.
(글 이민희Minhee Lee, 2011 화음 평론상 · 2012 플랫폼 음악비평상 수상자, toshiriii@gmail.com)